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보영’(29)을 수식하는 말들은 이미 숨 가쁘게 많다.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데뷔, 이듬해 낸 첫 시집으로 역대 최단기간에 김수영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손으로 쓴 일기를 직접 모집한 독자들에게 우편으로 발송하는 ‘일기 딜리버리’와 신작 시를 전화로 읽어주는 '콜링 포엠'을 운영하고 있고, 일상 브이로그를 찍어 올리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취미는 힙합 댄스에 책 표지 그림도 직접 그린다. ‘문학계의 트렌드세터’ ‘문단 아이돌’ ‘힙스터 시인’… 모두 이 재주 많은 젊은 작가를 어떻게든 담아 보려는 표현이다.
여기에다 이제는 ‘소설가’라는 소개까지 추가됐다. 최근 알마에서 나온 ‘하품의 언덕’은 문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25일 서울 은평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길게 써도 죄책감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며 소설에 도전한 소회를 말했다.
소설 창작은 출판사의 청탁이 계기가 됐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보고 이에 영감받은 작품을 쓰는 일이었다. 마침 ‘나 자신’을 주제로 삼는 일에 소진되어 가고 있던 터라, ‘다른 방식으로’ 쓰기 좋은 핑계였다.
“일기 딜리버리를 하면서 좀 지쳐 있었어요. 일기는 ‘나’라는 화자가 계속 주어가 되어야 하는데, 2년 동안 쉬지 않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글감으로 쓸 ‘삶’이 부족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소설은 시에서 이대로 끝내기 아쉽다고 생각한 이야기들을 밀대처럼 밀어 구석구석 볼 수 있게 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문장만 써야 하는 시와 달리 소설은 중요하지 않은 문장도 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책은 이렇게 ‘이야기를 밀대처럼’ 밀어서 탄생한 총 16개의 단편으로 구성됐다. 이 중 여덟 편이 ‘책말이’ 연작 시리즈인데, 책의 낱장을 찢어 뭉치처럼 돌돌 말아 가지고 다니며 다 읽은 후에는 이를 버리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맨 아래에 깔린 책을 얻기 위해 기둥을 무너뜨리는” 내용의 첫 시집 ‘책기둥’에 이어 책에 관한 독특한 상상력이 핵심이 되는 작품이다.
“저는 책을 읽을 때 항상 뭔가를 쓰면서 읽거든요. 그러다 보니 책을 펼쳐서 읽는 게 어려워요. ‘책말이’는 책과 화해하고,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읽는 방법을 찾아가는 얘기예요. 실제로 소설을 쓰면서도 많이 ‘찢었어요’. 전체 이야기의 3분의 2가량을 찢어서 버렸거든요(웃음).”
책의 첫 장에는 “세상을 이해하는 것보다 세상을 지어내는 게 편했던 거야”라고 적혀 있다. 단편 ‘비변화’의 주인공은 “세상이 실망이어서 일기나 썼다. 부족한 느낌을 채우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문 작가에게 글쓰기는 “세상을 느끼기 위한” 안간힘이다.
“항상 세상을 느끼는 데 있어 미달이라고 생각했어요. 남들이 모두 재밌다고 하는 일, 멋지다고 하는 일에 잘 끼지 못해서 소외감을 느꼈죠. 나중에 그 순간을 복기하는 일기를 쓸 때야 비로소 그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어요. 유튜브도 마찬가지예요. 영상을 편집할 때가 정작 그 영상 속 삶을 살 때보다 즐거워요. 덕분에 삶을 늦게나마 뒤쫓아 가는 것 같아요.”
세상을 느끼고, 뒤쫒아가려는 잰 발걸음은 5년간 총 7권의 단행본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산문집 계약만 10개, 이후부터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사양했다. “당분간은 소설을 좀 더 써보려고요. 여름부터는 일기 딜리버리도 다시 시작할 거고요. 이따 브이로그도 찍으려고…” 오늘도 문보영은 끊임없이 확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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