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 떨어지는 농업손실보상금, 그린벨트 지역 토지보상금도 헐값
이주도 폐업도 어려운 축산 농가는 "벙커 들어가야 하나" 자포자기
<2>생계 잃은 농민들
편집자주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철거민 가족의 삶을 설명하는 이런 대목이 있지요. 주택 공급, 주거 환경 개선을 표방한 신도시, 뉴타운, 재개발은 가진 사람들에게는 천국입니다. 여전히 폭력적인 개발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사회. 브랜드 아파트에 삶의 터전을 내어주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 혹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 이들의 마지막 흔적을 기록합니다.
경기 남양주 진건읍에서 시설채소(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김현자(가명ㆍ64)씨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그의 탯줄을 묻은 곳도, 선조들을 모신 선산도 김씨가 일하는 비닐하우스 근처에 있다.
그런 그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 남양주 진건읍이 포함된 왕숙 1지구 866만2,215㎡(262만5,000평)가 3기 신도시 개발지에 포함돼서다. 정부는 이 땅을 강제수용할 예정이다.
“38년간 땅 빌려서 농사지었어요. 그런데 정부가 아파트를 짓는다고 토지주 땅을 강제수용한다고 하더라고요.”
생을 이어온 뿌리를 박탈당한 대신, 어느 곳에 가서도 별 탈없이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돈이라도 받게 될까. 김씨는 답답해했다. “우리 같은 임차농들은 이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다른 데 가서 더 잘살아야 할 텐데 이곳에서보다 못살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비관에는 이유가 있다. 그에게 쥐어지는 돈은 실제 1년 수입의 5분의 1에 불과한 농업손실보상금뿐일 가능성이 높다. 농업손실보상이란 신도시 개발 등 공익사업으로 농업활동을 계속할 수 없을 때 정부가 농업인의 소득 상당액을 보전하는 제도다. 김씨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평당 1만1,000원 정도로 보상액이 정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우리 마을 시설채소농사는 1년에 평당 5만 원가량의 조수익(매출)을 올리는데, 이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정부 3기 신도시 예정 지역인 남양주 진건읍에서 삶의 추락 위기에 있는 임차농, 자경농민, 축산농민들을 만나 그들의 한숨 깊은 상황을 취재했다.
주변 땅값 뛰어 새 농지 임차 불가
김씨는 정부의 보상금으로는 인근에 다시 땅을 빌려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현재 이 일대 농지의 평당 임대료는 연간 2,500~3,000원 수준인데, 신도시 개발 확정 이후 주변 땅값이 뛰면서 임대료도 함께 상승하고 있다. “아마 이 인근 평당 임대료가 연간 4,000원 정도까지는 뛸 거예요. 현재 언급되는 보상금 중에 40% 정도가 땅 빌리는 돈으로 날아가는 거예요.”
결국 기존 임대료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남양주에서 30~40㎞ 떨어진 경기 여주, 포천 등지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농지를 옮기면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만만치 않다. “현재는 구리시장까지 10분, 가락시장까지는 30분이면 가는데, 30㎞ 밖으로 이주하게 되면 유통비가 증가한다”며 “이렇게 되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이는 소득 감소로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또 150평짜리 비닐하우스 한 동을 짓는 데 500만~600만 원의 비용이 든다. 총 40동의 비닐하우스를 지어야 하는 김씨로서는 상당한 액수다.
땅을 보러 갈 시간을 내기도 어렵다. “매일 농사지으면서 어떻게 그 멀리 땅을 보러 다니겠어요. 6,000평 규모의 땅이 한 번에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할지 감도 안 와요.”
이뿐만이 아니다. 농업인 특성상 김씨는 경작지 근처로 이사를 가야 한다. 여기에 비용이 또 든다. 남편과 아들은 함께 농사를 짓기 때문에 같이 이동하면 되지만, 남양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딸은 어찌해야 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남양주에 남자니 집을 두 채 구해야 하고, 함께 이동하자니 딸의 출퇴근이 고생스러울 게 뻔하다. 김씨는 “농사지으면서 잘살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년 수입의 20%에 불과한 농업손실보상금
도시에 살면서 주말농장 체험 삼아 쉬엄쉬엄 농사를 짓는 A씨, 그리고 비닐하우스 농장을 하며 1년 6~8번의 농사를 짓는 B씨가 있다고 치자.
