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급 채식주의자도 버거와 라면을 먹을 수 있다. 채식 라면이나 식물성 고기로 만든 버거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루 세 끼 콜라만 마셔도 사전적으로는 비건인 셈이다. 육식은 아니더라도 이런 가공식품을 먹는다면 소위 ‘정크 비건’이라 할 수 있다. 채식에서 한 발 더 발전해 이젠 ‘자연식물식’이 뜨고 있다. 자연식물식은 동물성 식품을 배제하고 식물성 식품을 먹는 채식과 비슷하지만, 정제되거나 가공된 식품의 섭취를 최대한 자제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서점가에는 관련 책들이 잇따라 출간됐고, SNS상에서도 이를 실천하는 이들의 기록이 늘어나고 있다.
채식이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었다면, 자연식물식은 ‘어떻게 먹을 것인가’로 한발 더 나아간다.
자연 상태의 음식이라고 해서 생식(生食)만 떠올려선 곤란하다. 자연식물식은 가공 정도에 따라 식품을 구분한다. 가루를 내거나 껍질을 벗기거나 건조시키는 것은 ‘경미한 가공’이다. 여기에 식용유, 설탕, 소금 등을 인위적으로 첨가해 고열의 기름에 튀기거나 볶거나 구우면 ‘고도 가공’ 식품으로 구분한다. 예컨대 과일주스나 잘라서 건조한 과일, 껍질을 벗긴 백미를 가루 내 만든 가래떡 등은 경미한 가공 식품이고, 과자나 라면, 튀김 등은 ‘고도 가공’ 식품으로 분류된다. 자연식물식은 이 같은 가공된 식품을 가급적 자제하고 샐러드나 과일처럼 생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생으로 먹되, 있는 그대로를 가열해서 찌거나 삶거나 구워서 먹는 것을 권장한다.
10년째 자연식물식을 실천하고 있는 이의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조금씩 천천히, 자연식물식’ 저자)는 “고온의 기름에 튀기거나 볶으면 유해물질(발암물질)이 생성되기 때문에 아무리 식물성이라고 하더라도 건강한 음식으로 보기 어렵다”고 한다.
도대체 뭘 먹으라는 얘길까. 7년째 자연식물식을 하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직장인인 김동현(‘풀 파워’ 저자)씨는 “세상에는 맛있는 야채, 과일, 통곡물, 콩과 식물, 견과류가 차고 넘친다”고 했다. 1일 2식 중인 그는 아침은 간단하게 과일과 커피로 해결하고, 저녁은 푸짐하게 먹는다. 감자, 껍질콩, 무, 호박, 양배추, 양파, 애호박, 버섯, 청경채, 브로콜리, 가지 등 좋아하는 야채를 냄비 속 찜기에 시간차를 두고 쪄 먹는다. 소금과 설탕은 쓰지 않고 여기에 토마토와 샐러드를 곁들인다. 제철 과일도 먹고, 얼린 바나나와 약간의 시리얼과 견과류를 간식으로 먹는다. 그는 “자연식을 하기 힘든 이유는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라며 “식단 적응 기간(6~8주)이 끝나면 식재료에서 정말 새로운 맛이 느껴져 고기가 그립지 않게 된다”고 장담한다.
‘풀만 먹으면 영양이 부족하다’, ‘직장생활이 힘들다’, ‘우유를 안 먹으면 키가 안 큰다’는 등의 반격에 대해 책을 통해 조목조목 해법을 제시한 그는 “혼란스러운 정보들이 떠다니는 가운데서도 우리 모두 옳음을 갈구하며 살아간다고 믿는다”라며 “자연식물식은 그 자체로 내 몸에 큰 의미가 있는 일을 한 것임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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