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여성으로서 겪은 아픈 일들이 나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그 일이 우리들만의 일이 아니었음을, 함께 싸워 나갈 것을 다짐하기도 합니다. 5년 전 한 여성이 번화한 도심, 강남의 한복판에서 일면식도 없던 사람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추모하려고 개신교계 여성주의 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기독교 페미니즘 운동단체인 '믿는페미'를 비롯해 한국YWCA연합회,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등 17개 단체가 25일 저녁 서울 중구 향린교회에서 올린 여성주의 연합예배에서는 한데 뭉쳐 차별과 폭력, 여성혐오로 빼앗긴 양식, 정당한 권리를 되찾자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날 예배에서 제대에 선 강하니 대한성공회 신부는 2016년 5월 17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살해된 여성의 죽음을 "한 여성의 불운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화와 구조가 낳은 혐오와 차별의 연장선에서 벌어졌던 사건"으로 정의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일용할 양식, 안전하고 평등한 일상의 삶을 되찾자"고 강조했다. 강 신부는 "우리의 양식은 증오가 아니며 우리의 기도는 보복이 아니다"라면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일상화된 폭력에 맞서는 지난한 투쟁 가운데 지치지 않고 연대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라고 강조했다.
이후 이야기 나눔 행사가 진행됐다. 여성들이 어떤 양식을 잃었는지 사연을 나누고 공감하는 시간으로 한 여성 신학생은 "목사가 되기 위해서 신학대학원에 들어왔지만 교회 안에서 풀타임(full time) 목사가 될 기회를 잃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풀타임 목사가 되더라도 넘어야 될 산이 한 두가지가 아니며 존재 자체로 부정당하는 느낌에 힘을 잃곤 하지만 누군가는 여성이 많이 있어야 한다며 버티자고 말한다"면서 "버티든 떠나든 이 땅의 모든 여성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주최측이 여성 목사는 사택이 필요 없기 때문에 구역을 담당하는 역할조차 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자 예배석에서 한탄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예배의 초점은 여성이 잃은 양식에 맞춰져 있었으나 연대의 길도 모색됐다. 먼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유튜브로 중계된 예배는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성별에게 참가자격을 열어뒀다. 2부 순서에서는 현재 국회에서 진행 중인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에 대한 홍보도 있었다. 이날 감사기도에서 민아름 여민교회 목사는 "우리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성별과 성적 지향, 외모, 나이, 장애,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출신지역과 국가, 피부색, 언어, 사회적 신분, 학력, 고용 형태, 전과,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차별 받아 일용한 양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우리에게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하시니 감사하다"고 기도했다.
■참여 단체 목록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기독교반성폭력센터, 기독교위드유센터, 무지개신학교, 믿는페미, 서울 YWCA,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여학우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 전국연합회,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YWCA연합회,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민중신학회,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성정의위원회,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여학생회, 한신대학교 신한대학원 학생회, 향린공동체 성정의위원회, #ChurchToo#있다#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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