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군사법원 폐지' 개혁안
군 수뇌부 중심으로 "군 특수성 무시" 반발에?
수정·축소했지만 17대 국회 문턱 넘지 못해
10년 뒤 '윤 일병 사망사건' 계기로 재논의
국회는 통과했지만 예외 조항에 '절반의 개혁'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 이후 군 사법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상부의 조직적인 은폐시도, 선임된 지 50일 만에 딱 한 번 전화 통화를 한 국선변호인의 안일한 태도에 더해, 두 달 가까이 군 검찰이 사건을 뭉겠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군 사법제도의 '총체적 난국'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죠.
군사법원 또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피의자들을 기소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던 전례가 부각되면서입니다.
'평시엔 군사법원을 폐지해 달라'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왔습니다. 청원인은 "군대 내에 있는 군 판사가 판결을 하는 이상 공정하고 독립적인 재판이 이뤄질 수 있나"라고 되물으며 "(낮은 형량으로 인해) 군사법원이 성범죄자들의 도피처로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엄중한 사안으로 판단하고, 7일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기구를 설치해 근본적으로 개선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또 "이런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체계를 만들라"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했죠.
지난해 정부가 발의한 개정안은 ①군사재판 항소심을 민간법원으로 이관하고, ②부대 소속 검찰부를 폐지하는 대신 국방부 장관 및 군 참모총장 산하 검찰단을 설치하며, ③지휘관의 감경권을 보장해주는 '관할관 확인조치권 제도' 및 ④일반장교를 재판관으로 임명하는 '심판관 제도'의 폐지를 담고 있습니다.
17년 전에도 제기됐던 '군사법원 폐지'
군 사법제도 개혁의 필요성은 17년 전 참여정부 때도 나왔습니다. 당시의 개혁 드라이브 주체는 청와대였습니다. 그만큼 바람은 거셌고, 군의 반발도 만만찮았습니다.
2004년 당시 청와대는 ①평시 군사법원을 폐지하고, ②군 검찰을 국방부 외청으로 분리하는 한편, ③군 검사를 민간인으로 구성하거나 일반 검찰과 인사 교류를 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현 정부가 제시한 군사법원법 개정안보다 파격적이었죠.
당시에도 팽배했던 '군(軍)은 단죄의 사각지대'라는 시각이 개혁의 단초가 됐습니다.
가장 논란이 됐던 사건은 당시 국방부 장관이 장병 복지금 수억 원을 몇 년 동안 착복한 국방회관 관리소장과 근무지원단장의 1심 형량을 각각 징역 10년에서 5년, 징역 5년에서 2년 6개월로 절반씩 감경했던 일입니다. 2003년 당시 최대의 군 비리 중 하나로 꼽히는 사건이었는데도 말이죠.
군 수뇌부는 그러나 "군사법원 폐지는 군의 특수성을 무시한 방안"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그들은 엄정한 군기 유지와 지휘권 확립, 군사범죄의 특수성, 전·평시 군의 빈번한 이동 및 기동성으로 언제 어디서나 신속한 재판을 해야 한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내세웠습니다.
군 내부 반발에 개혁안 축소됐지만... 국회 문턱 못 넘어
2004년부터 이듬해까지 진행된 논의 과정에서 '군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군사법원 폐지'는 결국 개혁안에서 빠졌습니다.
대신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와 국방부는 군 판사를 각군 본부 소속에서 국방부 소속으로 대체하고, 86개 보통군사법원을 5개 지역군사법원으로 통합해 군 판사단이 순회재판을 통해 1심을 진행하는 안에 합의했습니다. 관할관 확인조치권과 심판관제도도 평시엔 폐지하기로 했죠.
'군사법원 폐지'안이 빠지자 군 내부의 반발은 '군 검찰조직 독립' 문제로 옮겨 붙었습니다. 사개위와 국방부는 각 부대에 소속된 94개 보통검찰부를 5개 지역검찰부로 통합, 국방부가 관할하면서 일선 부대장으로부터 독립시키자는 의견을 냈는데요.
이에 주요 지휘관들은 "군의 존재 목적은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있고 이를 위해서는 지휘권이 보장돼야 한다"며 "군 검찰에 대한 일반적 지휘감독권은 부대 지휘관에게 부여해야 한다"고 반발했던 것입니다.
2005년 대통령 자문기구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는 사개위 안을 바탕으로 하되, '지휘관의 입지가 지나치게 축소된다'는 반발을 일부 수용했습니다. 그에 따라 국방부 장관이 군 검찰에 대해 인사 등 일반적 지휘권을 행사하지만,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각군 참모총장에게 지휘권을 위임할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마련했죠.
군 사법 개혁안은 이처럼 원안에서 축소되고 또 축소됐지만 17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윤 일병 사망 사건' 계기로 재소환된 군 사법 개혁
군 사법제도 개혁이 다시 제기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4년이었습니다. 사흘에 걸친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행위에 사망한 육군 28사단 소속 '윤 일병 사건' 알려지면서입니다.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는 몸서리쳐질 정도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선임병들은 사망한 윤 일병에게 바닥의 가래침을 핥아먹게 하거나, 흘린 음식을 주워먹으라고 강요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허벅지에 멍이 들었으니 약을 발라주겠다면서 윤 일병의 성기에 약을 바르는 성추행까지 했다고 알려졌죠.
심지어 이때도 군이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납니다. 군 당국은 폭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결정적 사인이 '음식물에 의한 질식사'라고 주장했습니다. 28사단 군 검찰은 피의자들을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했다가 국민적 공분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죄목을 '살인죄'로 바꾸기까지 했죠.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병영문화 개선 종합대책' 마련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꾸렸습니다. 군 판·검사 인사권을 부대 지휘관이 아닌 국방부 장관이 행사해야 한다, 국방부 산하에 독립된 군 검찰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심판관 제도와 관할관 확인조치권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10년 전과 똑같은 주장들이 논의됐죠.
이듬해 12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개혁'이었습니다. 개정안은 사단급에 설치된 보통군사법원을 폐지하고 군단급 이상의 상급부대에 보통군사법원을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확인조치권과 심판관 제도를 폐지하진 못했습니다. 확인조치권은 선고형량의 3분의 1 미만으로 제한했고, 심판관제도는 대상범죄 범위를 축소하는 선에서 유지하기로 했죠.
미미한 개혁의 뒷배경에는 국방부를 위시한 군 내부의 반발이 있었습니다. 2014년의 국방부도 "군 사법제도는 군의 특수성과 지휘관의 지휘권 보장 등을 감안해야 한다"며 급격한 개혁에 반대했던 것이죠.
당시 국방부가 '군 사법제도 개선 고위급 토론회'를 열겠다고 했다가, 당일 '병영문화혁신 고위급 간담회'로 토론의 주제와 성격을 바꿔버린 일화가 국방부의 입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또 다른 죽음으로 '군 사법 개혁' 또다시 대두됐지만...
군사법원 폐지, 군 검찰 독립, 관할관 확인조치권 및 심판관 제도 폐지... 도돌이표를 찍어 온 군 사법 개혁의 필요성은 또 다른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요청했듯 공은 국회로 넘어온 상황입니다. 하지만 여야 모두 "바꿔야 한다"면서도 구체적 의견은 좀처럼 모으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국민의힘·정의당·국민의당·기본소득당은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수사와 국정조사를 주장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TF를 설치해 군 사법제도 개편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7년간 '잰걸음'을 걸었던 군 사법제도 개혁의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는 회의감이 고개를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정부는 2018년에도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21대 국회는 전례에서 벗어나 반복되는 군 인권 유린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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