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양동시장서 노점상 한 이영애 할머니
어려운 형편에도 상인들과 시민군 끼니 챙겨
그때 할머니 주먹밥 먹은 학생 "할머니께 감사"
41년 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이끈 학생들과 시민군에게 주먹밥 등 음식을 만들어 나눠준 한 할머니가 "그때 학생들 덕분에 민주화를 이룰 수 있게 돼 고맙다"고 전했다.
당시 할머니에게 밥을 얻어먹은 학생은 할머니의 감사 인사에 "그때 감사했다"고 화답했다.
광주시 서구 양동시장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이영애 할머니는 17일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41년 전 당시 학생들과 시민군을 돕게 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처음에는 학생들에게 빵과 우유만 나눠줬다고 했다. 이씨는 "장사를 나가니 학생들이 느닷없이 '전두환 물러가라'고 외치더라. 그게 무슨 소린가 하고 이틀이 넘어갔는데, 학생들이 '목이 타서 죽겠다. 물 조금만 주세요'라고 하더라"며 "그 학생들이 '배가 고파 죽겠소'라고 하길래 리어카 끌고 장사하는 아줌마들끼리 모여 학생들에게 빵과 우유를 사서 차에 넣어주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당시 이씨를 포함한 상인들은 500~1,000원씩 걷어 학생들의 간식거리를 마련했다. 이씨는 "그때는 우리도 매우 어려웠죠. 그런 세상에서 돈을 500원, 1,000원씩 걷었다"며 "박스에 우유하고 빵을 담아 넣어주는데 차가 얼마나 많던지. 왔다 갔다 하는 차 안에 넣어줬다"고 전했다.
"도청 앞 늘어진 송장에 충격, 학생들 쫓아다니며 밥 챙겨"
그러나 배가 고프다는 학생과 시민군의 목소리는 줄지 않았다. 이씨는 빵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상인들끼리 모여 쌀을 사 밥을 지어주기로 했다. 그는 "그 사람들이 그러고 다니니 배가 안 고프겠냐. 그래서 장사하는 사람들끼리 또 모였다"며 "빵을 줘서는 안 되겠으니 돈을 더 걷어 쌀을 사서 밥을 해 주는 게 제일 낫겠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학생과 시민군에게 밥을 해 주는 데 동의한 건 아니다. 일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감당해야 했고, 이들을 피해 밥을 지어야 했다.
이씨는 "2,000~3,000원씩 모아 쌀 한 가마니를 사서 방앗간으로 갖고 갔는데 그때 방앗간 주인이 (민주)공화당(현 국민의힘) 사람이었고 안 좋은 눈치였다"며 "(어쩔 수 없이) 쌀을 사과박스에 넣어 구르마(손수레)에 싣고 가 다른 곳에서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걸 구르마로 끌고 와 학생들이 다닐 때 차에 한 박스씩 옮겨줬다"고 말했다.
이씨는 당시 도청 앞에 학생과 시민군의 시신이 늘어져 있을 정도로 아비규환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때 조카가 우리 집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하루는 나가서 안 들어와 애간장이 녹았다. 조카가 '고모, 도청 앞에 가 보세요. 사람들이 많이 죽어 송장을 옮기고 왔다'고 하더라"며 "그래서 장사를 안 하고 사람들과 도청 앞에 갔는데 학생들은 태극기로 다 묶어놓고 죽은 사람들은 전부 당목으로 덮어놨다"고 그때 상황을 설명했다.
이씨는 이어 "당목이 말도 못 하게 늘어서 있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며 "그런데 우리가 이러고 있어선 안 되겠다, 전두환이 광주 사람의 3분의 1을 죽인다는 소문이 나서 그때부터는 학생들 밥을 더 해줬다. 도청 앞에 갔다 온 뒤로 학생들 데모하는 데는 다 쫓아다녔다"고 말했다.
"당시 시민군·학생들 만나면 고맙다고 하고 싶다"
이씨는 당시 민주화운동을 한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당시 밥을 얻어먹은 학생이나 시민군을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시냐'는 질문에 "민주화를 이뤄내 고맙다고 말해야죠"라며 "5·18로 민주화를 일으킨 것만으로도 고맙죠"라고 강조했다.
이씨가 시민군을 도왔던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도중 한 청취자가 "그때 할머니에게 주먹밥을 얻어 먹은 학생"이라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이 청취자는 "할머니 고맙습니다. 저는 그때 아세아극장 앞에서 밥 먹은 학생입니다"라며 감사 문자를 보냈다. 이씨는 이에 "아이고, 그 학생이 기억해 줘서 오히려 고맙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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