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 <11>라벨 및 스티커
편집자주
기후위기와 쓰레기산에 신음하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생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걸까요.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은 그동안 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온 재활용 문제를 생산자 및 정부의 책임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투명 페트(PET)병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접착제가 발려 잘 떼어지지 않는 비닐(PP나 PE 재질) 라벨이 붙어있다. 다른 하나는 절취선으로 쉽게 뜯을 수 있는 비접착식 라벨이 붙어있다.
보통 소비자들은 후자가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며, 될 수 있으면 후자를 고를 것이다. 실제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PET병의 비접착식 라벨은 '친환경 절취선 라벨'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재활용 업체들은 스티커가 잘 떼어지지 않아도 전자를 훨씬 선호한다. 후자는 심지어 골칫거리다. 어쩌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걸까.
PET재활용 공정과정에서 접착식 라벨은 자연스레 분리될 수 있지만, 절취선 라벨은 자연분리가 불가능하다. 물론 국내 모든 소비자가 절취선 라벨을 뜯어내고 PET병만을 버린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라벨이 떼이지 않은 채 재활용 쓰레기통에서 뒹굴고 있는 병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때문에 굳이 스티커나 라벨을 떼지 않아도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유럽의 경우 투명 PET병에 자연 분리가 되는 라벨만을 사용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상하게 자연 분리가 되는 접착식 라벨을 몰아내고 절취선 라벨이 '친환경' 이미지를 획득하며 PET병 시장을 장악해버렸다.
다른 국가들은 절취선 라벨이라 해서 무턱대고 '친환경'이라는 지위를 부여하지 않지만, 우리는 정부와 국회에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등급 설정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친환경 절취선 라벨'의 문제점과 재질별 라벨의 특성을 들여다봤다.
재활용 방해하는 ‘절취선 라벨’의 배신
절취선 라벨은 ‘떼기 쉬워 친환경’이라는 마케팅과 달리, 현장에서는 “재활용을 방해한다”고 지목되는 대상이다.
PET병 재활용 업체들에 따르면, 절취선 라벨은 ‘비중 분리’를 못하게 만든다. 비중 분리는 PET 재질이 물에 가라앉는 성질을 이용한 라벨 분리 방법이다. PET는 밀도가 높아(비중 1 이상) 물에 가라앉는다. 반면, 비닐로 많이 쓰이는 PPㆍPE는 밀도가 낮아(비중 1 미만) 물에 뜬다. 종이도 물에 가라앉기 때문에 PET병에는 종이 라벨이 금물이다. 라벨 재질만 규제하면 비중을 이용해 라벨 분리가 가능한 것이다.
지난 18일 취재진이 인천의 PET병 제조업체 신우코스텍의 도움을 받아 실시한 실험에서 이 같은 '비중 분리' 현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업체는 '비중 분리'가 가능한 스티커·라벨를 개발하고 있다.
영국ㆍ독일 등에서는 PET병에 물에 뜨는 라벨만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PET병 재활용은 병을 잘게 자르고(파쇄) 수조에서 씻는(세척)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라벨만 규제하면 별도 설비도 필요 없다. 한국의 PET병 업체들도 파쇄ㆍ세척을 하기 때문에 업체 크기와 관계없이 비중 분리를 할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절취선 라벨을 쓸 경우 비중 분리를 못 한다. 포장 방법상 물에 가라앉는 재질(PET·PS 등)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취선 라벨은 둥근 형태의 라벨을 PET병에 씌워놓고 안쪽으로 수축시키는 방식을 사용한다. 접착제를 쓰지 않는 대신에 수축으로 병 몸체에 단단하게 고정을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PPㆍPE 재질은 강도가 약해 이 힘을 견디지 못하고 찢어져 버린다. 실제 시중의 절취선 라벨은 대부분 PET 재질이다. 절취선 라벨은 같은 PET라도 잉크로 그린 무늬와 글씨가 있기 때문에 투명 재질과 함께 섞이면 재활용을 방해한다.
