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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 세상, 무엇을 볼 것인가

입력
2021.06.08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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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세상'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증강현실(AR)은 실제로 존재하는 환경에 가상의 사물이나 정보를 합성해 마치 원래 환경에 존재하는 사물처럼 보이게 하는 컴퓨터 그래픽 기법이다. 전 세계적 돌풍을 일으켰던 게임 ‘포켓몬GO’부터 얼굴을 인식해 필터를 덧입히는 'SNOW' 같은 카메라 어플도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예다. 이외에도 패션, 인테리어, 건설,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증강현실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현대문학 6월호에 실린 장강명의 단편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세상’은 이 증강현실이 더욱 일상화된, 어쩌면 매우 가까이 다가온 근미래를 그리는 소설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고, 그게 현실마저 대체할 수 있게 될 때, 우리가 답해야 할 매우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소설에서 이 증강현실 기술은 ‘에이전트’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에이전트의 ‘채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바꿀 수있다. 채도를 높이면 우중충하던 하늘은 그림처럼 맑고 파랗게 바뀌고 앙상한 가로수에는 나뭇잎이 피어난다. 표정을 잃은 행인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오른다. 타인이 나를 향해 내뱉는 욕설도 아름다운 말로 순화시켜 들려준다.

소설의 무대는 해변 근처에 정박 중인 300인승 크루즈다. 이 크루즈는 국내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에이전트 증폭기’를 설치한 배로, 탑승객들이 접하는 모든 언론 기사와 인터넷 게시물, SNS 포스트를 적절히 바꿔준다. 그렇게 해서 승객들이 보게 되는 것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들이 지지한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는 왜곡된 현실이다. 승객들은 ‘집단적으로 창조하고 공유하는 주관적 현실’ 속에서 항해를 즐기는 중이다. 이 항해를 계획한 사람의 주장은 이렇다.

장강명 작가. 한국일보 자료사진

장강명 작가. 한국일보 자료사진

“어차피 인간은 다 주관적 현실 속에서 삽니다. 그리고 누구한테나 크건 작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객관적 사실이 있는 거고요. 저희한테는 지난 대선 결과가 그랬죠. 어떤 치들은 선거 결과 자체를 부정하면서 부정이네, 개표 조작이 있었네 하고 음모론을 떠들었죠. 주관적 현실을 들고 객관적 사실과 싸우려 한 거죠(…) 대선 결과가 농담 같았고, 저는 그냥 그걸 농담으로 즐겨 보기로 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 기술이 있고, 그 기술이 완벽하게 실현된 바다 위 고립된 크루즈가 있다. 이 안에서만큼은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고 믿을 수 있다. SF적 상상력을 가미한, 흥미로운 정치 우화다. 그러나 소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저 부모를 따라 이 배에 탑승하게 된 어린아이의 존재를 통해서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15세 이하 아동을 과도한 증강현실 속에서 자라게 하는 것은 아동학대가 아니냐"고. 소설은 무엇을 '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제 질문은 자연스레 우리의 현실로 넘어온다. 여기, 비루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이 있고 아름답지만 왜곡된 가상현실이 있다. 당신은 당신 자녀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그 전에, 과연 무엇이 비루하고 아름다운가? 그건 정말 ‘객관적 사실’인가?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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