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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 얌체 주차 때문에 아이들이 위험하니 주민들이 뭉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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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 얌체 주차 때문에 아이들이 위험하니 주민들이 뭉쳤죠"

입력
2021.05.0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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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힘모아 얌체 주차 차량 내보낸 인천 A아파트
소방차 전용 구역 불법 주차에 단지내 '아찔 주행'
경찰에 수차례 신고해도 사유지라 해결 안 돼
아파트 입주민들 함께 머리 맞대 해법 찾아내

인천 부평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두 차량이 소방차전용주차구역에 불법 주차된 차량을 앞뒤로 막고 있다. 입주민 이모씨 제공

인천 부평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두 차량이 소방차전용주차구역에 불법 주차된 차량을 앞뒤로 막고 있다. 입주민 이모씨 제공


아파트 내 소방차전용주차구역에 누군가 상습적으로 불법 주차를 한다면, 게다가 그 주변에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파트 단지 내 갖가지 '민폐 얌체 주차' 사례들이 연이어 누리꾼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천의 한 아파트에선 주민들이 직접 나서 똘똘 뭉쳐 불법 주차 차량 문제를 해결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인천 부평의 한 아파트에서 외부인이 아파트 단지 내에 소방차전용주차구역에 불법으로 차를 주차해 입주민들이 안전에 위협을 느꼈다고 해요. 보통 아파트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대부분 관리사무소에 알리고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기 마련입니다.

특히 각자 생활이 바쁘고 이웃 입주민들과 소통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공동 대응은 엄두도 내지 못하죠. 그런데 이 아파트는 달랐습니다. 아파트 공동 구역에 불법 주차가 이어지자 주민들이 직접 나서 해당 차량을 단지 내에서 내쫓는 것에 성공한 것인데요.

해당 아파트 입주민인 40대 이모씨에게 어찌된 일인지 들어봤습니다. 이씨에 따르면 문제의 불법 주차 차량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달 전인 4월 초였다고 합니다.

주민들 사이에서 누군가 소방차전용주차구역에 수시로 불법 주차를 했다는 목격담이 돌았습니다. 지난달 21일에는 입주민 100여 명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 처음으로 해당 차량에 대한 이야기가 공유됐다고 해요.

이씨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주민들이 처음부터 직접 나서려던 것은 아닙니다"라며 "먼저 관리소장을 통해 항의를 했죠"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여느 아파트 단지와 비슷하죠.

이 아파트 관리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해당 주차구역은 출근 시간에 차가 많이 몰리는 곳"이라며 "불법 주차한 차 때문에 차가 왔다갔다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해당 차량에 주차 단속 경고장을 붙였지만 차량 운전자는 아무 말도 없이 경고장을 떼고 아파트 단지를 유유히 빠져나가곤 했다고 해요.

운전자는 정씨가 불법 주차된 차를 빼달라는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정씨가 지나가는 차를 세우려고 했는데도 그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갔습니다. 대응 자체를 거부한 것인데요. 마지못해 차를 옮기고 나서도 어느 순간 금방 같은 자리에 다시 주차하는 일을 되풀이됐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소방차전용주차구역 옆에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상습 민폐 주차'의 당사자가 심지어 단지 내에서 제한 속도를 넘어 빠르게 달리는 모습을 직접 봤다는 말이 전해졌어요.

이씨는 "아찔한 주행을 했다는 목격담에 속상해하는 주민들이 많았다"며 "주민들은 단지 내에서 뛰노는 아이들에게 큰일이 날까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는데요.

경찰서·소방서 "묵묵부답"...주민들 "우리가 합시다"


인천 부평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한 차량이 소방차전용주차구역에 불법 주차돼 있다. 주민들은 불법 주차된 차량 위에 스티커를 붙였다. 입주민 이모씨 제공

인천 부평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한 차량이 소방차전용주차구역에 불법 주차돼 있다. 주민들은 불법 주차된 차량 위에 스티커를 붙였다. 입주민 이모씨 제공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한 것도 여러 차례. 그러나 경찰은 출동할 때마다 "아파트 단지 내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처벌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해요.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소방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18년 2월 아파트 단지 안에 소방차전용주차구역 설치를 의무화하고 이곳에 주차하면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소방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습니다. 그러나 이씨의 아파트는 지어진 지 20년 이상 된 아파트로 관련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만 들을 뿐이었습니다.

