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 석학에게 듣는다]
편집자주
코로나19와의 전쟁이 치열합니다. 내년까지 전 지구적 차원의 집단면역을 달성하자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제 '코로나 패닉'을 넘어 '코로나 이후'를 고민할 때입니다. 한국일보는 창간특집으로 국내외 석학에게 코로나 이후에 대해 물었습니다.
지난해부터 1년 넘게 전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3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자체로도 우려스럽지만, 전문가들은 감염병 유행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점을 더 우려한다. 20세기에는 20~30년 주기로 유행하던 감염병이 21세기에는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에 이어 코로나19까지 짧은 시간 빈발하고 있다.
결론은 결국 무분별한 개발, 대량 생산-대량 소비, 공장식 사육으로 대표되는 우리 삶의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과학적 백신'을 넘어 '생태 백신'을 고민하지 않으면 새로운 감염병은 또 등장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만나 답을 구했다.
-진화생물학자로서 코로나19 유행을 어떻게 보나.
"진화의 현장을 목격하는 굉장히 흔치 않은 기회다. 진화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찰스 다윈이 쓴 '종의 기원'에서처럼 느리고 점진적인 변화로만 알고 있는데, 때론 굉장히 빠른 속도로 벌어진다. 남아공, 영국, 인도 등에서 변이가 계속 나타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변이를 통해, 그들간 경쟁을 통해 우리를 공략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것과 아예 다른 종으로 판단되는 변이가 나타난다면, 일종의 대진화가 일어난 것이다. 진화생물학자로서 '학문적으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인간 사회도 전에 없던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공진화적 관점에서 인간도 코로나 바이러스 진화에 영향을 준다. 병원체 진화의 속성은 독성과 전파력인데, 독성이 너무 강해 사람이 죽으면 전파력이 약해져 바이러스가 살아남기 힘들다. 독성이 약한 놈이 전파력이 강해서 살아남게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돌아다니는 것도, 무증상자가 걸린 줄도 모르고 옮기는 덜 독한 바이러스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방역이 느슨해지면 독한 놈들도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마스크 잘 안 쓰고 몰래 만나면서 바이러스를 옮겨주면 독한 놈들도 살아남는 것이다. 방역 수칙을 열심히 지키면 독한 놈들은 도태된다. 방역수칙을 잘 지켜 비교적 약한 바이러스만 돌아다니게 되면 언젠가 이 유행이 끝난다. 우리가 바이러스를 완벽히 퇴치해서라기보다는, 언젠가는 감기처럼 돼서 끝날 것이라 본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의학적 백신 외에도, '생태백신'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번 한 번으로 팬데믹이 끝날 것 같지 않은 게 문제다. 스페인 독감, 콜레라 등 20세기에는 20~30년에 한 번씩 팬데믹이 발생했는데 21세기 이후 2, 3년에 한 번씩 터지고 있다. 몰라보게 빨라졌다. 예컨대 3년 뒤 또 팬데믹이 벌어졌는데 그때도 우리가 지금처럼 빨리 백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번엔 운이 좋았고 모든 나라가 엄청나게 투자를 해서 가능했다. 다음에 이번처럼 성공한다 해도 그전까지 또 몇 백만 명이 죽을 것이다. 그러면 앞으론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팬데믹 터지고 방역하느라 경제는 파탄나고, 300만~400만 명 죽다 보면 백신이 겨우 개발되는 방식으로? 이런 식으로 출렁출렁대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생각한 게 좀 더 근원적인 백신, 곧 자연보호를 하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생태백신이다. 경제 발전을 이루는데 너무 목매지 말고 '조금 덜 먹고 덜 쓰면서 큰일 없이 살 수 없을까' 같은 논의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드디어 환경에 대해, 특히 기후변화에 대해 관심이 늘어난 것 같다.
"바이러스는 결코 우리를 멸종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충분히 죽이고 나면 더 이상 감염이 불가능해 멈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페스트도 유럽 인구 3분의 2는 감염을 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다르다. 숨을 곳이 없다. 전 인류에게 닥쳐 올 재앙이고 우리를 깡그리 없앨 수 있는 재앙이다."
