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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믿어주는 연습

입력
2021.06.11 19: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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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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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애정하는' 독립서점에서 비거니즘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강연 당일,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로 가는 동안 심혈을 기울여 한 일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이었다. 비건을 실천한 지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비거니즘 강연을 할 자격이 과연 있을까.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그것에 대해 사람들 앞에서 흔쾌히 말할 수 있는 초보자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1년 전 시작한 비건지향적 삶은 내 인생을 크게 바꿔 놓은, 그리고 여전히 바꾸고 있는 중요한 화제였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실천하길 바랐지만 그것을 앞장서서 독려할 자신은 없었다. 그 중요한 일을 하기에 나는 아직 한참 미숙하니까.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려 도착한 서점 근처 카페에서 강연 자료를 살폈다. 강연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꾸준하고 성실하게 공부하고 모아왔던 것들이었다. 이제는 안 보고도 달달 외울 수 있는 통계와 예시들이었지만 그래도 불안해서 작게 소리내어 여러 번 읽었다. 그러다 불현듯 이런 강연은 전문가가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귀중한 시간을 내어 내 강연에 찾아오지 않더라도 이와 비슷한 자료들은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강연을 두 시간 앞두고 애써 준비한 강연 내용을 새롭게 갈아엎었다.

비 오는 금요일 밤이라 출석률이 저조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서점은 만석이었다. 비건을 실천 중이거나 비거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그와 관련 없는 다른 이유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내 얘기가 어떻게 전해질지 궁금하고도 두려운 마음으로 사람들 앞에 서서 초보 비건지향자의 어설픔과 노력에 관한 헐렁한 얘기를 진심을 담아 했다. 준비한 통계자료 대신 1년 동안 직접 만들거나 사 먹었던 비건 음식 사진들을 보여주며 채식의 다채로움을 이야기했다. 매일 도시락을 싸는 번거로움과 뿌듯함, 채식을 하는 중이라고 말할 때마다 마주치는 상대방의 의아한 표정, 채식을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주하게 된 동물들의 삶에 대해서도 꾸밈없이 얘기했다.

강연 후에 참석자들과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 개중엔 비거니즘을 실천해보겠다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잘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을 무사히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점 사장님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이슬 작가님만 들려 줄 수 있는 이야기여서 참 좋았어요. 역시 잘할 줄 알았어."

사장님의 마지막 말, '역시 잘할 줄 알았어'라는 말을 곱씹으며 결국 스스로의 자격을 의심했던 건 자신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종종 할 수 없는 일과 너무 잘하고 싶은 일을 구별하지 못한다. 너무 잘하고 싶은 일 앞에선 자신을 과도하게 검열하기 때문이다. 그 함정에 빠져버리는 순간 '잘하고 싶은 일'은 순식간에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곤 한다. 얼떨결에 받아들인 강연 제안이었지만 자신감이 쌀 한 톨만큼이라도 모자랐으면 스스로 만든 한계에 더 오랫동안 갇혀 있을 뻔했다. 그동안 자신에게 지나치게 야박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잘해내고 싶은 일 앞에서 자신을 깎아 내리며 '셀프야박'을 주지 않는, '그러니까 못 하는 이유'보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이유'를 끈질기게 탐색하자고 스스로 어깨를 다독였다.



강이슬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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