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1 셀마 하워드
월트 디즈니의 캘리포니아 LA 홈비힐스(Holmby Hills) 저택 가정부로 만 30년(1951~81)을 일한 셀마 하워드(Thelma Howard, 1914.6.26~1994.6.10)는 숨진 뒤 세상을 두 번 놀라게 했다. 한 번은 950만 달러에 이르는 그의 유산으로, 또 한 번은 그 유산의 절반을 불우한 아이들 교육사업에 써 달라는 유언으로. 남은 유산 절반은 젊은 날 결혼해 낳은 만 55세 아들 마이클(Michael)의 몫이었다. 마이클은 발달장애인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었다.
아이다호의 가난한 농장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하워드는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잃은 뒤부터 두 살 터울 언니와 함께 살림을 도맡아야 했다. 화목 난로 불똥으로 인한 화재로 언니마저 잃은 뒤로는 사실상 혼자 동생들을 건사하며 살림을 챙겼다. 그가 고향을 떠난 건 열여덟 살 무렵이었다. 직업학교에 진학해 법률비서 같은 직업을 얻고자 했던 그는 학비가 없어 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음료수 가게 점원, 사무 보조, 청소부 등 온갖 일을 전전했다.
1951년 그가 디즈니 저택의 가정부가 된 건 그에게도, 디즈니 일가에도 행운이었다. 하워드는 월트의 어린 두 남매 다이앤(Diane)과 샤론(Sharon)이 조부모보다 더 좋아한 보모였고, 월트 부부에겐 친구이자 조언자였다. 그는 자신이 차린 월트 일가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등 가족 같은 존재가 됐다. 그 세월이 만 30년이었다. 월트 디즈니는 크리스마스와 생일날 하워드에게 디즈니사 주식을 선물했다.
하워드는 예순일곱 살에 은퇴한 이후 LA 교외의 방 두 개짜리 단층집에서 검소하게 살았다. 그는 주식을 단 한 주도 팔지 않았고, 액면분할 등으로 늘어난 주식은 숨지던 무렵 19만3,000주에 달했다. 그의 유산으로 '셀마 하워드 재단'이 설립돼 지금도 캘리포니아 커뮤니티 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다이앤은 "생전의 아버지는 '하워드야말로 진짜 메리 포핀스'라고 말하곤 했는데, 과연 그가 옳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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