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美 연쇄살인마 조디악 킬러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 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한국일보>
1969년 8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 지역언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편집국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분주했다. 간밤엔 어떤 사건ㆍ사고가 일어났는지, 어떤 기사로 지면을 채울지, 난상토론이 오갔다. 그때 편집국장에게 편지 한 통이 전달됐다. “친애하는 편집국장께, 살인자가 보내는 바요.” 섬뜩한 인사말로 시작된 편지엔 1년 사이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2건이 자세히 기술돼 있었다. 범인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신문사는 발칵 뒤집혔다. 편지는 같은 날 또 다른 지역언론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와 ‘발레이오 타임스 헤럴드’에도 동시에 배달됐다. 편지 세 통에는 3등분된 암호문도 각각 동봉돼 있었다. 범인은 암호문을 신문 1면에 싣지 않으면 12명을 더 죽이겠다고 협박했고, 신문사는 범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암호문은 그리스어, 모스 부호, 날씨 기호, 알파벳, 해군 수신호, 점성술 기호로 뒤범벅돼 있었다.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국가안전보장국(NSA), 해군정보부가 합세하고도 못 푼 암호는 우연히 신문을 본 고등학교 교사 부부 손에서 며칠 만에 풀렸다. 내용은 허세와 조롱으로 가득했다. “나는 사람을 죽이는 게 아주 재미있어. 인간은 가장 위험한 동물이니까 말이야. 내 이름은 가르쳐 줄 수 없어. 그랬다간 내 사후에 노예 수집을 방해할 테니까.” 며칠 뒤 신문사에 또 편지가 도착했다. 첫 문장이 기괴했다. “조디악 가라사대(This is the Zodiac Speaking).” 그가 바로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 미국판 ‘살인의 추억’이라 불리는 ‘조디악 킬러(Zodiac Killer)’다. 조디악은 12가지 별자리인 ‘황도 12궁’을 뜻하는 말로, 편지 끝엔 원과 십자가를 겹쳐 그린 조디악 문양이 인장처럼 새겨져 있었다.
편지로 살인 고백·협박한 희대의 살인마
조디악이 저지른 살인은 모두 4건이다. 1968년 12월 20일 베니시아 허먼 호수 인근 도로 차량 안에서 10대 커플이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첫 범행이다. 7개월 뒤인 1969년 7월 4일 발레이오 블루록스프링스 골프코스 주차장에선 데이트 중이던 연인이 무차별 총격을 당해 남자만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심지어 범인은 경찰에 직접 전화해 의기양양하게 범행을 알리면서 베니시아 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조디악이 첫 번째 편지에서 묘사한 그대로였다.
편지가 발송되고 2개월 뒤인 9월 27일, 나파 카운티 베리에사 호수에서 소풍을 즐기던 연인이 조디악 문양이 새겨진 검은 두건을 쓴 괴한에게 습격을 당했다. 여자는 칼에 찔려 죽고 남자는 가까스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다. 조디악은 피해자의 차량 문에 날짜와 기호를 써 놓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또 다시 2주 뒤인 10월 11일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택시기사가 머리에 총을 맞아 즉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번엔 목격자가 있었다. 사건 현장 건너편 주택에 살던 10대 3명은 범인이 “짧은 머리에 안경을 썼고 체격이 건장한 백인 남성”이라고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인근을 수색했던 경찰도 수상한 행인과 마주쳤다고 뒤늦게 털어놨다.
처음엔 단순 강도 사건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사흘 뒤 조디악은 자신이 한 짓이라면서 피에 젖은 셔츠 조각을 증거로 보냈다. 소름 돋는 엽기행각이었다. 편지 내용은 훨씬 더 끔직했다. “다음엔 스쿨버스를 훔칠 수도 있다. 놀라서 뛰어나오는 아이들을 쏘기만 하면 된다.” 천만다행으로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도시는 공포에 휩싸였고 대혼란에 빠졌다. 경찰은 몽타주를 만들어 배포하고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제보가 폭주했다. 그렇게 수년간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만 2,500명에 달했다.
