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미안하고 고맙다' 밈, 불매운동으로 번져
친근한 소통왕 되려다 터지는 '오너 리스크' 우려?
착한 기업·높은 윤리 기준 안 맞추면 부메랑 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때문에 롤러코스터를 타게 됐습니다. 근엄한 신비주의로 일관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달리 SNS에서 재치 있고 시원시원한 입담으로 '용진이형'으로 불렸죠. 온라인에서 '○○○형'은 선망의 대상을 친숙하게 부르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용스크'로 불리게 됐는데요. SNS에 올린 글 일부가 사회적 논란으로 번지면서 비판받았기 때문입니다. 용스크는 정 부회장 이름과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이름를 합친 건데요. 머스크가 가상화폐 관련 트윗으로 거센 비난을 받았는데, 머스크처럼 정 부회장의 SNS도 '오너 리스크'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표현이죠.
뒤에 설명하겠지만 '미안하고 고맙다' 논란이 터지기 전 정 부회장은 국내 CEO 가운데 손꼽히는 '소통 왕'으로 불렸습니다. 사업 홍보는 물론 맛집(소문난 식당)과 운동 관련 게시물을 올리며 일상을 공유했는데, 소탈하게 비춰지면서 '트렌디한 인플루언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정 부회장의 SNS는 톱스타에 버금가는 인기를 자랑합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약 66만4,000명(11일 오후 6시 기준)입니다. 팔로워는 정 부회장의 게시물을 보겠다고 신청한 사람을 뜻합니다.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팔로워가 약 30만8,000명인데, 정 부회장의 SNS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죠.
또 음성 기반 SNS인 클럽하우스 구독자가 2만3,000명이고, 페이스북 팔로워도 6만 명이 넘습니다. 이마트 유튜브에 출연하면 해당 영상 조회 수는 100만 건까지 올라갑니다.
SSG랜더스·호텔·푸드 성공시킨 정용진의 SNS 활용법
정 부회장의 별명을 보면 그가 SNS에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는 SNS에 달린 댓글에 직접 대댓글(댓글에 다시 댓글을 달아 답변)을 다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래서 '공답(공개 답변) 요정'이란 별명이 생겼죠.
정 부회장의 정성 때문일까요. 정 부회장이 SNS에 신세계 조선호텔과 신세계푸드의 요리 개발 사진을 올리면 그 상품은 매진이 됩니다. 최근에는 주류 브랜드 '구단주' 판매를 예고하며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정 부회장은 SNS로 기업 홍보에 엄청난 효과를 냈습니다. 프로야구팀 'SSG랜더스'가 우수 사례로 꼽힙니다. 이마트가 1월 말 SK와이번스 인수를 확정할 때만 해도 야구팬들에게 조롱을 받았습니다. '창피하게 이마트를 응원한다는 말을 어떻게 하느냐'는 밈(Meme·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글귀나 이미지)까지 돌았죠.
하지만 정 부회장은 SNS로 상황을 반전시켜 SSG랜더스 연착륙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클럽하우스에서 직접 야구단 창단 이유와 사업 구상을 전하고, 인스타그램에는 SSG랜더스 유니폼을 입은 사진도 올렸죠. 정 부회장의 열정이 전달되면서 야구단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개선됐습니다.
신동빈에 날린 도발 SNS…일반인에게 "XX아" 논란
그런데 정 부회장의 소통 의욕이 과했던 것일까요. 한때 비속어 SNS로 논란이 일었습니다. 정 부회장은 4월 27일 클럽하우스에서 유통업계 라이벌인 신동빈 롯데 회장을 향해 "내가 도발하니 동빈이형이 야구장에 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롯데자이언츠 외에 라이벌은 어떤 팀이냐'는 질문에 "키움히어로즈"라며 "다 발라버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넥센 측이) 나를 X무시해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 "키움을 밟았을 때 이 XXX들 잘 됐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정 부회장은 일반인에게도 비속어를 썼습니다. 지난달 22일 한 누리꾼이 정 부회장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댓글로 성인광고를 올리며 '왜 모든 한국 남자가 내 비디오를 보는 데 중독돼 있습니까'라고 적자, 정 부회장은 "난 아니다 XX아"라는 답변을 남겼습니다.
