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
나치 친위대(SS)의 무차별 보복 학살은 체코 리디체 학살이 처음도 끝도 아니었다. 1944년 6월 10일 프랑스 중부 작은 마을 오라두르쉬르글란(Oradour-sur-Glane) 학살도 있었다.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연합군 노르망디 상륙전에 호응하기 위해 이 마을 인근에 주둔한 독일군 기갑사단을 습격했다. 그 보복으로 나치는 마을을 포위한 채 성인 남성 전원을 총살했고, 여성과 아이들은 성당에 가둔 뒤 불을 질렀다. 간신히 탈출한 이들은 기관총으로 사살했다. 그렇게 숨진 이만 642명. 현장 생존자는 불과 6명이었고, 당일 마을 바깥에 있던 이들까지 쳐도 주민 중 살아 남은 이는 28명에 불과했다. 학살극을 끝낸 나치는, 리디체에서처럼 폭발물로 마을 전체를 파괴했다.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극은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어린이 61명을 비롯한 232명의 사망자와 1,900여 명의 부상자를 내고 열흘 만에 중단됐다. 이스라엘 측 인명피해는 사망 12명과 부상 300여 명이었다. 그 군사작전은 1948년 이스라엘 정부 수립 이후 끊임없이 반복돼 온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인종 청소'의 일부였다.
저 같은 야만행위가 빚어질 때마다,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을 비난할 때마다, 시오니스트들은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무장테러 단체의 도발이 먼저였고, 자기네는 응당한 자위권을 행사했을 뿐이라고 응수해왔다. 시오니스트들은, 아니 이스라엘 국민과 국외 유대인 다수는 인종 청소라는 말 자체를 부정하며, 모욕이라고 주장한다. 나치 홀로코스트 '피해자성'을 독점한 그들은 "우리(유대인)는 나치를 향해 먼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말로 자신들의 야만을 나치의 그것과 차별화한다.
2차 세계대전 나치에 희생된 리디체와 오라두르쉬르글란 시민들도 레지스탕스와 무관한, 먼저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민간인이었다. 나치가 그들에게 저지른 짓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에게 퍼부어온 폭력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그들은 보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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