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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째 극한 대립만… 상속세는 왜 ‘벌 주는 세금’으로 불리나

입력
2021.05.20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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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뉴스1

4월 2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뉴스1

"징벌적인 상속세는 경영권 승계를 불확실하게 만들고 기업가 정신을 해친다."(한국경제연구원)

"상속세가 약탈적이라는 주장은 자극적이다. 일부 기업 때문에 전반을 수정할 이유는 없다."(경제개혁연대)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망과 상속을 계기로 재점화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상속세 갈등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국의 상속세는 지난 2000년, 현재의 세율로 고정된 이후 20년 넘게 한 치의 변화도 이루지 못했다. 위의 두 단체 입장이 말해주듯, 양 극단의 시각이 양보 없이 맞서며 절충점을 찾지 못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의 소모적인 공방 대신, '부의 재분배'라는 이상과 '기업 승계'라는 현실을 적절히 고려한 "기업을 살리는 방향으로의" 합리적인 대안을 이제는 찾아야 할 때라고 지적하고 있다.

20년 넘어선 상속세 공방

19일 정부에 따르면, 과세표준 30억 원 초과 상속재산에 50% 세율을 매기는 현행 상속세 틀은 2000년 1월 1일 결정된 뒤 22년째 변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지나친' 상속세 부담을 낮추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2007년 가업상속세제가 대폭 확대된 뒤, 수차례에 걸쳐 공제대상 기업, 공제 한도가 확대됐다. 2008년에는 상속 및 증여세법 개정으로 상속인과 피상속인이 함께 살던 집에 한해 일부 공제를 해줬고, 2015년에는 인적 공제가 확대됐다. 큰 틀은 유지됐지만, 미세조정은 계속된 것이다.

장기간 상속세의 큰 틀이 그대로이다 보니, '고액 자산가에게 세금을 걷는다'는 당초의 도입 취지도 점차 옅어지고 있다. 2002년 전체 피상속인 24만1,193명 중 상속세 과세 대상(1,661명) 비중은 0.69%에 불과했지만 2011년부터는 매년 2%를 넘고 있다. 20년간의 인플레이션으로 상속 자산 규모가 커지면서 상속세 대상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도 이건희 전 회장 사망을 계기로 ‘상속세 하향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늘고 있다. 지난해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낮추자는 안을, 같은 당 김용판 의원은 25% 안을 내놓았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선량한 기업이 역할을 계속하려면 상속세를 손봐야 한다”며 “세율 자체가 징벌적일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속세 납부대상자 비율 변화

상속세 납부대상자 비율 변화


춤추듯 오르내린 한국 상속세

애초 상속세가 만들어진 논리는 ‘부의 재분배’다. 살아 있을 때 제대로 걷지 못한 세금을 사망 시점에 정산하는 개념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근로소득 과세와 달리, 자산가치 상승에는 세금을 제대로 매기기 어렵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과거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죽을 때 상속재산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건, 이기적인 부자의 평생에 대한 ‘국가의 정죄’”라고도 말했다.

처음 상속세가 도입된 1950년 90%(5,000만 원 초과)에 달했던 최고세율은 이후 30%(1961년)까지 낮아졌다가, 박정희 정부 들어 75%까지 높아졌다. 당시 높은 상속세율이 정당화됐던 건, 국가가 국민의 소득을 파악하기 쉽지 않았던 영향이 크다.

이후 1980년대부터는 상속세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뀐다.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가 시행되면서 정부도 세원 포착 부담이 줄었고, 상속세율도 낮아졌다.

현행 상속세는 이후 고액 자산가 과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다시 세율(45%→50%)을 높이고, 최고세율이 부과되는 상속재산 기준(50억 원→30억 원)은 낮춘 것이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 변화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 변화


한국 상속세, 얼마나 높은가

한국의 명목상 상속세 최고세율(50%)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벨기에, 프랑스, 일본에 이어 4위다. 다만 가족에게 상속하면 벨기에(80%→30%), 프랑스(60%→45%)는 더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 이를 감안하면 한국은 명목상 일본(55%)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상속세율이 높은 나라다.

특히 여기에다 기업가가 최대주주로 있던 회사 지분을 상속하는 경우, 이른바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해 지분의 가치를 20% 할증한다. 재계에서 "세계 최고세율 60%" "경영 의욕을 꺾는 형벌적 세금" 등의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속ㆍ증여세 비중도 0.4% 수준으로, OECD 평균(0.1%) 보다 높다.

하지만 이는 일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한 논리이기도 하다. 보는 관점에 따라 상속세가 극히 소수 자산가에게만 해당되고, 실제 내는 '실효세율'은 훨씬 낮기도 해서다. 여기에 포괄적인 소득에 부과하는 상속세와 소득세를 합하면 한국의 세 부담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통계도 있다.

2019년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상속재산이 100억 원을 초과하는 피상속인(172명)은 전체 상속세 과세 대상의 2.1%(전체 피상속인 중 0.05%)에 불과했지만 이들의 상속 재산(3조7,344억 원)은 전체의 22.9%, 상속세(1조2,937억 원)는 47.3%에 달했다.

그동안 상속세에 대해서는 이처럼 "'부의 대물림' 문제 해결을 위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과 "기업의 성장동력을 위해 완화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평행선을 달려왔다.

다만 이제는 과거와 비교해 과세 인프라가 많이 개선된 만큼 합리적인 제도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서희열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제는 상속세 과세 체계를 비롯한 본질적인 문제를 다시 들여다 볼 시점에 왔다"고 말했다.

세종 = 박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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