사회적 논란 촉발한 SNS…문 대통령 비하 지적까지
정 부회장의 SNS 문제는 '미안하고 고맙다' 밈으로 폭발했습니다. 그는 7일 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나의 실비 우리 집에 많은 사랑을 가져다주었어. 실비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란 문구를 올리며 죽은 반려견의 장례를 치르는 듯한 사진을 올렸는데요.
문제는 미안하고 고맙다란 문구였습니다. 이 문구는 온라인에서 유행한 밈이었는데, 정 부회장은 최근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이 표현을 썼죠.
이 문구는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2017년 3월 세월호 분향소 방명록에 쓴 표현인데, 참사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에게 쓰기 부적절다는 비판을 받았죠.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조롱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정 부회장은 지난달 28일 소고기 사진을 올리며 '너희가 우리 입맛을 다시 세웠다. 참 고맙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구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6년 세월호 분향소 방명록에 적은 '너희가 대한민국을 다시 세웠다. 참 고맙다'와 유사해 비판이 나왔죠.
또 정 부회장은 강성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 독립운동가 폄하 논란을 일으킨 웹툰 작가 윤서인씨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 해 주목받았습니다.
결국 "미안하고 밈 안 쓴다"…노조 "우리랑 소통 좀"
계속된 행동에 누리꾼들은 폭발했고 불매 운동에 나섰습니다. "오늘은 스타벅스 대신 다른 카페를 갔다", "이마트 대신 홈플러스나 롯데마트", "쓱 애플리케이션 삭제한다" 등 인증 사진·글을 공유하며 신세계를 저격하고 있습니다.
이마트노동조합도 정 부회장을 향해 "사원들과 소통 좀 하자"고 지적하며 '소통 버스'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버스에 '마이너스 손 용진이형, 이제 플러스 손 돼야죠', '용진이형, 노조와도 소통합시다'란 문구를 붙이며 그를 꼬집었습니다.
정 부회장은 결국 9일 인스타그램에 안경 사진을 올리며 "홍보실장이 오해받을 일을 하지 말라고 한다. 50년 넘는 습관도 고쳐야 한다"며 더는 해당 문구를 쓰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몇 시간 뒤에 올린 다금바리 생선 사진에 '굿바이'라고만 적었죠
유통업 과열 경쟁 생존 전략…'과유불급'이 문제
정 부회장은 왜 논란의 SNS를 하는 걸까요. 유통업계에선 e커머스로 신규 업체들과의 경쟁이 과열된 데 따른 영향으로 봅니다. 정 부회장을 시작으로 유통업계 CEO들도 점차 SNS 소통에 나서고 있습니다. SNS가 소비 창구로 여기는 젊은층을 사로잡기 위한 생존 전략이 된 것이죠.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의 이건준 사장은 카카오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방송인 강호동씨와 딱지치기를 했죠. 유통업은 아니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사내 방송에서 직접 라면을 끓여 먹고 직원들에게 육개장을 대접하는 등 '친근한 CEO'를 강조했습니다.
적당하면 좋지만 늘 과유불급이 문제입니다. 과거에도 CEO들은 SNS 문제로 구설에 올랐습니다. 과거 소통을 잘하는 CEO란 평가를 받은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한 조종사의 페이스북에 "개가 웃는다"란 댓글을 달아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결국 노사 갈등으로 번졌죠.
머스크의 사례만 봐도 지나친 SNS는 부메랑이 돼 돌아옵니다.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는 5일(현지시간)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며 "당신의 가상화폐 시장 놀이로 여러 삶이 파괴돼 왔다"며 "이번에 임자를 만났다"고 경고했죠. 미국에선 머스크의 경영권 박탈을 목표로 한 '스톱 일론(Stop Elom)'이란 단체까지 생겨났습니다.
전문가들은 SNS가 양날의 검인 만큼 전략적 활용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착한 기업을 바라는 소비자들이 많아진 만큼, SNS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죠. 최근 'ESG(환경, 책임, 투명 경영)'가 강조되는 것도 바뀐 시대적 분위기를 보여주죠.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SNS 소통으로 팬덤이 생기면 경영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지만, 그만큼 대중이 바라는 기대 수준이 올라간다"면서 "기대를 저버리는 말실수가 나오면 CEO의 유명세에 비례해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서 교수는 이어 "남양유업 사태에서 보듯 이제는 경영만 잘해선 안 되는 시대다. 사회를 감동시키는 착한 기업이 살아남는다"며 "SNS에서도 착한 기업을 바라기에 조율되고 정제된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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