단서는 필체뿐인 완전 범죄… 수사 난항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아서 앨런이란 남자다. 1971년 7월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수년 전 친구가 조디악이란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그를 수사했다. 알고 보니 발레이오 사건과 관련해 이미 1969년 그 지역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던 인물이었다. 조디악의 편지 사본을 본 아서의 동생 부부는 ‘크리스마스(Christmass)’라는 단어에서 S를 두 번 쓴 게 아서의 습관과 똑같다고 증언했다. 더구나 아서는 ‘조디악 시계’를 차고 있었다. 경찰은 그가 살던 트레일러를 압수수색해 피 묻은 칼과 총기도 발견했다. 하지만 조디악이 남긴 단서라곤 오로지 편지뿐인 상황에서 아서는 ‘필체 불일치’로 결국 풀려나게 된다. 그가 양손잡이라서 양손 필체가 다를 수 있다는 지인들의 제보도 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심증은 더 굳어졌다. 공교롭게도 아서가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부터 3년간 조디악의 편지가 멈췄다. 위기감을 느끼고 몸을 사렸을 수도 있단 얘기다. 또 그가 수사 선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1974년부터 다시 조디악의 편지가 시작됐다가 1975년 아동성추행으로 체포ㆍ수감된 이후로는 완전히 끊겼다. 정황이 자로 잰 듯 딱딱 맞아떨어졌다. 나중엔 결정적 증언도 나왔다. 십수 년이 흐른 1992년 발레이오 사건 생존자는 경찰이 제시한 용의자 사진들 중에서 망설임 없이 아서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기소를 위한 심리가 열리기 직전 아서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사건은 허망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아서 앨런이 살아 있었다면 올해 88세다.
명성 노린 연쇄살인… 컬트 문화가 된 조디악
조디악 사건은 여전히 모든 것이 수수께끼인 채로 베일에 싸여 있다. 택시기사 살인 이후 공식적으로 확인된 범행은 없지만, 유사성이 발견되는 사건은 많다. 사건 당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삽화가였고 이후 수십 년간 조디악을 추적해 온 논픽션 작가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는 “조디악이 1980년대까지 활동하면서 몇 명을 더 죽였다”고 주장했다. 만약 또 다른 용의자가 존재한다면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조디악 사건의 가장 큰 특징은 범죄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이다. 원한 관계도 없었고 금품을 노리지도 않았다. 다른 연쇄살인마처럼 살인 자체에 목적을 둔 것도 아니었다.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그가 ‘명성’에 집착했다고 분석한다. 실제 조디악은 범죄가 멈춘 뒤에도 버스 폭파 계획을 묘사한 그림을 보내거나 조디악 문양 배지를 달고 다니라고 요구하는 편지를 썼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최근 보도에서 “조디악은 자신이 바라던 대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마가 됐다”며 “편지와 암호문은 끔찍한 범죄를 영화적인 장면으로 바꾸었다”고 짚었다.
이 사건은 책, 다큐멘터리, 영화로 숱하게 재창조됐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조디악’은 그중에서도 특히 명작으로 손꼽힌다. 온라인에선 지금도 수많은 ‘아마추어 수사관’과 ‘방구석 탐정’들이 활약 중이다. 온라인 매체 ‘미디움’은 “조디악 사건은 컬트 추종자를 양산하며 일종의 문화 현상이 됐다”며 “이들은 경찰 수사를 독촉하는 등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환기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평했다.
영원히 미제로 남을 것 같던 이 사건은 최근 들어 하나둘 실마리가 풀리며 다시 희망이 살아나고 있다. 2018년 경찰은 편지봉투에서 범인의 타액 DNA를 검출해 냈다. 지난해 12월에는 개발자ㆍ수학자가 뭉친 3인조 해독팀이 조디악이 보낸 암호문 중 하나를 51년 만에 풀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날 잡으려고 애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길 바란다.” FBI 샌프란시스코 지국은 “조디악 사건은 여전히 수사 중”이라며 “우리는 희생자들을 위해 정의를 계속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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