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서방 세력 반발로 내부 분열 심화
백신 받고 '실직'한 슬로바키아 총리
"러, EU 제재 협력 깨드리려는 노림수"
러시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동유럽 국가들을 내분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정부가 급한 마음에 러시아 백신을 사들였지만, 친(親)서방 세력이 반발하면서 정치적 파열음이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러시아 코로나19 백신 확대가 유럽에 불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현재 유럽연합(EU)의 일원인 옛 공산권 국가들이 EU 보건당국 승인 전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을 도입한 이후 내부 혼란이 가열되고 있다는 것이다. 스푸트니크V 백신은 러시아 정부의 적극적 홍보와 긴급한 백신 수요가 맞아떨어지면서 유럽에서 계속 세를 넓히는 중이다.
하지만 서방과 가까운 세력은 러시아 백신을 ‘선전 도구’ 쯤으로 치부하며 정부에 날을 세우고 있다. 슬로바키아가 대표적이다. 친서방 성향의 이고르 마토비치 슬로바키아 총리는 코로나19 백신 도입 문제로 결국 자리를 내놨다. 연립정부에 참여한 정당이 러시아 백신 도입을 이유로 지지를 철회하자 에두아르드 헤게르 재무장관과 총리직을 맞바꾼 것이다. 올해 3월 러시아 백신 20만회분을 공급 받을 때만해도 마토비치는 이를 감염병 해결의 구원투수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논란이 거세지면서 스푸트니크V는 아직 접종 현장에도 투입되지 못했다. 현지 정치분석가인 파볼 바보스는 “마토비치가 너무 순진했던 것”이라며 “러시아 선전의 함정에 빠졌다”고 평했다.
러시아 백신의 인기는 EU의 감염병 공동대응 기조에도 타격을 입혔다. 신문은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뒤 자국에 단행된 유럽의 제재를 깨려 수년간 노력했고 (백신이) 성공적 스토리를 쓸 것”이라고 분석했다. EU의 대(對)러 정책 협력이 코로나19 백신으로 와해됐다는 얘기다. EU는 지난주 외교 관련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자국 백신의 해외 홍보를 추진하는 것은 유럽 의약품규제기관ㆍ제조사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러시아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동유럽 나라들도 있다. 앞서 2월 잉그리다 시모니테 리투아니아 총리는 트위터에 글을 올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른 국가를) 분단하고 통치할 무기’로 스푸트니크V를 전 세계에 권하고 있다”며 노골적 반감을 드러냈다. 백신 부족으로 중국 백신 구매까지 고려하는 폴란드 역시 아무리 급해도 러시아 제품은 선택지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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