A, B씨의 농업수입은 다르지만 현행법상 땅이 수용됐을 때 이들이 받는 농업손실보상금은 같다. 김씨가 분개하는 이유이다. 개별 농가의 실제 수입과 상관없이 평균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토지보상법 시행규칙에 따른 농업손실보상액은 도(道)별 연간 농가 평균 단위경작면적당 농작물 총수입의 직전 3년간 평균의 2년분을 곱해서 정해진다. 예를 들어 김씨가 속해 있는 경기도의 경우 가장 최근 집계된 단위면적(㎡)당 평균 수입은 △2018년 1,821원 △2019년 1,738원 △2020년 1,890원이었다. 3년치 수입을 평균 낸 뒤 다시 2를 곱한 값이 김씨가 받게 될 농업손실보상액수다. 이에 따르면 김씨는 1㎡당 3,633원, 평당 약 1만1,988원을 보상받는다. 김씨가 예상한 평당 1만1,000원의 보상액은 이 산출법으로 도출됐다.
김씨는 “비닐하우스 농업인들은 1년에 열무, 배추, 대파, 시금치, 얼갈이 등을 번갈아 심는 등 총 6~8번 농사를 지어서 높은 수입을 올린다”며 “그런데 비교적 경작이 쉬운 작물로 1년에 한 번 농사를 지어 평당 2,000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과 똑같은 보상금을 받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정부가 이주대책을 세워주고 농업손실보상금을 실제 수입에 준하도록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위치에서 좀 떨어진 곳에라도 임차토지를 마련해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손실보상금은 4만~5만 원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2000년 이전에 품목별 조수입을 기준으로 보상이 이뤄진 적도 있는데, 이렇게 하니 일부 농민들이 투기 등을 목적으로 보상금 수령 직전 비싼 작물로 변경해 농사를 짓는 부작용이 발생해서 부득이하게 산출방식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에는 농가가 실제 소득을 입증하면 이에 준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그러나 농업인들은 이 역시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종익 남양주 왕숙 공공주택지구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실제 소득을 인정받으려면 출하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판매실적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장거래, 전통시장 납품 등은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연소득 10억 원 이하의 농민은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여태까지 소득자료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며 “이런 농가 현실도 모르고 ‘소득인정을 받으려면 자료를 내라’고 법을 만들어 놓았다는 게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농촌진흥청이 농작물 소득을 품목별로 조사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며 “이를 토대로 보상을 하면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농진청 측이 '품목별 소득자료는 애초 손실보상용으로 만든 자료가 아니다'라며 보상의 근거자료로 활용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어 이를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린벨트 가격 토대로 토지보상, 토지주도 속앓이
왕숙지구의 토지보상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3기 신도시의 경우 땅주인에게는 공시지가의 1.5~2.5배 수준이었다. 토지보상금은 정부나 지자체가 공익을 위해 사유토지를 강제수용할 때, 그 대가로 지불하는 돈을 의미한다.
문제는 진건읍 대부분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며, 이 때문에 진건읍의 전답 공시지가는 평당 50만~60만 원(3기 신도시 개발 확정 직전인 2017년 기준)이다. 타지역의 보상금을 감안하면, 왕숙지구의 보상금은 평당 75만~150만 원 수준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신도시 건설을 위해 토지 수용 후에는 그린벨트가 해제되지만, 보상 자체는 턱없이 낮은 그린벨트 상태의 가격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참고로 그린벨트가 아닌 인근 지역(남양주시 오납읍 양지리 4X-X번지)의 전답 공시지가는 평당 약 147만 원으로 진건읍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싸다. 진건읍이 그린벨트 지역이 아니었다면, 토지보상금도 2, 3배 많았을 것이란 의미다.
