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센터는 '시간과의 싸움' 중
상품 이동 횟수·작업자 동선 고려한
최적의 흐름 만드는 알고리즘 전쟁
쿠팡 등장 이후 전자상거래(e커머스)는 물류의 전쟁터로 바뀌었다. e커머스 사업자들은 이제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만 제공하던 플랫폼 역할을 뛰어넘어 물류센터를 거머쥐고 빠른 배송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선두주자인 쿠팡의 '로켓배송'에 이어 밤 11시 전에만 주문하면 상품이 다음 날 오전 7시 전에 문 앞까지 오는 '샛별배송'(마켓컬리)뿐 아니라 주문 후 2시간 내 배송하는 '바로배송'(롯데마트)까지 다양한 방식의 배송 서비스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고객의 시각에선 사이트에 접속해 물건을 클릭하고 결제만 하면 끝날 일이다. 하지만 그 뒤편에선 대규모의 물류 흐름이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주문 접수 후 물류센터에 물건이 배치되고 분류 작업을 거친 뒤 트럭에 실려 현관에 도착하기까지는 수많은 기술이 '오차 제로'를 목표로 움직인다.
이미 소비자들은 빠른 배송에 적응돼 있다. 그래서 물류 세계는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물류센터 내 상품 이동 횟수부터 근무자들의 동선, 인공지능(AI) 분류 장치와 운송 로봇의 적절한 업무 배분까지 알고리즘을 얼마나 정교하게 최적화하느냐가 빠른 배송의 성패를 가른다는 설명이다.
광활한 대륙에선 '로봇'이 대세
아마존의 거대한 창고에선 로봇이 사람의 손을 돕고 있다. 2015년만 해도 3만여 대였던 로봇은 현재 약 20만 대로 늘었다. 이 공간에서는 선반에 상품을 적재하고 집어 올려(피킹) 박스나 봉투에 담는 일(패킹)만 인간의 영역으로 남았다.
로봇은 선반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가 선반을 들어올린 뒤 선반에 놓여 있는 상품이 필요한 작업자 앞까지 이동한다. 이들의 움직임은 바닥에 있는 QR코드에 입력된 알고리즘 속에 철저히 설계돼 있다. 코드 위를 지날 때 대기 또는 이동, 이동해야 하는 방향 등이 명령으로 내려진다. 사람이 일일이 선반 사이를 움직일 필요가 없어 상품을 가져다 택배 박스에 넣는 작업은 로봇 투입 전 평균 60분에서 현재 15분으로 줄었다.
중국의 쇼핑 대축제인 광군제 기간 20억 건의 상품 주문이 접수되는 알리바바도 비슷하다. 최대 500㎏까지 운반할 수 있는 지능형 로봇 수백 대가 물류 창고 안을 휘젓고 다닌다. 영국의 e커머스 업체 오카도는 출고할 상품을 꺼내는 피킹 작업도 로봇에 맡겼다.
좁은 땅 한국에선 사람과 알고리즘의 협업
운반 로봇은 인간 작업자의 동선을 줄여주는 효율성이 높지만 문제는 대부분이 수평 이동에 최적화돼 있다는 점이다.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 중국 등에선 로봇을 자유롭게 풀어둘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한국식 물류센터는 수직으로 층수를 높게 올릴 수밖에 없다.
국내 센터가 물건 자체의 운반보다는 상품 공급 순서, 배치 및 분류 방식에 정보기술(IT)을 입히는 형태로 나아가게 된 배경이다. 컨베이어벨트의 이동 흐름, 상품들이 담기는 박스나 진열대를 배치하는 과정 중간에 AI 기반 알고리즘을 투입해 사람의 노동을 덜어주는 방식이다.
손 많이 가는 분류와 검수, AI가 척척
우선 물류센터에 도착한 트럭에서 하차된 상품들은 입고 순간부터 분류 작업을 거치게 된다. 크기와 모양(형상)별로 분류해야 하는데, 이전에는 전적으로 사람 노동에 의존했다. 최근에는 분류 작업에 AI 도입이 활발하다. 하나의 컨베이어벨트가 세 갈래로 나뉘는 지점에 설치돼 있는 AI의 이미지 인식 기술이 대형과 중소형, 이형(異形) 등 3가지 타입으로 자동 분류한다.
