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 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 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한국일보>
몇 번을 망설였다. 이 책을 소개해도 될까? 이런 걱정을 해야 했다. 평소에 손동작이 많은 나도 무의식중에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다양한 의사 표시를 했다. 그런데 그 동작이 어떤 사람에게는 불쾌감을 유발하는 금기란다. 그 기원을 따져보면 남성 음경(penis)의 크기에 대한 뿌리 깊은 집착과 그보다 더 큰 콤플렉스가 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과학책이라지만 음경을 정면으로 다룬, 그것도 여성 과학자가 쓴 책을 소개해도 될까? 그렇지 않아도 밉상인데, 이러다 회복할 수 없는 밉상이 되지는 않을까? 하지만 책이 정말로 재미있어서 소개를 안 할 수가 없다. 바로 에밀리 윌링엄의 '페니스, 그 진화와 신화(뿌리와이파리 발행)' 이야기다.
이 책은 시작부터 도발적이다. 엄지와 검지 동작에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인생 스승으로 여기는 '12가지 인생의 법칙(메이븐 발행)'의 저자 조던 피터슨을 저격하면서 시작한다. 피터슨은 자신의 유명한 책에서 "몸을 한껏 뒤로 젖히면서 수컷다움을 과시한" 바닷가재를 언급한다. 그는 바닷가재에게서 '어깨를 활짝 펴고 똑바로 서라'는 교훈을 얻자고 제안한다.
사실 피터슨이 수컷다움이라고 주장하는 행동은 바닷가재 암컷도 한다. 저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자연에서 관찰한 아주 협소하면서도 적절하지도 않은 사례를 갖다가 자신의 어떤 성향이나 편향을 합리화하려는 욕구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고. 실제로 다수의 사려 깊은 과학자는 이런 오류(naturalistic fallacy)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바닷가재 함정을 피하라."
이렇게 시작부터 독자의 흥분을 자극한 저자는 정말 음경을 놓고서 온갖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예를 들어 유난히 음경의 길이에 집착하고, 그러다 못해 콤플렉스까진 가진 사람이 들으면 깜짝 놀랄 이야기도 있다. 여러 동물 가운데 음경 길이만 놓고 보면 놀라운 동물은 뜻밖에도 따개비다. 따개비는 음경이 몸보다 8배나 더 길기 때문이다.
포유류 가운데 음경 길이가 가장 큰 것은 대왕고래다. 이 동물은 음경 길이가 몸길이의 10분의 1 정도로 평균 2.43m다. 만약 따개비가 대왕고래 크기라면 그의 음경은 평균 195m가 된다. 실제로 따개비에 유달리 집착했던 찰스 다윈은 이 놀라운 음경을 보고 "경이롭게 발달했다"고 찬사도 보냈다.
평소 과학과 사회의 상호 작용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 대목도 있었다. 여성 과학자 퍼트리샤 브레넌은 2005년 처음으로 조류의 생식기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남성 과학자가 주도한 생식기 연구는 모두 수컷의 음경에만 초점을 맞췄다. 퍼트리샤는 계속해서 이렇게 반문했다. "그런데 질은?"
결국 브레넌은 과학자로서는 드물게 암컷의 질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된다. 세상의 시선은 따갑다. 브레넌은 "당신의 연구에 왜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하냐"는 질타와 조롱을 계속해서 받아 왔다. 수컷의 음경을 연구하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고 암컷의 질을 연구하는 일은 우스꽝스러운 돈 낭비일까? 이 책을 읽어보면 생각이 바뀐다(특히 5장).
여성이 쓴 음경 이야기라고 색안경을 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에서 비뇨기학 분야 연구원으로 일했던 저자가 음경을 두고 책 한 권을 쓸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질 연구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음경에 관한 가장 과학적인 책 한 권이 세상에 등장했다.
저자가 음경에 거리를 두는 여성이라서 할 수 있는 따끔한 농담을 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발기했을 때 자신의 음경 길이가 34㎝ 혹은 48㎝라고 주장하는 남자들의, 믿거나 말거나 기록을 언급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왜 굵기를 놓고 남성은 경쟁하지 않을까? 정작 여성이 오히려 관심을 두는 것은 음경의 굵기인데…' 그러게, 왜 그랬을까.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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