PET병 재활용 업체 엘림이엔 관계자는 “영국ㆍ독일처럼 비중 분리가 가능한 라벨만 허용하면 소비자가 떼지 않더라도 자동 분리가 가능하다”며 “국민 대부분이 라벨 분리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PET병 재활용 업체 관계자도 “풍력 선별ㆍ비중 분리 등 라벨 분리 시설을 갖췄지만 절취선 라벨이 걸러지지 않아 현장에서 애를 먹고 있다”며 “소비자가 떼지 않는 한 절취선 라벨을 재활용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절취선 라벨 도입, 환경부·국회에서 밀어붙여
환경부도 라벨이 재활용에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고 있다. 2019년 환경부 고시로 제정한 ‘포장재 재활용 용이성 등급평가 기준’엔 몸체 재질별 라벨의 재활용 영향이 자세하게 기재돼 있다.
고시에 따르면, 라벨이 몸체 재활용에 영향을 미치고 접착제가 강해 분리가 안 될 경우 재활용 ‘어려움’ 등급을 받는다. ‘어려움’으로 분류될 경우 포장재에 이를 표기해야 하고,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분담금이 20% 늘어난다.
실제 알파자원(유리병)ㆍ청목자원(플라스틱) 등 재활용 업체 관계자들은 “제도 도입 후 라벨 분리가 수월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한영 한국포장기술사회장은 "업체들이 그간 강력 접착제를 사용한 것은 '접착제는 강한 게 좋다'는 통념 때문"이라며 "접착제를 약하게 바꾸는데 별도의 설비 변경이 필요하진 않아서 비용·기술 문제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PET병에 절취선 라벨을 허용한 것만은 재활용 체계를 뒤흔드는 ‘독소 조항’으로 비판받는다. 모든 '비중 1 이상' 라벨을 금지해야 했는데, 절취선 라벨에 예외적으로 허용하면서 물에 가라앉는 라벨이 섞여 들어오게 됐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PET병 라벨은 '비중 1 이상' 라벨을 전면 금지해 비중 분리를 유도하는 유럽식 모델과, 모든 국민이 라벨을 떼도록 교육해 온 일본식 모델로 나뉜다"며 "한국은 라벨 제거가 자리 잡지 않아 유럽식 모델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절취선 라벨을 허용해 재활용 시스템이 엉망이 됐다"고 지적했다.
고시 초안에서는 환경부도 '비중 1 이상' 라벨을 전면 금지해 비중 분리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설계했었다. 2019년 1월 환경부가 공고한 고시를 보면, '비중 1 이상 라벨'이 재활용 '어려움' 항목으로 지정돼있다. 이는 2018년 서울대가 환경부 용역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비중 1 이상’ 라벨 제한을 권고한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절취선이 있는 경우는 비중이 1 이상이어도 ‘보통’에 해당한다는 조건을 붙여 최종 고시안이 바뀌었다. PET병 포장 업계에서는 당시 절취선 라벨 제작 기술을 개발하고, 라벨을 도입했던 업체들의 압박에 밀려 환경부가 안을 후퇴시킨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고시 도입 전 2018년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하태경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도 “절취선 라벨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아 친환경이다” “접착제를 녹이기 위해 수산화나트륨을 써서 폐수가 발생한다” 등의 이유로 절취선 라벨 도입을 지지했다.
전문가들은 재활용 공정을 이해하지 못한 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홍수열 소장은 “접착제 남용은 사용량을 최소화해 해결할 문제였고, 수산화나트륨은 접착제와 관계없이 PET병 세척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며 “당시 국회와 정부에 이 같은 내용을 충분히 설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도 설계 초반에 확실히 방향을 정해야 했는데, 이젠 이미 많은 기업들이 절취선 라벨을 도입한 상황이라서 시스템을 되돌리기도 어려워졌다"고 비판했다.
