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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의 기적의 데뷔전

입력
2021.06.0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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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덩케르크 철수작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2017년 영화 '덩케르크' 포스터. amazon.com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2017년 영화 '덩케르크' 포스터. amazon.com

윈스턴 처칠이 전시내각 수상이 된 게 1940년 5월 10일이고, 독일군이 프랑스군의 마지노선(Maginot line)을 우회해 중부 아르덴 산림지역을 돌파하며 해안 기습 진격을 감행한 게 바로 그날이었다. 독일군 A·B 집단군에게 둘러싸인 영·불 연합군 34만여 명은 병참 라인마저 끊긴 채 프랑스 북부 해안의 작은 항구 덩케르크에 고립됐다. 항복이냐 전멸이냐의 갈림길에 놓인 연합군에게 기적의 바닷길을 연 게 처칠이었다. 5월 26일 일요일 새벽 시작된 '다이나모 작전' 즉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처칠의 2차대전 데뷔전이었다.

영국 해군의 원래 작전 스케일은 이틀에 걸쳐 영국 원정군 4만5,000명을 철수시키는 거였다. 압도적인 화력과 전격전의 독일 지상군이 배후에 있었고, 독일 공군의 공중폭격도 언제든 가능한 상황이었다. 탈출의 승패 역시 기동성, 즉 독일이 눈치채기 전에 얼마나 신속히 빠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독일군은, 지금도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불명확한 이유로 진군을 멈췄고, 독일 공군 폭격도 만 사흘 뒤인 29일에야 시작됐다. 그 덕에 작전은 영국군 19만여 명을 포함, 프랑스군까지 전원 탈출작전으로 전환됐다.

영국은 군함 외에 민간 화물선과 어선, 유람선, 소형 구명정까지, 훗날 처칠이 '난공불락의 모기 함대(Mosquito Armada)'라 불렀던 운항 가능한 모든 선박(860여 척)을 해협에 투입했다. 영국 공군도 숨돌릴 틈 없이 해협을 왕복하며 독일 공군을 견제했다.

배 200여 척이 침몰했고, 1만여 명이 전사했고, 170여 기의 전투기가 격추됐고, 마지막까지 후방을 지킨 프랑스군 등 4만여 명이 포로가 됐지만, 작전은 기적적으로 성공했다. 그로써 연합군은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처칠은 "실패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로 결속하여 결코 정복당하지 않을 우리 영국인들을 비쳐주는 한 줄기 빛이었다"고 자서전에 썼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탄 데는, 유럽이 그에게 진 빚 덕도 컸을 것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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