본인 소유 땅에서 쪽파ㆍ대파 농사를 짓고 있는 또 다른 김모(55)씨는 “현재 예상되는 토지보상금으로는 인근에 이만 한 규모의 땅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3기 신도시 개발이 확정된 후에) 인근 땅값이 두 배 이상 뛰었다. 예를 들어 불과 500m 떨어진 곳의 땅은 현재 평당 200만 원을 줘도 못 살 정도로 올랐다”며 “보상금을 받아 양도소득세(평균 20~25%)까지 내고 나면, 기존에 비해 절반 규모의 땅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진건읍 주민들은 전답 기준 평당 250만 원을 보상하고, 양도소득세를 100% 감면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진건읍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한 주민은 “우리가 땅을 양도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는데, 왜 세금을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공익사업에 따른 수용의 경우에도 소득세법상 양도소득세를 과세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다만 8년 이상 자경농지에서 농사를 지은 경우 등에는 양도세의 100%에 상당하는 세액을 감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순원 법무법인 제이피 국장은 "세액 감면도 1년에 1억 원, 5년치 과세기간에 2억 원까지만 해주도록 감면한도액이 있다"며 "한도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세액 감면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소 60마리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이중고 겪는 목장주
진건읍에서 52년째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송한준(72)씨는 “1,870㎡(약 566평) 부지에서 한우 60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지금 거론되는 보상금으로는 이만 한 부지를 다시 살 수 없다”며 “이 많은 소를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밝혔다. 송씨는 이어 “평당 400만~450만 원의 보상액을 받아야 그나마 다른 지역에 땅을 알아볼 수라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땅은 그린벨트가 아니고 토지용도가 전답이 아닌 대지와 목장용지로 분류돼 있어 주변 그린벨트의 농지보다는 더 보상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송씨는 이외에 또 다른 고민거리가 있다. 축산업이라는 업종 특성 때문에 겪는 이중고다. “보상금에 맞춰서 다른 지역에 땅을 구했다고 해도 축사 신축 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아요. 축사를 지으려면 인근 주민 동의를 받아야 돼요.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동의 없이 일을 진행하면 민원이 계속 들어오기 때문에 지자체가 허가를 안 내주는 거죠. 그런데 보통 주민들은 ‘오염수가 내려온다’ ‘냄새가 난다’ 등의 이유로 반대하거든요. 실제로 제가 가평군과 포천시를 방문해서 주민들 의사를 물어보기도 했는데, 다들 동의 안 해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이를 두고 오해에서 비롯된 반응이라고 말했다. "톱밥을 20㎝ 깔면 소 오줌 등을 다 흡수해서 6개월간 오염수가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6개월마다 톱밥을 갈아줘요. 빗물을 막기 위해서 지붕도 올렸고요. 설사 수분이 생긴다 해도 지붕에 대형 선풍기를 달아서 빠른 시간 안에 다 증발시킵니다.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오염수가 발생해 주변 농가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오해예요."
송씨는 남은 선택지는 폐업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폐업도 골치다. “폐업보상을 받으려면 (이주 예정 지역의 지자체로부터) ‘축산을 할 수 없는 지역’이라는 내용의 고시를 받아야 하는데, 사실 주민동의 문제로 축산허가를 ‘안’ 내주는 거지 축산을 아예 ‘못’하는 지역은 또 아니잖아요. 그래서 ‘축산불가 고시’를 내줄지 의문이에요. 선후관계도 이상해요. (지자체로부터) 축산불가 고시를 받으려면 일단 그 지역에 땅을 사서 '이 땅에 축사를 짓겠다'고 축사허가 신청을 내야 해요. 그다음에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판단을 해주겠다는 거죠. 그런데 기껏 땅을 다 사놓은 후에 축산불가 고시를 해버리면, 그 과정에서 들어간 비용과 수고는 어떻게 하느냐는 거죠. 무턱대로 주변 땅을 사서 신축허가를 내 볼 엄두가 안 나는 거죠.”
폐업보상을 받게 된다 해도 적정한 보상이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송씨는 “구제역 대비 소독시설을 갖추는 데 2,000만 원이 들었고, 볏짚 절단기는 대당 130만 원, 겨울 바람막이 2,000만 원 등 이런저런 시설물에 들어간 돈을 합치면 1억5,000만 원이 넘어요. 이건 감정평가를 받으면 가격이 떨어지겠죠. 반값 정도 예상해요. 또 폐업을 하게 되면 소도 처분해야 하는데, 다 키워서 파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못해도 마리당 (시세보다) 100만 원은 싸게 팔아야겠죠. 60마리를 이렇게 팔면 손해가 꽤 커요. 이러나저러나 막막한 상황이에요.”
송씨는 자신이 키우고 있는 소를 바라보며 절박한 심정을 밝혔다. “헐값에라도 소를 전부 처분하고 근처 산에 있는 버려진 (군용) 벙커에라도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네요.”
◆21세기 난·쏘·공 : 글 싣는 순서
<1>살 곳 없는 세입자들
<2>생계 잃은 농민들
<3>내몰리는 상인들
<4>한국식 폭력적 개발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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