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중성 적나라하게 드러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찾아야 할 내 것" 물어
'돌직구' 재벌가 풍자
"재벌 직접 만나 취재... 산소 서사 녹여"
안도 다다오 설계 뮤지엄 산 실제 배경
가파른 계단... '기생충' 처럼 계급성 두각
모두 잠든 시간, 가정교사는 오렌지색 원피스를 입고 응접실에서 홀로 춤을 췄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그거 제 옷인데요." 잠에서 깨 2층 침실에서 1층으로 내려오던 재벌가 사모님은 평소 온순하기 짝이 없던 가정교사의 기행에 어안이 벙벙하다. "너무 예뻐서 그냥 한 번 입어봤어요, 죄송해요". 사모님은 그런 가정교사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하다. 그 이후, 가정교사는 아예 재벌가의 안주인처럼 행동했다. 자는 아이의 발을 주무르며 엄마 행세를 하는가 하면, 사모님의 개인 서재를 제멋대로 드나들었다. 가정교사는 윤여정의 영화 데뷔작 '화녀'(1971) 속 광기 어린 하녀 명자 같다.
워맨스로 새 옷 입은 권력 드라마
tvN 드라마 '마인'은 '화녀'를 떠올리게 하는 스릴러와 미스터리적 전개로 인간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손 번식을 위한 재벌가의 패륜,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갈등, 신분 상승을 위한 뒤틀린 욕망 등이 얽히고설켰다. 매끈한 바닥에 흥건히 흐르는 피, 극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재벌가의 한 지붕 아래 '한 아들, 두 엄마'의 비밀이 드러나며 파국은 절정을 향해 달린다. "막장 전개가 초반엔 작위적으로 비치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와 극 중반 인물관계 변화로 이야기는 쫄깃"(소설가 박진규)해진다. 정서현(김서형)과 서희수(이보영) 등의 워맨스(여성 간의 깊은 우정), 성소수자의 사랑 등이 권력형 드라마에 새 옷을 입힌다.
15배 높은 산소포화도... 그들이 사는 세상
백미경 작가가 펼친 재벌가 풍자는 흥미롭다. 도우미들에 고성을 퍼붓는 효원가 왕사모 순혜(박원숙)와 직원에 폭력을 행사하는 장녀 한진희(김혜화)는 갑질로 신문 사회면을 장식한 재벌가와 묘하게 겹친다.
효원가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공기를 마신다. 저택의 산소포화도는 일반 공기 대비 15배 높다. '마인' 관계자에 따르면 제작진은 실제 몇몇 재벌가를 만났고, 그 취재를 바탕으로 극에 산소 서사를 넣었다.
효원가의 높은 산소 농도만큼, 비극과 쓸쓸함의 농도도 짙다. 내 것이란 뜻의 드라마 제목과 달리 극 중 인물들은 하나같이 진짜 제 것이 없다. "재벌가의 이중성에서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이 일상화가 된 현실 그리고 디지털 세상에서 가면을 쓰고 사는 우리의 이중성을 떠올리고, 그 과정에서 나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는 공감대를 얻는다"(공희정 드라마평론가). 덕분에 '마인'은 시청률 10%에 육박(5월30일·9%), 3일 기준 넷플릭스에서 조회수 2위를 달리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드라마 제작을 총괄하는 김건홍 스튜디오드래곤 책임프로듀서는 본보에 "'마인'은 삶에서 찾아야 할 진정한 내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얘기"라며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세상의 편견에 부딪힐 때 어떻게 극복해야 하고, 그 과정을 통해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금고 제작에만 2,000만원" 넉 달 걸린 세트 작업
'마인'에선 공간이 또 다른 조연이다. 드라마 주 배경인 효원가의 본가 카덴차는 문을 열자마자 가파른 세 계단이 공간을 지배한다. 1층과 3층을 잇는 수직의 계단과 위·아래로 철저히 분리된 주거 환경은 영화 '기생충'처럼 계급적 메시지를 드러낸다. 중세의 고성 같은 카덴차엔 층고가 높고 폭은 좁은 복도 곳곳에 은밀하지만 화려하게 서재, 침실 등이 배치됐다. 뻥 뚫린 거실은 없다.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의 미술 총괄로 유명한 김소연 미술감독은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거실 등 뻔하게 노출되는 공간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은밀하고 작은 공간을 더욱 크게 부각해 재벌가에 대한 시청자의 상상력을 끌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유리 저장고가 설치된 카덴차의 부엌은 왕족의 주방 같다. 김 감독은 "특별함을 가장 역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드라마 속 계급의 가장 밑에 있는 이들이 모이는 공간"이라며 "어느 곳보다 부엌 세트 제작에 가장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효원그룹 한 회장(정동환)의 서재 마룻바닥엔 푸른 다이아몬드 등 귀중품을 보관하는 금고가 설치돼 있다. 특별한 공간이 숨겨진 이 금고 제작에만 2,000만원이 들었다. 파티 신에선 전문적으로 식사 세팅을 따로 해주는 파티팀이 따로 음식을 준비하고 식탁을 꾸려 현실감을 살렸다.
물의 정원이 있는 카덴차의 외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강원 원주)'이다. 카덴차 외관과 복도를 제외하곤 모두 만들어진 세트다. 세트 구상과 호화 소품 준비 등 드라마 이미지 작업에만 꼬박 넉 달이 걸렸다. 이보영은 캐릭터 몰입을 위해 집에서 쓰는 말 모양 소품을 직접 가져와 극 중 희수의 공간에 놓고 연기했다.
"애드리브도" 공작새의 비밀
공작새 노덕이는 '마인'의 판타지를 더하는 감초다. 높이 3m, 지름 5m로 만든 대형 새장에서 연기하는 노덕이는 순혜가 부르면 대답도, 애드리브도 한다. 하지만 노덕이가 예민해지면 촬영은 전면 중단된다. '마인' 제작 관계자는 "노덕이는 입에 쫙 붙는 원초적 이름이 필요해 작가가 직접 지은 이름"이라며 "중요한 서사의 주인공이고, 16부 끝까지 노덕이의 스토리가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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