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에 한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21>강대국 속 스위스의 생존 전략
최근 전 세계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미중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이중 코로나19 사태는 2022년 내지 2023년을 기점으로 어느 정도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중 간의 갈등은 이제 본격화되기 시작한 이슈로 향후 10년~20년 가까이 우리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어떤 전략적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때 우리에게 적지 않은 힌트를 제공해 주는 나라가 있으니 다름 아닌 '스위스'다.
교통의 요지 스위스, 외침 자주 받아
스위스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는 달리, 끊임없는 외침에 시달려야 했던 굴곡진 역사를 갖고 있다. 스위스의 직접적인 조상은 켈트족의 일족인 헬베티아인들이다. 헬베티아인들이 지금의 스위스 땅에 자리잡은 시기는 기원전 15세기경으로 독일 남부 지역에서 내려와 스위스 중부 고원지대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스위스 근간을 이루었다. 하지만 헬베티아인들은 기원전 58년 로마제국에 흡수되어 서기 400여 년까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455년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시에는 헬베티아인 이외의 다양한 인종이 이 지역으로 들어왔는데, 알레마니족이 스위스 북부에, 로마화된 부르군트족이 서부, 랑고바르트족이 남부에 각각 정착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스위스가 독일어, 불어, 이탈리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에도 스위스는 계속해서 외침에 시달린다. 6세기에는 프랑크제국에 다시 흡수되었고, 9~12세기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통치하에 있었으며, 신성로마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난 후에는 합스부르크(Habsburg) 왕가의 통치를 받게 된다.
스위스가 이처럼 많은 나라로부터 점령의 대상이 된 이유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유럽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스위스를 거쳐야 하고, 반대로 독일에서 남부 지역으로의 교역 통로 역시 스위스를 지나가야 한다. 따라서 스위스 지역의 장악은 당시 교역에 있어 커다란 힘을 갖게 됨을 뜻했다. 비록 최근에는 EU의 주요 무역 방식이 남북 방향이 아니라 동서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그 기능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스위스는 여전히 유럽 대륙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으로 15개 EU 회원국 간의 육로 수송의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하는 것이 평상시에는 커다란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주지만, 전쟁 시에는 커다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스위스의 역사는 가르쳐주고 있다.
오랜 외침을 겪어야 했던 스위스인들은 영세중립국(永世中立國)이라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위기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영세중립국이란, 다른 국가 간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의무를 가진 나라를 말한다. 대신 다른 국가들도 영세중립국을 침공하지 않는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스위스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을 개편하는 작업에서 독립을 확인받음과 동시에 영세중립국 지위를 인정 받게 됐다. 또 1815년 빈 회의에서 국제사회가 이를 승인해 스위스인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지켜 나가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때도 '영세중립국' 지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스위스는 2차 세계대전 때도 영세중립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전쟁의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전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갔던 시기에도 이 지위가 유지됐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네덜란드와 벨기에도 중립을 선언했었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독일의 침공을 받고 국토가 점령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조약에만 유지하는 중립국 지위가 그만큼 취약하기 때문에 사실 얼마든지 다른 나라의 침공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스위스는 어떻게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갈 수 있었을까
사실 스위스는 동맹국인 독일과 이탈리아를 잇는 지점에 놓여 있어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가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스위스의 화폐인 스위스프랑이 기축통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기축통화란 국제 간의 거래에 사용되는 통화를 말한다. 수많은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화폐를 발행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통용 가능한 화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화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화폐 본연의 기능인 교환의 매개수단, 가치의 저장수단, 가치의 측정단위 등의 역할을 무역과 국제금융에서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전쟁 수행을 위해 철광석, 석탄, 석유, 고무 등의 자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했다. 독일 본토와 점령지에서 확보한 자원으로는 방대한 군사력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러한 자원을 전쟁과 관련없는 지역인 제3국으로부터 조달받고자 했다. 대표적으로 석유는 중동 지역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결제방법이었다. 독일에 석유를 판매하는 중동 지역 국가들은 독일 화폐는 물론이고 당시 기축통화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미국이나 영국 화폐로 결제하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 이들 국가는 당시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으므로 전쟁 결과에 따라 이들 국가가 발행한 화폐는 언제든지 휴지조각으로 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가치의 저장수단으로서의 기능이 위협받고 있던 이들 화폐는 교환의 매개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독일은 고민에 빠졌고,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영세중립국인 스위스가 발행하는 화폐로 결제하는 방법이었다. 독일은 스위스에 금괴를 팔고, 이를 스위스프랑으로 바꿔 전쟁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결제수단으로 사용했다. 따라서 독일 입장에선 스위스프랑의 화폐적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스위스를 침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침공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스위스가 제2차 세계대전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자국의 화폐가 전쟁 참여국들의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기축통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스위스를 침공하지 못한 이유는 이 밖에도 몇 가지가 있다. 스위스가 독일 침공 시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잇는 알프스의 모든 통로를 파괴하겠다고 선언, 침공 시 실질적으로 독일과 이탈리아 간 물자 및 병력 수송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제시했다는 점이라든가 알프스의 험한 지형을 이용한 장기간의 게릴라전을 진행하겠다고 위협했던 점 등이 그것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스위스는 독립 당시부터 주변 강대국들이 상호 직접적인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었던 국가이며, 이후 스위스인들조차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 속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영세중립국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중립국이라는 위치는 스위스의 경제, 산업구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현재 스위스 경제를 대표하는 산업은 금융, 정밀공업, 식품, 의약, 무역업을 꼽을 수 있다. 이중 금융업은 중립국인 스위스가 2차대전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재산을 가장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에 발달하였다. 무역업 역시 냉전 시절 중립국인 스위스에 어느 국가든 편하게 왕래할 수 있었기에 중개무역업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스위스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중립국이 되자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접근 속에서 미국도 중국도 아닌,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스위스가 중립국이라는 입장으로 인해 산업구조와 경제부분까지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가 현재의 산업,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될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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