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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요만큼만 열심히

입력
2021.06.05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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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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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새란 걷는 모양새다. 우리말에는 걸음걸이를 그리는 다채로운 말이 있다. 교통이 발달한 요즘과 달리, 발을 내디뎌 걸어야만 이동하던 시대를 살아낸 흔적이다. 걸음새 표현 중에는 특히 동물에 빗댄 말이 많다. 노루가 겅중겅중 뛰듯이 걷는 ‘노루걸음’, 게처럼 걷는 ‘게걸음’, 뒷걸음질하는 ‘가재걸음’, 느릿느릿 걷는 ‘황소걸음, 거북이걸음, 달팽이걸음’, 뒤뚱거리며 걷는다는 ‘오리걸음’ 등이 있다. 동물을 빗댄 어떤 표현에서는 오히려 사람의 마음이 투영되어 읽히기도 한다. ‘쥐걸음’은 초조한 마음으로 둘레를 살피며 자세를 낮추고 살금살금 걷는 것을 말하는데 사실 쥐의 마음 상태를 물어본 말은 아니다. 흔히 발뒤꿈치를 들고 살살 걷는 것을 ‘까치걸음’이라 하지만, 이 또한 까치가 살살 걸은 것인지 타고난 대로 마구 걸은 것인지 사람이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다는 ‘황새걸음’에서는 갈 길 먼 사람의 부러움조차 읽힌다.

걸음새 표현에는 속도도 담겨 있다. 발을 자주 떼며 급히 걷는 ‘종종걸음, 동동걸음, 총총걸음’, 보폭이 짧고 빠르다는 ‘잰걸음’, 탄탄한 곳을 세게 구르며 빨리 걷는 ‘퉁퉁걸음’ 등은 바삐 걷는 누군가를 그려낸다. 매우 재게 걷는 ‘불걸음’, 뛰듯이 걷는 ‘뜀걸음’, 화살의 속도라는 ‘살걸음’도 있다. 이처럼 빠른 걸음을 묘사한 다양한 말과 달리, 팔을 훼훼 내저으며 느릿느릿 걷는 ‘왜죽걸음’처럼 느린 걸음을 이르는 말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렇다면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속도전을 치르고 있는 현대에 와서 생긴 것이 아니라 원래 한국인의 심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유월, 한 해의 절반에 이르렀다. ‘셋, 둘, 하나!’라며 출발한 2021년 ‘첫걸음’에서 어느새 이만치 온 것이다. 걷는 수고를 이르는 ‘걸음품’이란 말도 있는 바, 작게 디뎌내는 ‘잔걸음’이든 쉬지 않고 내딛는 ‘한걸음’이든 발걸음은 우리 삶을 만들어 간다. 어느 걸음인들 헛된 걸음이 있으랴. 간혹 ‘제자리걸음’처럼 보이거나, ‘뒷걸음, 물맥걸음’, ‘공걸음, 헛걸음, 군걸음’처럼 답답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어려움을 이기고 조심스럽게 ‘자국걸음’을 옮겨 디딜 때도 물론 있다. 그렇지만 걸음걸음 걷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마주할 곳에 도착해 있지 않을까? 흙먼지 툭툭 털면서 일어나 이왕 나선 ‘내친걸음’으로 2021년이라는 길 위에 다시 선다.

이미향 영남대?국제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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