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점차 속도를 내면서, 이르면 다음 달부터 접종완료자들에 한해 자가격리 없는 해외여행이 가능할 전망이다. 정부가 방역 신뢰국들과 '트래블 버블(여행안전권역)'을 본격 추진하고 있는데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백신을 맞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디지털백신여권' 도입도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항공·여행업계는 물론 해외여행 재개를 고대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회복이 코앞에 다가온 셈이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삶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고질병이었던 경제불평등과 양극화가 금번 사태를 통해 곪아 터졌기 때문이다. 최빈곤층에 속한 사람들이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소요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수억 명의 근로자들이 직업을 잃고 빈곤층으로 내몰리고 있다.
반면 포브스지가 발표한 '2021년 세계 억만장자'에 의하면, 자산 10억 달러(약 1.1조원) 이상 슈퍼리치는 총 2,755명으로 지난해보다 오히려 660명 증가했으며 이들의 순자산 총합 역시 무려 5조 달러(약 5,500조 원) 이상 급증한 13.1조 달러(약 1경4,600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언택트 시대로의 전환에 따른 디지털 수요 폭증으로 빅테크 기업들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린데다, 초저금리 기조와 맞물린 막대한 유동자금이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치 상승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코로나 사태는 국가 간, 산업 간, 기업 간, 개인 간의 경제 불평등 문제를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코로나 위기로 경제체제의 취약성과 우리 사회 불평등 수준이 그대로 노출됐다"고 지적하면서, 상위 1%가 미국 전체 부의 31%를 보유하게 된 시장경제의 실패 원인으로 금융화, 세계화, 기업의 독점화를 꼽았다.
이같은 시장 실패는 현재 전 세계 시가총액 Top 5를 차지하고 있는 GAFAM(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MS)과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행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들은 국경도 산업도 구분하지 않는 사업 확장을 통해 독점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고용 유발 및 생산 유발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법인세율이 현저히 낮은 국가들을 ‘조세피난처’로 악용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벌어들이는 천문학적 수익에 비해 턱없이 적은 세금을 내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G7 국가들이 전 세계 최저 법인세율을 15%로 설정하기로 합의하는 등 실질적인 기업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국가에 과세 권한을 배분하는 방안이 적극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취약계층 지원 및 교육예산 강화 등 각 국가가 추진 중인 복지정책을 위한 대규모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자국 내 부자증세 추진 뿐 아니라 국제적인 조세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다.
내년 대선을 9개월여 앞둔 우리나라에서도 유력 정치인들 간에 '기본소득'이냐 '안심소득'이냐 '공정소득'이냐를 놓고 입씨름이 한창이다. 그렇지만 100년도 더 된 국제 조세원칙을 파격적으로 바꾸면서까지 재원 확보에 적극적인 선진국들과 달리, 불투명한 재원을 어떻게 나눠줄지에 대한 선심 경쟁만 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징벌적 과세가 아닌 합리적 증세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과 복지 확대 계획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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