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1 시인 박용철
가수 김수철은 영화 '고래사냥(1984)'의 주연과 음악을 맡았다. 그해 2집 음반 '젊은 그대'의 B면 첫 노래가 영화 주제가였던 '나도야 간다'다.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수 있나"
김수철은 시인 박용철(1904.6.21~ 1938.5.12)이 1930년 '시문학' 창간호에 발표한 시 '떠나가는 배'에서 이 구절을 차용했다. 식민지 20대 청년 박용철은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라고, 음절을 띄어 썼다. 어떤 비평가는 거기서 시각적 리듬감과 결의의 비장함을 찾으며, 문학의 순수성과 현실 '참여'의 의지, 즉 당대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순수문학의 두 지향을 함께 담아낸 절창이라 평했다.
50년 뒤 음악인 김수철이 이 구절에 주목한 까닭은 알려진 바 없다. 전두환 신군부 집권기인 1983년은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있던 해였고, 그들을 분노하게 한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김수철은 1983년 1집 앨범 타이틀곡 '못다 핀 꽃 한송이'를, 20여 년이 지난 뒤 인터뷰에서 고 함석헌 선생을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당시 시민들은 거기서 광주에서 스러진 이들을 떠올리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못다 핀 꽃 한송이'는, 한때 금지곡이었던 '나도야 간다'와 달리 신군부의 트집을 잡힌 적이 없었다.
계열 분류에 집착하는 문학사가들은 박용철을 순수문학파로 분류한다. 김영랑·정지용 등 순수시를 주로 쓴 이들과 함께 여러 잡지를 창간해 활동한 점, 그의 시들이 대체로 날선 계급문학에 비해 현저히 서정적이고, 얼핏 감상적인 기운도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해 함께 발표한 '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가 그런 시다. "쓰린 듯 비인 듯한데 뿌리는 눈은 들어 안겨서/(...) 머지도 않는 앞이 그저 아득하여라" 하지만 4연에서 그는 "이제 아득한 겨울이면 머지 못할 봄날을 나는 바라보자"로 시작했다. 순수-참여의 이분법은 저런 이질성, 어쩌면 삶의 아이러니를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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