-기후변화 음모론자들은 기후위기가 과장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분들이 입증해야 할 문제다. 연못에 물벼룩이 살고 있다고 가정하자. 물벼룩이 1분에 2배로 분열한다. 한 마리가 두 마리가 되고, 두 마리가 네 마리가 되고, 네 마리가 여덟 마리가 된다. 물벼룩이 연못에 가득 차서 다 죽는 시간을 12시라고 정하면 연못이 절반만 차 있을 때는 언제인가. 11시59분이다. 누군가는 '공간이 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왜 그러느냐' 하지만 1분 후엔 연못이 다 차서 한꺼번에 죽는다. 과학자는 그런 상황을 경고해야 한다. 그런데 '쓸데없이 걱정하게 만든다' '연구비 따려고 그런다'고들 한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그런 상황이 절대 안 벌어질 것이라고 설득할 책임은 그분들에게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생물다양성 관점에서 설명한다면.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진짜 걱정되는 건 생물다양성이다. 지구 평균 온도가 2도 오르면 '지구의 생물다양성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랬을 때 과연 인류가 존속할 수 있을까. 어마어마한 식량 문제가 터질 거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식량의 해외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쌀이나 계란 빼고 거의 모든 걸 해외에서 사 먹는다. 조류독감 때문에 이제 계란도 사 먹기 시작했다. 식량이 무기가 되는 순간 우리는 방법이 없다."
-생물다양성이 훼손되면 인류 생존이 왜 불가능해지나.
"생물다양성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2013년에 IPBES(생물다양성과학기구)라는 기구를 만들었다. IPBES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가 꿀벌이다. 꿀벌은 우리가 생산하는 식량 80%의 수분을 담당한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꿀벌이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지금 꿀벌 로봇을 개발해서 걔네가 수분하도록 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절반도 아니고 딱 한 종이 사라진다, 그런데 그게 꿀벌이다? 아비규환이 온다. 식량 대란이 벌어진다. 생태계는 모든 게 먹이사슬로 연결된 네트워크라 하나가 사라지면 연쇄 반응이 일어난다. 절반이 사라지면 90%가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고, 그때부터는 무서운 속도로 다 몰락할 거다."
-환경은 늘 개발 이슈에 밀린다. 최근 국회에서 '기후환경부총리'도 거론되는데.
"문재인 정부가 물 관리를 국토교통부에서 환경부로 넘겨주면서 환경부가 엄청 커졌다. '환경이 밥 먹여주냐'고 하는데도 환경부는 계속 성장해 왔다. 좀 더 격려하고 일도 더 많이 하라고 했으면 좋겠다. 저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산림청도 환경부로 가져오라고 한다. 산림청이 최근 수령 30년 이상 된 나무들을 벌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농식품부 산하에선 나무를 자원으로 보니 그렇게 된다. "
-코로나19로 우리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는 거다. 싱가포르도 방역 잘하다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열악한 환경에 방치해서 문제가 커졌다. 배달하는 분들, 좁은 공간에서 여럿이 일하는 노동자도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우리 사회가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거다. 모두가 코로나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과거와 달리 이제 백신 개발 얘기하면 누가 먼저 맞을지 논의한다. 이런 논의 자체가 굉장한 발전이다. 국제적으로도 인도에 먼저 백신을 제공해야 한다. 만일 인도에서 굉장히 심한 변이가 일어나서 지금 우리가 개발한 백신이 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통제가 어느 정도 가능한 나라는 사실 양보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가 같이 빠져나온다. 우리가 공동체고 얽혀있구나, 우리 옆집도 괜찮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처음으로 연대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느낀 아주 소중한 경험이라고 본다. 뒤처진다고 놓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코로나가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이전과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할 것 같다. 물론 한동안 경제가 요동치겠지만 국가 내, 또는 국가 간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을 진지하게 할 거라고 본다. 인도에서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세계가 안전하지 않은 거 아닌가. 지금 '휴먼카인드'라는 책이 해외에서 돌풍인데, 공감 가는 게 많다. 인간은 함께 가지 않으면 굉장히 힘들어진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여러 해 전에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는 책을 썼는데 내용이 많이 겹친다. 나도 영어로 쓸걸. (웃음) 그동안 경제학에는 도덕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런데 새뮤얼 보울스의 '도덕경제학'이라는 책이 번역돼 나왔는데 '못 사는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앞으로는 그래야만 경제가 굴러간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제학이 변하면 세상이 정말 많이 변할 것이다. 바이러스로 300만 명이 죽는다는 건 21세기 인간사에 치욕이지만, 이런 비용을 지불한 뒤에는 밝은 미래가 펼쳐질 수 있다는, 그런 묘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최재천 교수는 누구
자연과 생명을 평생 관찰해 온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국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져왔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로, 그의 저서를 '통섭'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번역해 알렸다. 서울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의장을 지냈다. 현재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생명다양성재단의 대표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다윈 지능' '통섭의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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