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만의 가뭄에 저수율 10% 미만 그쳐
'방역 모범국'에서 코로나19 확산국으로?
악재 지속 땐 글로벌 반도체 품귀 불가피
대만이 삼중고에 빠졌다. 수십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과 대규모 정전 사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까지 겹치면서다. 세계 반도체 산업 중심지인 대만이 기후변화와 보건 위기 악재에 흔들리면서 가뜩이나 수급난으로 괴로운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기근 현상이 한층 더 심해질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가뭄에 정전, 코로나까지
26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올봄 56년 만에 닥친 대만의 기록적 가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대만에는 한 해 평균 3, 4개 태풍이 상륙하는데 태풍이 뿌리는 막대한 양의 비가 저수지를 채운다. 그러나 지난해 이상 기후로 태풍이 대만을 속속 비껴가면서 지난달 대부분의 저수지가 고갈됐다. 주요 댐의 저수율이 10%를 밑돌자 대만 정부가 6년 만에 처음으로 물 부족 적색 경보를 발령했을 정도다.
이른 무더위는 대규모 정전 사태로 이어졌다. 13일과 17일 각각 400만, 66만 가구의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기온이 40도까지 오르며 곳곳에서 전력 소비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가뭄 탓에 수력 발전량도 부족해 25일 기준 대만 전력 예비율은 8%에 불과하다.
급속도로 악화하는 감염병 상황도 고민거리다. 대만은 그간 ‘코로나19 모범국’으로 꼽혔지만 방역에 구멍이 뚫리면서 이달 11일부터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한 달 전만 해도 10명 안팎이던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이날 300명이 넘었다. 사망자(11명) 역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처음 두 자릿수로 늘었다. 위험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병실 구하기가 어려워진 수도 타이베이 등에서는 대만 보건당국이 환자를 지방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정도다.
악재 이어지면 반도체 시장 타격
문제는 이런 위기가 대만 내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연의 역습에 당하고 있는 반도체 생산 업체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 점유율 1위다. 반도체 생산에는 물과 전력이 필수인데, 일단 반도체 기판 역할을 하는 웨이퍼를 깎거나 씻어낼 때 쓰이는 ‘초순수’(산업용수를 정제해 만든 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대만 내 TSMC 공장이 정상 가동하기 위해서는 하루 20만톤의 물이 필요하지만, 가뭄으로 공업 용수가 바닥이다. 대만 정부가 농업용수 공급을 중단하며 공장 가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다. 가뭄이 해소되지 않으면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TSMC 공장 직원 한 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당장 공장 운영에는 지장이 없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지만 감염병 상황이 악화할 경우 언제든 공장이 멈춰 설 수 있다. 회사는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산 인력을 나눠 팀별 작업을 시작하는 등 현장 조정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해부터 휴대폰 등 각종 전자기기와 전기차 수요가 폭증하면서 세계적으로 반도체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데, 파운드리 분야 세계 점유율 60%에 달하는 이 회사의 생산 공정에 문제가 생기면 글로벌 반도체 공급에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이미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상당수 완성차 업체가 반도체 부족으로 공장 가동을 일부 중단했다. 대만 상황이 더 나빠지면 전 세계가 극심한 반도체 기근을 겪게 될 거라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대만이 가뭄과 정전, 코로나19 급증이라는 세 차례 타격을 입고 있다”며 “모두 경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나마 희망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이다. 대만의 백신 접종률은 아직 1%대다. “대만의 접종 속도가 빨라지지 않으면 글로벌 반도체 대란이 더 악화될 것”(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그러나 현재 대만의 백신 확보에는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공급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탓이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이날 집권 민진당 회의에서 “(화이자 백신을 공동 개발한) 독일 바이오엔테크와의 백신 계약 체결에 근접했지만 중국이 개입하는 바람에 성사시킬 도리가 없다”며 중국을 공개 비난했다. 2월 체결 직전까지 간 계약이 중국의 압박 탓에 회사 측이 입장을 바꾸며 망가졌다고 의심한 것이다. 중국은 대만의 주장을 부인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대만이 중국에서 백신을 확보하려고만 한다면 그 채널은 막히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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