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농민 위한 농지법 되려면
애초 사저 건립 농지 전용 목적인데
농지취득 신청서엔 '농업경영 표시'
농지 전용 과정선 농지법 준수 확인
편집자주
한국일보는 ‘농지에 빠진 공복들’ 기획을 통해 고위공무원들의 농지 소유 실태를 조명합니다. 경자유전 원칙과 식량 주권을 위해 국가가 보호하는 토지인 농지가 고위공직자들에겐 투기 대상일 뿐이었다는 현실, 이로 인해 적지 않은 농민들이 피해를 입은 사연 등을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무념정(無念亭)’ ‘길상선원(吉祥禪院)’ ‘언덕위푸른집’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주택 입구의 우체통마다 새겨진 말들을 보면, 주민들은 속세와 담을 쌓은 듯했다. 나무 우체통은 사찰에서 나오는 향내음과 새소리와 어우러져 사람 발길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바람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평산마을은 문 대통령 부부가 사저 부지로 점찍은 뒤, 지난해 4월 일대 토지 2,604.4㎡(789평)를 구입하면서 논란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부지 매입 과정에서의 농지법 위반 의혹 △형질 변경에 따른 특혜 시비 논란 △일부 주민들의 사저 건립 반대 집회까지 불거지면서, 부지에 포함된 농지 1개 필지는 전국에서 가장 주목 받는 농지가 돼버렸다.
고위공직자 文 사저 77%가 농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3월 공개한 고위공직자 재산 목록을 분석한 결과, 전체 고위공직자(1,885명) 가운데 절반(45.1%)에 가까운 852명이 농지를 갖고 있었고, 이 중에는 문 대통령도 포함돼 있다. 문 대통령은 1997년에 사들인 양산시 매곡동 3개 필지(76㎡)와 사저가 들어설 양산 하북면 지산리 1개 필지 등 총 4개 필지를 신고했다.
4일 찾은 평산마을의 사저 및 경호시설 부지 입구에는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한 장벽과 출입통제 테이프가 설치돼 있었다. 근처에는 경호시설 공사를 위한 자재들이 쌓여 있을 뿐, 인부와 중장비는 보이지 않았다.
평산마을 사저 부지는 총 6개 필지(3,773.8㎡)로, 이 가운데 77%가 농지였다. 문 대통령 부부는 △밭 1개 필지(1,844.9㎡) △대지 3개 필지(746㎡) △도로 1개 필지(13.5㎡) 등 5개 필지를 소유하고 있다. 경호처 역시 △밭 1개 필지(1,063.9㎡) △대지 1개 필지(92㎡) △도로 1개 필지(13.5㎡) 등 3개 필지 소유주로 등록됐다. 이 중 도로와 대지는 문 대통령 부부와 경호처가 공동 소유하고 있다.
농지 전용은 합격, 농지 취득 과정은 불합격
사저 부지 내 농지는 더 이상 농지가 아니었다. 문 대통령 고교 동문인 옛 소유주가 재배했다는 약초와 매실나무, 차나무 흔적도 없었다. 문 대통령 부부는 지난 1월 양산시에서 사저 부지에 대한 농지 전용 허가를 받았다. 농지법에 따르면 주택 건축 등 농업 이외 용도로 농지를 이용하려면 관할 지자체로부터 전용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문 대통령은 농지보전부담금 약 4,685만 원을 납부했다. 부담금은 농지 보전·관리를 위한 재원을 마련할 목적으로 농지 소유주가 한국농어촌공사에 납부하는 돈이다. 문 대통령 사저 부지의 농지 전용 과정은 농지법을 준수한 셈이다.
문제는 농지 전용에 앞서 이뤄진 문 대통령 부부의 농지 취득 과정이다. 지자체에 제출하는 농지취득 자격증명신청서에는 △농업경영 △주말·체험영농 △농지 전용 △시험·연구·실습지용 등으로 취득 목적이 구분돼 있다. 문 대통령은 사저를 짓기 위한 농지 전용이 취득 목적이었지만, 신청서에는 농업경영에 동그라미(O) 표시를 했다. 농지취득 자격증명신청서와 함께 제출해야 하는 농업경영계획서도 허술했다. △영농거리 △취득 농지의 농업경영에 필요한 노동력 확보방안 △농업기계·장비의 보유 현황란에는 어떤 표시도 없었다.
허술한 농지취득과정에 행정의식도 안일
사저 건립을 위해 농지를 취득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문 대통령의 농지취득 자격증명신청서는 '모범적인 서류'는 아니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 측으로부터 농업경영계획서를 받고 자격증명서를 발급해준 관청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양산시 하북면 행정복지센터 측은 “농경계획서는 해당 토지가 농지로 제대로 이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용도일 뿐, 영농거리와 노동력 확보방안을 기재하는 게 의무사항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렇게 기재하는 게 일반적인지를 묻자 “농경계획서는 참조사항에 불과해 늘 발급해줬다”고만 답했다. 그러나 농지 관리를 총괄하는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측은 "(농경계획서에 미기재되거나 엉뚱한 답변이 적혀 있다면) 지자체가 심사를 너무 허술하게 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농지법 전문가들은 농지를 매입하는 고위공직자와 농지취득 자격증명을 접수·발급하는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이들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세형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 팀장은 “농지 취득 목적이 무엇이든간에, 고위공직자들은 더욱 철저히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면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면 자격증명서와 농경계획서는 왜 만드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 공직자 개인별 상세내용은 <농지에 빠진 공복들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farmmap/>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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