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전 최고위원을 바라보는 국민의힘 표정은 복잡미묘하다. '국회의원 0선' '36세 청년' '법조인·교수·관료 출신 아님'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앞세운 그가 당대표 경선에서 '의외의' 선전을 하고 있어서다.
국민의힘은 "젊은 세대의 도전이 당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며 겉으론 반긴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이 전 최고위원이 뜰수록 중진 의원들은 '꼰대' '구태' 이미지에 갇히고, 초선 의원들은 '쇄신의 주역' 이미지를 잃어버리는 역설 때문이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이준석 바람'이 부는 이유는 뭘까.
이준석의 강력 무기 '대선주자급 인지도'
이 전 최고위원의 상승세는 여론조사 수치로 확인됐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후보 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쿠키뉴스·한길리서치의 22일 조사를 보면, 이 전 최고위원(30.1%)은 나경원 전 의원(17.4%), 주호영 전 원내대표(9.3%)를 앞섰다. 초선 당대표 후보인 김웅·김은혜 의원의 지지율은 각각 5%, 4.9%였다.
이 전 최고위원의 선전 이유로는 '인지도'가 첫손에 꼽힌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이었던 2011년 영입한 '박근혜 키즈'다. 정치 입문 과정 자체가 요란했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서울 노원병에서 맞붙어 몸집도 키웠다. '0선 중진'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대중과 친숙하다.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최근 당대표 후보 여론조사는 사실상의 '인기 투표'다. 미디어를 잘 활용하는 이 전 최고위원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는 지난 10년간 왕성한 방송 활동을 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2030세대 대변인을 자처하며 각종 이슈에 목소리를 냈다.
4·7 재·보궐선거 이후 이 전 최고위원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페미니즘 논쟁'을 한 달 가까이 벌인 것도 이름값을 높였다. 이 전 최고위원이 20대 남성의 안티 페미니즘 정서를 자극하면, 미디어가 실시간으로 받아쓰며 이슈를 키웠다. 지난 50일간 구글트렌드 검색량 추이를 비교하면, 당권 주자 8명 중 이 전 최고위원 관련 언급량이 압도적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진 전 교수가 이 전 최고위원의 몸집을 키워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마크롱? 이상한 돌풍?
여의도가 '5060세대 남성 엘리트 집합소'인 점을 감안하면, 이 전 최고위원이 제1야당의 대표 주자로 뜨는 건 이례적 현상이다.
정치권의 분석은 엇갈린다. 일단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반성과 쇄신이 더딘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준석 바람'으로 폭발했다는 시각이 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지난해 총선 이후 초선 의원들이 보수의 쇄신이나 변화를 얘기했지만 행동이 너무 느려 국민들이 체감하기 어려웠다"며 "보수정당이 빨리 변하라는 게 민심의 요구"라고 말했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에 편승한 '실체 없는 바람'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이 보수 쇄신을 말하지만 구체적인 비전 제시는 부족하고, 거물급 중진들과의 입씨름으로 몸집 키우기에만 몰두한다는 측면에서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이번 당대표 경선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비전 경쟁을 할 마지막 기회인데, 후보의 나이가 어리냐, 많냐의 논쟁으로 덮였다"고 꼬집었다.
이준석 바람, 미풍? 돌풍?
이 전 최고위원의 초반 선전이 당대표 당선으로 이어질까.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는 다르다는 신중론이 적지 않다. 당대표 선거 본 경선은 '당원투표 70%, 일반시민 여론조사 30%'로 승자를 결정하는 만큼, 보수적인 '당심'이 중요하다. 국민의힘 당원 상당수가 포진한 영남권과 60대의 선택은 일반시민 여론조사와 다를 수 있다. 다만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국민의힘 쇄신 열망은 이미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며 "전당대회에서 예년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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