28일 예술의전당 정명훈 피아노 리사이틀 리뷰
편집자주
허명현 클래식 평론가가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합니다. 경기아트센터에서 근무 중인 그는 공연계 최전선에서 심층 클래식 뉴스를 전할 예정입니다. 오페라에서 가수가 대사를 노래하듯 풀어내는 '레치타티보'처럼, 율동감 넘치는 기사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완전히 정제된 형태의 연주는 아니었지만, 분명 귀한 연주였다. 정명훈은 작품이 가진 조형미를 부각하거나, 파격적인 해석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만들지 않았다. 또 유행을 따르지 않았고 고풍스러웠다. 그래서 그의 연주는 특별했다. 마치 옛 음유시인의 노래 같았다. 적당히 우려낸 노래가 아름다웠다. 정명훈은 그런 보기 드문 피아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매 순간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하기보다는, 음악으로 가득한 몸 안의 깊은 샘에서 작품을 길어 올리고 있었다. 음악은 단지 두 손을 타고 흘러 나왔다. 이번엔 그 수단이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피아노였을 뿐이었다.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정명훈의 피아노 리사이틀. 첫 곡 하이든 소나타 60번에서는 1악장부터 정명훈의 비범한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악상에 따라 각 음표를 음악적으로 발음하고 연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볼 수 있었다. 과감하고 도전적이었다. 그리고 맛깔났다. 분명 정명훈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관객들도 있겠지만, 재미가 없는 연주라고는 할 수 없었다. 3악장에선 동기(모티브)가 조금씩 바뀌거나 단조가 짧게 고개를 들 때마다, 이를 의식해 위트 있는 악센트를 주기도 하면서 하이든식 유머를 소화했다. 장난스러운 늬앙스의 대목조차 이미 모든 걸 깨달은 자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정명훈은 공연 내내 설득력 있는 아고긱(Agogic·연주할 때 엄격한 템포와 리듬에 미묘한 변화를 붙여서 색채감을 풍부하게 하는 방법)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가진 귀한 강점이었다. 2부의 브람스 작품들(op.117, op.119)에선 특히 그의 강점이 빛을 발했다. 정명훈의 연주로 작품들은 한 편의 시처럼 느껴졌다. 그가 선택한 톤과 리듬은 매순간 변화하며, 이 짧은 곡들 안에서도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그렇게 메트로놈의 박자처럼 연주되는 작품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정명훈은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템포에 변화를 주었는데, 음악의 흐름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드는 '심리적 템포'는 깊은 감수성에 도달한 거장의 모습이었다. 개성 있는 아티큘레이션이었지만 다이나믹은 과장되지 않고, 절제돼 있었다. 담담했다. 피아니스트 정명훈은 뒤로 물러나고, 브람스가 드러났다.
다만 피아니스트로서 경력을 쭉 이어온 음악인이 아니기에 어려움도 있었다. 베토벤 소나타 30번에서는 기술과 체력적인 문제로 음악이 그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는 듯했다. 건반 위의 두 손이 갈 길을 잃기도 했고, 프로 피아니스트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실수도 나왔다.
하지만 정명훈이 단지 피아니스트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오히려 특별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는 작품에 대한 폭 넓은 시선을 통해 군데군데 오케스트라적인 효과를 성취했다. 효율적이진 않을 수 있지만 효과적이었다. 정제된 형태는 아니었지만, 그가 만드는 음악은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앙코르로는 그가 자주 연주해온 슈만의 '아라베스크', '트로이메라이'가 연주됐다. 객석에서 핸드폰 소리가 수차례 울리며 공연을 방해했음에도 정명훈의 톤은 흔들리지 않았다. 슈만은 그렇게 무대에 아름답게 피어났다. 마지막 앙코르 곡은 또 다른 하이든 소나타였다. 그는 "하이든으로 시작했으니 하이든으로 끝내겠다" 며 말끝을 흐렸다. 역시나 위트 넘치는 작품이었다. 그렇게 그는 관객들에게 즐거운 음악을 함께하자며 음악으로 말을 걸었다. 말보다 음악으로 마음을 전달하는게 그에겐 더욱 편해 보였다. 자신에게는 첫 사랑이자, 진짜 음악이라고 이야기해왔던 피아노는 어느덧 그 자신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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