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으로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올해 지방대 대규모 미달 사태가 벌어지자, 결국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지역별로 대학 미충원 하한선을 정하고, 이에 미달하는 대학은 정원을 감축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수도권 대학 입학생 증가 원인으로 꼽힌 ‘정원 외 모집’ 규모도 점진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교육부는 이런 내용을 포함한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 지원 전략’을 20일 발표했다. 교육계에선 "늦었지만 긍정적"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지적에...권역별 미달 차등 평가
이번 전략에 따르면 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 등을 위해 나라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 대부분의 대학은 '자율혁신대학'으로 지정돼 '셀프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전국을 수도권 등 5개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 '유지충원율' 지표를 만들어 올 10월 발표할 예정이다. 유지충원율은 대학이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 신입생과 재학생 충원 비율을 말한다. 수도권과 지방 대학의 선호도 차이를 감안해 미달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을 달리 적용하겠다는 얘기다.
이후 대학들은 발전 전략과 적정 모집정원을 담은 구조조정계획(자율혁신계획)을 내년 3월까지 교육부에 제출해야 한다. 교육부는 각 대학이 제출한 계획을 이행하고 유지충원율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내년 하반기부터 점검한 뒤 그렇지 못한 대학에 대해선 정원 감축을 요구할 예정이다. 정원 감축에 응하지 않는 대학에는 재정 지원을 중단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정원 축소 권고 대학이 권역별로 30~50%에 이를 것”이라며 “자율혁신계획 추진 우수대학에는 인센티브를 준다”고 설명했다.
각 대학이 유연하게 정원을 조정할 수 있도록 제도도 개선한다. 대학원 정원을 늘려 학부생을 줄이는 것도 정원 감축 실적으로 인정하고, 동일법인 소속 대학 간 정원 조정도 허용한다. 지방대 미달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 ‘정원 외 입학’ 역시 손보기로 했다. 현재 정원 외 입학 전형 인원은 교수 1인당 학생 수나 학교 면적 같은 대학 운영 요건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교육부 관계자는 “앞으로는 정원 내외 총 인원을 모두 포함해 운영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정원 외 일부 전형은 정원 내 선발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실 대학엔 퇴출 경로...교육계 "늦었지만 다행"
재정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지 않았거나 재정 지원에 제한을 받는 부실 대학은 '한계대학'으로 지정해 내년 중 재정 위기 정도를 파악해 별도 관리하기로 했다. 위험 수준에 따라 개선 권고, 개선 요구, 개선 명령의 3단계 시정 조처를 하고, 그래도 회생 불가로 판단되면 차라리 청산융자금을 지원하는 등 퇴출 경로를 만들어준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폐교하는 대학의 잔여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번 전략에 구체적인 처분 방식은 포함되지 않았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사학법인이 해산할 때 별도 정관이 없으면 남은 재산을 국고나 지자체에 귀속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부실 대학이 스스로 문 닫는 걸 꺼린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올해 대입에선 전문대 포함 전국 대학 총 4만586명의 신입생이 미달돼 충원율이 91%로 집계됐다. 작년 미달 인원(1만4,158명)의 3배에 이른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입학정원이 현행대로 유지될 경우 2024년에는 미충원 인원이 10만 명에 달해 신입생 충원율은 79%에 그칠 전망이다.
일각에선 대학 구조조정에 소극적이던 문재인 정부가 이 같은 초유의 대학 미달 사태를 경험하고 지난 정권의 대학구조개혁 정책으로 회귀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하지만 지방대, 전문대를 중심으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한 지난 정부와 비교해 이번에는 지역별 차등을 두는 등 ‘기울어진 운동장’을 감안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교육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교육계는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구조조정 없이 미달 사태를 해결하기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황희란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학들에 정원 감축 유도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편법적으로 운영된 정원 외 선발도 정원 내로 유도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봤다.
다만 폐교 대학의 출구 전략 필요성엔 공감하나, 방식은 더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대학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에서 혈세를 투입해 청산을 지원하는 방안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는 이날 2022학년도 재정지원가능대학 명단을 함께 발표했다. 서울기독대와 두원공과대 등 일반대학 9개교, 전문대 9개교가 학자금 대출 제한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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