부평 소방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소방기본법은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면서 "아파트가 자체적으로 소방차 전용 주차구역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불법 주차를 해도 과태료 부과 대상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막막해진 주민들은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습니다. 행정·사법 기관의 도움을 받기는 어려워졌으니 직접 나서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해요.

이씨는 "단체 카톡방에서 한 주민이 얼마 전 화제가 됐던 '인천 송도 민폐주차' 사례를 꺼냈습니다"라며 "거기 주민들이 직접 스티커를 붙이고 차를 옮기게 했던 사례를 참고해 보자고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인천 송도 민폐주차 사건은 2018년 8월 인천 송도국제도시 한 아파트 단지에서 '관리사무소가 차량에 불법주차 경고 스티커를 붙여 화가 난다'며 7시간가량 지하주차장 입구를 차량으로 막고 사라진 사건인데요. 당시 주민들은 차량을 직접 들어 옮겨 화제가 되었습니다.

주민들은 '자동차 불법주차', '당신네 집으로 가' 등의 문구를 붙이고 삼각뿔 모양의 '주차금지' 장애물을 세워 놓았습니다. 하지만 해당 차량 운전자는 주민들의 항의를 무시하면서 이를 버리거나 치워버렸다고 해요.

인천 부평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주민의 차가 소방차전용주차구역에 불법 주차된 차의 앞뒤를 가로막고 있다. 입주민 이모씨 제공

인천 부평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주민의 차가 소방차전용주차구역에 불법 주차된 차의 앞뒤를 가로막고 있다. 입주민 이모씨 제공

항의로는 해결이 안 될 것으로 판단한 입주민들은 플랜 B를 만들어야 했는데요.

의기투합하여 단톡방에서 대안을 고민하던 중, 한 주민이 차량 앞뒤로 자신의 차를 세워 길을 막는 방안을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차를 세로로 세워 문제의 차량의 앞과 뒤를 막았지만, 공간이 부족하자 뒷차를 다시 가로로 세워 막았습니다.

이후 이 주민은 본인 소유의 용달차를 가져와 한 차례 더 차량 막기에 나섰습니다. 이씨는 "그가 차량 두 대를 대리 기사까지 불러서 끌고 왔다"며 "주민들도 힘을 보탰다"고 전했습니다.

인천 부평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소방차전용주차구역에 불법 주차를 했던 차량 운전자 남편이 남기고 간 각서. 입주민 이모씨 제공

인천 부평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소방차전용주차구역에 불법 주차를 했던 차량 운전자 남편이 남기고 간 각서. 입주민 이모씨 제공

결국 두 차례의 '차량 막기'가 시전되고 난 다음 날인 28일 오전, '민폐 주차' 운전자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이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차를 빼 달라"며 불법 주차된 차를 막은 주민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는 '단지 내에 불법으로 주차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각서를 쓰고 육성 녹취를 하고 나서야 아파트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관리소장 정씨의 말에 따르면 민폐 주차를 했던 운전자는 최근까지 해당 아파트에 거주하다가 이사를 간 사람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인근 빌라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끝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소방자전용주차구역에 차가 있어도 연락하면 바로바로 차가 빠지는 등 아파트 내의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해요.

해당 사건 커뮤니티에 공유... 누리꾼들 "사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씨는 28일 한 커뮤니티에 이러한 사연을 담아 '아파트 외부인 무단주차 참교육 후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게시글에는 금세 3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요. 누리꾼들은 "꼬랑지 바로 내릴 거면 개기지나 말지... 참 추하게 사는 사람 많네요", "행동으로 저리 하기는 쉽지 않는데 대단하십니다. 결국 항복받았네요", "사이다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씨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주민들이 이렇게까지 하게 된 배경을 알아달라"고 말했습니다.

현행법상 아파트 주차장은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법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업무방해죄'나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할 여지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장윤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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