이한영 회장도 “절취선 라벨은 소비자가 뜯지 않으면 재활용이 안 되는 라벨”이라며 “비중 분리를 막으면서 소비자에게 라벨 제거를 권고한 환경부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비중 분리를 하더라도 라벨이 PET병 몸체와 소량 섞일 여지가 있어 라벨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며 "국민들에게 라벨 제거를 권고하는 한편, 제조업체에는 절취선 라벨을 사용하거나 아예 라벨 없이 PET병에 로고를 성형하는 방식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리병의 종이 라벨은 안 떼도 된다
PET병에서 알 수 있듯이, 재활용을 위해서는 몸체의 재질에 따라 라벨과 스티커의 재질도 달라져야 한다. 몸체뿐 아니라 라벨의 재질 표시도 유심히 봐야 하는 이유다.
우선 유리병 종이 라벨은 떼지 않아도 된다. 유리병 재활용 업체 등에 따르면, 유리병에 붙은 종이는 떼어내지 않아도 재활용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재활용을 위해 유리를 녹일 때 1,350℃ 고온의 용광로를 이용하는데, 이때 대부분 타서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 용광로에 녹이는 작업을 하기 전에 유리를 20㎟ 이하로 잘게 파쇄해서, 대부분 종이가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반면 유리병의 비닐(플라스틱 필름) 라벨은 꼭 떼어내야 한다. 종이와 달리 용광로에 녹여도 촛농 형태의 ‘잔탄’이 남아 완제품의 색깔ㆍ모양에 변형을 가져올 수 있다. 재활용 업체인 SGC솔루션 관계자는 “라벨이 없는 경우가 최선이지만 부득이하다면 종이를 쓰거나 잘 떼지는 비닐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PPㆍPE 용기의 라벨은 꼭 떼야 한다
플라스틱 용기는 PET 용기와 PET 외 용기로 나뉜다. 이 둘을 재활용하는 공장이 달라서, 공정과 완제품의 특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환경부ㆍ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KORA)에 따르면, 투명 PET병과 달리 PET 용기에 붙은 라벨은 전혀 뗄 필요가 없다. PET병과 PET 용기는 재활용 공정이 다르다.
PET 용기는 재활용 업체의 규모가 커 △약품 사용 △비중 분리 △고가 장비 등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다. 라벨 접착제가 강하더라도 파쇄ㆍ세척 과정에서 상당 부분 걸러진다.
반면 PET 외 용기는 공장 규모가 비교적 작아서 라벨을 꼭 떼야 한다. 접착제가 강할 경우 매립ㆍ소각된다. 다만, PP 재질의 몸체에 PE 재질의 라벨을 쓰거나, 그 반대 경우 재활용이 가능하다. PP와 PE가 유사한 화학 구조를 갖춰 라벨이 섞이는 정도는 품질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이 재질의 재활용품을 분석하면 약 9:1 비율로 섞여있다고 한다. 당연히 PP 몸체에 PP 라벨, PE 몸체에 PE 라벨도 재활용이 된다.
철캔ㆍ종이팩의 라벨은 안 떼도 된다
종이팩ㆍ철캔의 라벨은 안 떼도 된다. 종이팩은 겉면에 비닐이 코팅돼있는데, 재활용 과정에서 이 부분을 제거하고 안쪽의 종이 펄프만 사용한다. 라벨은 자연스레 겉면 비닐과 함께 제거된다. 철캔은 용광로가 1,500℃ 이상이어서 대부분의 라벨이 타 없어지고, 제철소의 규모가 크고 기술이 발달해 약품처리ㆍ이물질 제거 등이 수월하다고 한다.
반면, 같은 금속캔인 알루미늄은 비닐 라벨일 경우 꼭 떼는 게 좋다. 철캔과 마찬가지로 종이 라벨은 전부 타 없어지지만, 비닐은 잔탄 형태로 남기 때문이다. 알루미늄이 철에 비해 순도에 민감해 적은 이물질로도 재활용품 품질이 크게 떨어진다. 또 유리와 달리 파쇄 과정이 없어 비닐 대부분을 수작업으로 벗겨야 해, 강한 접착제를 쓸 경우 재활용에 지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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