배송 출발 전 가장 마지막 과정인 물품 검수에도 AI가 활용된다. 검수는 고객 주문대로 상품이 구성됐는지 점검하는 단계다. 사람이 상품의 바코드를 일일이 찍어 확인하거나 바코드를 자동으로 인식하는 기계가 있더라도 바코드 훼손 또는 인식 각도 차이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AI는 전면, 측면, 후면 등 다각도의 상품 이미지를 분석해 0.1초 만에 상품을 인식하고 검수를 마친다.
한 번에 많이 담고 이동 횟수는 최소화
입고부터 출고 사이 단계는 주로 센터에 도착한 물건을 특정한 법칙에 따라 배치해 뒀다가 주문 처리 작업자가 고객 개개인의 주문대로 상품을 피킹 및 패킹하는 과정이다. 배치와 피킹 등을 위한 상품의 이동과 인력의 동선을 최소화하는 게 물류자동화의 핵심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물류자동화 시장은 약 7,600억 원으로 LG CNS 점유율이 30%로 가장 높다. 마켓컬리가 최근 경기 김포시에 신축한 물류센터에도 LC CNS의 자동화 시설이 도입됐다. LG CNS 관계자는 "해당 물류센터가 담당하는 지역 고객들의 누적된 주문 데이터를 분석한 뒤 작업자가 상품을 이동시키는 횟수를 줄이고 업무량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식으로 시간당 주문 처리량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1시간 동안 50명의 고객이 양파 1개씩 주문했다고 가정했을 때 최적화 알고리즘이 없는 센터에서는 최악의 경우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양파를 1개씩 50번 이동시켜야 한다. 1시간 뒤까지 양파 주문이 몰린다는 것을 예측해 기다렸다가 50개를 한 번에 날라 이동 횟수를 1번으로 줄이는 게 최적화 알고리즘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냉동, 냉장, 상온의 3가지 온도대별로 수만 개 상품이 존재한다. 고객별 주문 상품과 수량도 다르다. 알고리즘은 이런 변수를 고려해 동일한 시간에 주문처리를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최적의 상품 공급 순서를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는 근로자 작업시간을 균등하게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고객 A는 양파 1개, 고객 B는 양파 3개와 우유 2개, 감자 1개를 주문했을 때 작업자는 고객 A 주문을 처리하는 게 가장 쉽고 빠르다. 알고리즘은 시간 단위로 고객의 주문 데이터를 들여다본 뒤 고객 B와 같은 복잡한 주문이 소수 작업자에게만 몰리지 않게 업무를 배분한다.
인간의 움직임도 알고리즘이 결정
이동해야 할 상품을 배치하는 단계에도 치열한 기술이 숨어 있다. 쿠팡의 경우 이 기술을 '랜덤(무작위로) 스토우(집어넣다)'라고 부른다. 휴지는 휴지대로, 기저귀는 기저귀대로 정해진 공간에 배치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한정된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쿠팡 물류센터 내부는 언뜻 보면 무질서해 보인다. 일렬로 배열된 선반들에는 다양한 제품이 곳곳에 소량씩 배치돼 있다. 같은 기저귀라도 서로 다른 선반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상품별로 입출고 시점을 예측하고 피킹 인력의 동선을 고려해 랜덤 스토우가 각 상품의 배치 공간을 지정한다.
입고 담당자는 물건이 도착하면 랜덤 스토우 기기가 지시하는 선반 위치에 제품을 가져다 둔다. 랜덤 스토우 시스템은 피킹 직원과 제품의 현재 위치, 재고량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가 가장 빠른 동선을 찾아 출고 담당자에게 그곳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휴지와 기저귀를 가져와야 한다면 휴지와 기저귀가 쌓여 있는 특정 위치로 무조건 이동할 필요가 없이 두 제품을 모두 가져올 수 있는 동선을 최소화해 움직이는 것이다.
e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물류센터는 소품종의 상품을 대량으로 보관하고 있다가 이 상품을 또 다른 판매처로 운반하는 데 국한됐지만 갈수록 주문당 물품 구성이 다양해지고 주문 빈도도 증가하고 있다"며 "작업의 복잡도가 상승하고 있어 겉에서는 창고처럼 보여도 안에서는 물류 이동을 최적화하는 알고리즘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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