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아버지에게 딱 한 번 맞아봤다. 한 번이었지만 정말 찐하게 맞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와 싸우고 집에 왔는데 저녁 시간에 내 얼굴의 상처를 보시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라고 하셨다. 말씀을 드리고 나서 아버지에게 엄청 맞았다. 그 이유는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기보다는 집에서 음악 듣기를 좋아하던 나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씩씩하지 않고 유약하게 다닐까봐 걱정이 많으셨나 보다. 그 이후 중학교 때 두 번 더 친구와 싸운 적이 있었는데, 날 건드렸던 녀석들이 예상치 못한 나의 전투력에 적잖이 당황들 했다.
아버지께 맞은 날 나는 거의 밤새 아버지의 훈계도 들었다. 얼마나 길고 지루했는지 엄중한 훈계는 귀로만 듣고 속으로는 즐겨 듣던 팝송을 흥얼거렸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아버지의 비유가 있다. 활을 쏠 때, 화살이 처음에 단 2도만 비껴나 있어도 과녁에 이를 때가 되면 20도가 넘게 빗나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인생의 초년인 내가 조금만 비뚤어져 있어도 나중에 장년이 될 때에는 과녁에서 많이 벗어난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친구를 때려눕히지 않았던 것이 비껴난 인생 방향이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 이야기는 이상하게 잊히지 않는다.
성경을 읽다보면 지혜문헌이 인생을 ‘길’로 표현하는 것이 자주 눈에 띈다. 잠언에 이런 표현이 있다. “그들은 바른 길을 버리고, 어두운 길로 가는 사람들이다”(2:13). 잠언을 보면 인생 길에는 바른 길이 있고 옳지 못한 길이 있다. 바른 길은 “정의와 공평과 정직, 이 모든 복된 길이다"(9). 어두운 길을 가는 사람들은 “나쁜 일 하기를 좋아하며, 악하고 거스르는 일 하기를 즐거워한다. 그들의 길은 구부러져 있고, 그들의 행실은 비뚤어져 있다”(14-15).
내게는 아버지의 화살 비유가 잠언의 길 비유를 조명해 줄 수 있었다. 대전에서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톨게이트를 나오면 양 갈래길이 나온다. 서로 간에 불과 2, 3m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어느 길을 들어서느냐에 따라 종착지는 천지 차이가 난다. 하나는 서울이고 다른 하나는 부산이다. 초입에는 길이 서로 근접해 있기 때문에 정신 차리고 조심히 길을 들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게 된다.
자세히 보니 이 교훈을 전하는 잠언 2장도 아버지의 잔소리였다. 그 첫 절이 이렇게 시작한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사실 잠언의 초반부는 이제 곧 성인의 길로 들어서는 자녀에게 들려주는 부모의 교훈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으로 진입하면서 자녀들이 귀 기울여야 할 것은 바로 어르신의 인생 ‘경험’이다. 젊은이가 그 왕성한 원기와 총명한 두뇌로도 가질 수 없는 것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인생의 경험이다. 오직 어른들만 가지고 있는 보물이며 확률적으로 신뢰할 만한 고급 정보다.
우리네 부모도 성경의 아버지도 그 자녀를 보는 마음은 한결같다. 앞으로 걸어야 할 험한 인생길을 아들과 딸이 안전하고 복되게 걷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인생을 살기 위해선 인생 길 초입에서의 선택이 아주 중요하다. 간발의 차이지만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도. 이 세상에 부모의 심정만큼 정직하고 정확한 것도 없다. 성경은 이를 이렇게 아름답게 말한다.
“아이들아,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말아라.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간직하며, 네 목에 걸고 다녀라. 네가 길을 갈 때 그것이 너를 인도하여 주며, 네가 잠잘 때에 너를 지켜 주고, 네가 깨면 너의 말벗이 되어 줄 것이다. 참으로 그 명령은 등불이요, 그 가르침은 빛이며, 그 훈계의 책망은 생명의 길이다”(6:21-23).
그저 한량이 되었을 법한 나를, 그날 밤 아버지의 훈계가 막아 주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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