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관통한 기류는 중국 견제
대만, 미사일, 쿼드 등 미국 쪽 입장 지지
국익 고려한 결정이나 치밀한 전략 필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도록 포장됐지만 한미 정상회담 전반을 관통한 기류는 대중국 견제였다. 한국을 어떻게 하면 중국에서 한 발짝 당겨올까가 미국의 주된 관심사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처럼 장삿속으로 우악스럽게 몰아붙이지 않는다. 자유민주와 인권 등 가치를 내세워 은근히 압박한다. 대신 외교의 기본원칙인 주고받기에 철저하다.
미국으로서는 원하는 걸 충분히 얻었다. 공동성명 곳곳에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의 한국의 역할 확대가 언급됐다. 회담 전부터 논란이 됐던 인도ㆍ태평양 지역 4개국 협의체인 쿼드 가입 얘기는 없었지만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한국의 쿼드 참여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 의도는 분명하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라고 공동성명에 명시된 데서 나타나듯 중국의 군사안보적 위협에 대한 경고다. 공교롭게도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는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주한미군의 미ㆍ중 갈등 지역 투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미일의 결속, 나아가 쿼드 강화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미국은 “쿼드는 아시아판 나토가 아니다”라고 부인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지향하는 역할에 별 의문이 없다. 일본은 중국의 동쪽, 호주는 중국의 남쪽, 인도는 중국의 서남쪽에 위치한 주요 국가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지배하는 미국이 중국의 군사 진출을 막으려는 목적이 뚜렷하다. 오바마 대통령 시기 ‘아시아 회귀’ 전략이 트럼프를 거쳐 바이든에서 ‘쿼드’로 완성된 것이다. 다만 당장은 안보 색채는 다소 덜어내고, 비(非)전통안보 이슈 협력을 부각하고 있다.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였던 백신과 반도체도 쿼드의 중점 협력 분야다. 중국과 기술패권 경쟁에서 앞서가겠다는 전략이 ‘반도체 동맹’으로 나타났고, 백신 외교를 둘러싼 미ㆍ중 간 신경전이 한국 백신 지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번에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대규모 투자 계획이라는 선물을 미국에 안겨줬다.
여기에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라는 새 변수가 등장했다. 우리에게 미사일 자주권 확보는 전작권 환수 못지않은 쾌거임에 틀림없다. 주권국이라면 북한은 물론 주변국으로부터의 위협에 대비할 자위적 수단을 갖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아무리 동맹국이라도 주요 전략무기 개량을 수용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중장거리 미사일을 한반도에 배치하지 않고도 중국을 견제할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다. 중국 지도부가 모여 있는 베이징의 거리는 한반도에서 1,000㎞가 안 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한국 외교에 중대한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외줄타기에서 미국으로 한 걸음 옮기는 전략적 선택을 감행했다. 미ㆍ중 경쟁 구도에서 미국 쪽 자장(磁場)에 들어가는 게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미ㆍ중 대결이 아닌 자유민주 진영의 결집이란 흐름을 외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국은 다음 달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받았고, 올 하반기 바이든 대통령이 열겠다고 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도 참가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국력은 동북아를 넘어 국제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됐다는 게 이번에 확인됐다.
문제는 중국과의 관계다. 중국이 회담 결과에 대해 비교적 절제된 반응을 보이고는 있으나 약한 고리인 한국을 희생물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자유주의 진영과 중국과의 대결 구도로 판이 달라져 한국만 특정해서 대응 조치를 취하기는 힘들 것이다.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에선 공동성명에 대만 문제가 언급된 것을 놓고 “루비콘강을 넘었다”는 평이 나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루비콘강을 절반쯤 넘은 것으로 보인다. 국제질서의 대변환 속에서 복잡한 흐름을 면밀히 읽으면서 장기 전략을 마련하고 치밀하게 준비할 때다. 남은 1년, 문재인 대통령의 할 일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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