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남북전쟁 당시 제정된 '시민체포법'
40개 주에 잔존… '백인에 면책 특혜' 비판론
흑인 구금 등 초법적 인종차별 관행에 면죄부를 주던 미국의 낡은 법이 158년 만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조지아주(州)가 신호탄을 쏴 올렸다.
11일(현지시간) AP통신 등 미 언론에 따르면 10일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는 ‘시민체포법’을 철회하기 위한 법안에 서명했다. 남북 전쟁 기간인 1863년 제정된 시민체포법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일반인에게도 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그러나 새 규정은 구경꾼이나 목격자에게 사람을 구금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 건 물론 자기 방어나 주택 보호, 폭력적 흉악 범죄 방지 등이 아닌 경우 누군가를 구금할 목적으로 치명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또 사람을 구금하더라도 일정 시간 내에 경찰이 도착하지 않으면 구금된 사람을 풀어주도록 했다.
켐프 주지사는 조지아가 시민체포법을 처음 폐지한 주가 됐다며 “우리는 오늘 남북 전쟁 시대의 법을 인명과 재산에 대한 정당방위라는 신성한 권리와 균형을 이룬 조항으로 대체했다”고 말했다. AP는 다른 주들 역시 이 규정의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체포법의 연원은 중세 영국의 한계다.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중세 시대에는 범죄가 발생해도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법 기관이 바로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일반인에게도 범인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이유다. 일종의 고육책이었던 셈인데, 이런 전통이 미국 사회에도 그대로 이어져 조지아를 포함해 미국 40개 주가 지금까지 법률로 보장해 왔다.
시대착오 법률이라는 지적은 자연스러웠다. 인종차별과 총기 보유 역사가 맞물리며 도망간 노예를 검거하거나 흑인에 대한 ‘린칭’(lynchingㆍ초법적 폭력ㆍ살인)을 정당화하는 데 시민체포법이 악용돼 왔다는 비판도 진작 제기됐다.
이 법이 다시 큰 논란거리로 떠오른 건 지난해 2월이다. 조지아주에서 25세 흑인 남성 아머드 아버리가 백인 부자(父子)의 총격에 숨진 사건이 벌어졌는데, 경찰이 시민체포법을 근거로 이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감시 카메라 영상 등으로 아버리의 무고 정황이 공개되며 비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고,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지는 등 파장이 커지자 결국 경찰이 가해자 부자와 이웃 1명을 포함한 3명을 증오범죄 등 혐의로 기소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