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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되려 학비·시간 쏟아부었는데 대학 다시 가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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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되려 학비·시간 쏟아부었는데 대학 다시 가라뇨"

입력
2021.05.14 04:30
수정
2021.05.1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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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발주 법률안, 심리학 학위자로 상담사 자격 제한
타전공 수련생들 "학위 다시 따란 말이냐" 혼란
현업 상담가 "상담받던 내담자들 누가 책임지나"
"법률안 폐기" 집단행동에 정부 "확정된 바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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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A씨는 교육대학원에서 상담심리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청소년 관련 기관에 취업해 상담을 맡은 일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상담 업무가 적성에 맞고 보람 있다고 느꼈다. 더 늦기 전에 공부를 시작하자는 마음에 직장을 그만두고 지난해 대학원에 입학했고 학자금 대출도 600만 원가량 받았다.

A씨의 당면 목표는 한국상담심리학회가 발급하는 '상담심리사 2급' 자격증을 따는 것이다. 상담업계에서 권위 있는 자격증으로, 상담 관련 분야에서 석사 이상 학위가 있고 1급 자격증 소지자의 감독 아래 1년 이상 상담 경력을 쌓아야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학과 공부와 수련 과정에 매진해온 A씨이지만, 최근 공개된 심리상담 자격 개편안을 보고 마음이 심란하다. 상담심리사가 되려면 대학부터 다시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어서다.

심리서비스 법률 1안이 뭐길래

A씨를 포함한 심리상담사 지망생을 놀라게 한 건 이른바 '심리서비스 법률 1안'이다. 보건복지부 의뢰를 받은 한국심리학회가 지난해 말 제출한 '심리서비스 입법 연구 보고서'에 우선적으로 제안된 법률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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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현재 민간 심리상담 자격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1월 발표한 '제2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안'에서 "심리상담 자격증 발급 기관이 2,800개에 달하고 심리상담소 개설은 자격 규제가 없다"며 "실태 분석을 통해 자격 관리 및 지원 체계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상담 현장에서도 자격증 취득 요건에 격차가 크고 심리상담소에서 성추행 등 부적절한 일이 벌어진 전례를 들어 제도 정비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국심리학회 보고서는 이런 취지에 따른 정책연구 결과물이지만, '법률 1안'에 제시된 학력 조건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법률안은 상담을 포함한 심리서비스를 수행하는 '심리사'가 되려면 심리학 학사와 석사 학위 또는 심리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모두 취득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A씨처럼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상담사 지망생은 학교를 다시 다니거나 자격 취득을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이는 주요 심리상담사 자격증이 취득 조건을 특정 전공에 한정하지 않는 현실과 배치된다. 업계에서 '양대 학회'로 꼽히며 자격증을 발급하는 한국상담심리학회(상담심리사)와 한국상담학회(전문상담사)의 경우 전자는 '상담 관련 분야 학위'를, 후자는 '상담 관련 과목 이수'를 주로 요구한다. 심리학이 아니더라도 상담 분야를 가르치는 교육학 청소년학 사회복지학 등을 전공하거나 관련 과목을 들었다면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것이다.

해당 법률안에 '심리사가 아닌 사람이 심리사 명칭을 사용하거나 심리서비스를 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점도 논쟁 대상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중인데… 우리 내담자는 어쩌나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현직 심리상담사들도 법률안 비판에 가담하고 있다. 다양한 학문 분야의 융합이 심리상담 발전의 동력이라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아동상담치료 박사학위 소지자로 놀이치료를 하는 12년 차 상담사 B(35)씨는 "심리학에서 상담은 한 갈래일 뿐인데 심리학 전공자가 심리서비스 전반에 나선다는 건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25년간 아동상담에 종사해온 C(49)씨도 "심리학 공부는 필요하지만, 아동과 부모 상담에 대해 배우기엔 아동상담 관련 학과가 더 적합하다"며 "상담사 학력 조건을 심리학에 한정하면 상담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미 상담을 받고 있는 고객에게 미칠 영향도 우려한다. 법률안대로라면 심리학 비전공자는 '심리사' 직함을 쓸 수 없고, 이런 상황에서 심리 상담이나 치료를 계속 수행하면 제재받을 가능성도 있어서다. B씨는 "놀이치료사 등 현장에서 일하는 상담사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되면 이들에게 의지하던 수많은 내담자들이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심리학을 전공한 상담사 지망생이라고 해당 법률안을 마냥 반기진 않는다. 심리학 석사과정까지 마친 D(31)씨는 "상담 교육을 받지 않은 심리학과 출신이 자격 조건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내담자 보호와 전문성 강화라는 자격증 관리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법안 전면 폐기하라... 대응 나선 단체들

상담사와 수련생을 중심으로 집단행동도 가시화하고 있다. '한국 상담 및 심리사 연대'는 지난 10일 성명서를 내고 "이번 법률안은 직업 선택 자유를 저해하고 이미 법률로 보호받고 있는 상담·심리 자격증의 법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단체를 이끌고 있는 국경복(65)씨는 "심리상담 시장엔 심리학 외에 상담학 가족학 예술치료학 전공자들이 포함돼 있다"며 "학제 간 융합 시대에 심리학 전공자만 상담사로 인정한다는 것은 스스로 갈라파고스섬에 갇히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다만 심리상담 자격 법제화 취지엔 찬성한다면서 대안적 법안 마련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심리상담 분야 전공 교수 1,570명도 해당 법률안을 폐기해야 한다는 연서명 성명서를 복지부에 전달했다. 권수영 연세대 신학과 교수는 "심리상담 분야는 다양한 학문에서 발전돼 온 만큼, 당사자 모두가 만족하는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국민 마음건강을 위해 전문가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논란이 일자 복지부는 해당 법률안은 연구보고서의 일부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고서를 검토해야 하는 단계"라며 "보고서대로 실제 법률안이 추진되는 것은 아니며 추가 의견 역시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상담 및 심리사 연대 운영위원회 제공.

한국 상담 및 심리사 연대 운영위원회 제공.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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