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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팔만대장경에 이르는 길, 먼저 걸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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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팔만대장경에 이르는 길, 먼저 걸어봤습니다

입력
2021.06.13 14:17
수정
2021.06.13 14:3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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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예약 탐방제 19일부터 시작

팔만대장경을 만나려면 구도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해인사가 그렇게 만들어진 까닭이다. 일주문을 지나는 순간부터 8만1,258장의 경판을 보관한 장경판전에 이르기까지 탐방객이 지나는 모든 공간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있다. 계단과 기둥의 개수에도 의미가 있다. 경전에 이르는 길이 곧 깨달음을 얻는 여정인 셈이다. 이달 19일부터 시작하는 팔만대장경 사전예약 탐방제를 일주일 남짓 앞둔 10일, 기자가 순례길을 걸어봤다.

이달 19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장경판전 공개에 앞서 10일 합천 해인사에서 고불식을 마친 스님들이 장경판전 내부를 향으로 정화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달 19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장경판전 공개에 앞서 10일 합천 해인사에서 고불식을 마친 스님들이 장경판전 내부를 향으로 정화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문화유산기념 표지석에서 시작

여정은 경남 합천 해인사 일주문 바깥의 세계문화유산기념 표지석에서 시작된다. 탐방제에 참여하는 탐방객은 스님의 안내에 따라서 일주문을 통과한다. 봉황문과 해탈문을 거쳐 해인사의 중심 법당인 대적광전까지 지나면 마침내 장경판전에 도착한다. 장경판전은 경판을 보관한 일종의 도서관으로 탐방객은 법보전 내부를 20여 분 정도 둘러본다. 장경판전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계단과 기둥 개수에도 부처의 가르침 담겨

탐방은 ‘부처님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다. 해인사 승가대학의 법장 스님은 일주문의 기둥이 좌우에 하나뿐인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중생과 나는 서로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기둥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일주문부터 대적광전에 이르는 오르막길은 여러 문과 계단으로 구성돼 있다.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개의 계단을 오르고 문을 지날 때마다 새로운 공간이 나타난다. 대적광전에 가까워질수록 문은 작아지고 계단은 가팔라지며 공간은 넓어진다. 번뇌를 떨치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상징하는 구조다.


10일 오후 해인사 스님들이 고불식을 마치고 대적광전 뒤편에 모였다가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판전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후 해인사 스님들이 고불식을 마치고 대적광전 뒤편에 모였다가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판전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문들을 지날 때마다 새로운 세계 펼쳐져

일주문을 지나면 좁은 공간이 나타나는데 그 끝에 봉황문이 있다. 탐방객은 봉황문을 지나면서 욕계를 벗어나 색계로 들어선다. 온갖 욕구에 시달리는 범부의 세계를 벗어나 깨끗한 물질의 세계로 들어간다. 물질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한 상태다.

색계를 벗어나는 계단은 더욱 가파르다. 계단의 끝에는 해인호국도량문이 있다. 이 문을 지나서 부처의 세계로 들어간다. 해인사는 나라를 지키는 ‘호국도량’이다. 불교가 왜 나라를 지켜야 할까. 법장 스님은 불교가 지키는 나라는 대한민국을 비롯해 모든 범부들이 사는 나라, 중생의 나라라고 설명한다. 중생이 편안하지 못하다면 부처의 깨달음이 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나타나는 풍경. 사진에서처럼 일주문과 봉황문 사이의 공간은 대각선으로 틀어져 있다. 이 때문에 일주문을 지나도 봉황문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의 스님은 기자들과 거리를 둔 상태로 사진기자들의 촬영을 위해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 김민호 기자

일주문을 지나면 나타나는 풍경. 사진에서처럼 일주문과 봉황문 사이의 공간은 대각선으로 틀어져 있다. 이 때문에 일주문을 지나도 봉황문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의 스님은 기자들과 거리를 둔 상태로 사진기자들의 촬영을 위해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 김민호 기자


대적광전 앞까지 가려면 가파른 돌계단을 다시 올라야 한다. 단을 밟을 때마다 부처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깨우치는 장치다. 대적광전의 이름 또한 ‘고요한 빛으로 감싼다’는 뜻을 담고 있다. 태양빛 아래서는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이다.

해인사 대적광전에 이르는 계단은 높고 가파르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의미한다. 김민호 기자

해인사 대적광전에 이르는 계단은 높고 가파르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의미한다. 김민호 기자


대장경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장경판전

대적광전을 지나 또다시 높은 계단을 오르면 드디어 장경판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13세기에 제작된 팔만대장경을 봉안하려고 건축한 목판 보관용 건축물이다.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건축물, 법보전과 수다라장이 서로 마주보고 나란히 뻗어있다. 건물 양편에 늘어선 창문들의 크기를 달리해 공기가 자연스럽게 드나들도록 만든 설계가 유명하다. 세로로 길게 짜여진 창살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바닥과 경판 위에 그늘을 드리운다. 해인사에 따르면 전기적 공조설비 없이 자연통풍만으로 관리하는데도 장경판전 내부의 기온은 바깥보다 3도 정도 낮다. 법보전 안에서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히 들어찬 경판을 직접 볼 수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경판에 깊이 새겨진 글씨가 생생하다.

해인사는 앞으로 더 많은 국민이 관람할 수 있도록 탐방제를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은 “한국과 일본, 중국에 목판인쇄술이 있다지만 이렇게 뛰어난 경판은 한국에만 남아있다”면서 “많은 국민이 팔만대장경을 직접 보고 코로나19로 인해 누적된 피곤과 심리적 억압을 덜어내는 한편,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해인사 대적광전으로 향하는 계단의 양편에는 다람쥐가 새겨진 기둥이 서 있다. 오른쪽 기둥에는 위로 올라가는 다람쥐가, 왼쪽 기둥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다람쥐가 새겨졌다. 불교의 윤회를 상징하는 장식이다. 김민호 기자

해인사 대적광전으로 향하는 계단의 양편에는 다람쥐가 새겨진 기둥이 서 있다. 오른쪽 기둥에는 위로 올라가는 다람쥐가, 왼쪽 기둥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다람쥐가 새겨졌다. 불교의 윤회를 상징하는 장식이다. 김민호 기자


해인사 관계자가 10일 오후 장경판전 법보전에서 경판 한 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경판에 새겨진 글자가 선명하다. 연합뉴스

해인사 관계자가 10일 오후 장경판전 법보전에서 경판 한 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경판에 새겨진 글자가 선명하다. 연합뉴스


■ 팔만대장경 사전예약 탐방제란?

해인사는 '팔만대장경 사전예약 탐방제'를 19일부터 실시한다. 탐방 프로그램은 사전예약 신청자를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진행된다. 신청자는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 내부를 탐방할 수 있다. 입장시간은 오전 10시와 오후 2시다. 회당 입장 인원은 10명 이상에서 20명 이하로 제한된다. 신청자가 10명 이하일 때는 프로그램이 취소된다. 해인사 홈페이지(http://www.haeinsa.or.kr/)의 팔만대장경 탐방 예약 배너를 통해서 사전에 예약할 수 있다. 다만 예약자가 몰려 13일 현재는 예약을 중단한 상태다. 해인사는 다음 달 4일까지의 예약이 모두 마감됐고 이후의 예약은 추후 신청 일정을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합천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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