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 추모 열기, 베이징 '홍색' 관광지 둘러보니]
톈안먼 연설 따라하는 아이, 전승 추억 노인들
中 국영기업 단체복에 당기 들고 기념사진
"혁명열사 정신 받들겠다", 외국인엔 경계 눈초리
전국 중점 관광지만 300곳, 연인원 14억명 다녀가
7월 1일 젠-20 스텔스기 공중 열병식, 시진핑 연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선포합니다.”
지루한 듯 반쯤 남은 생수병을 거꾸로 들고 연신 흔들어대던 소년이 걸음을 멈췄다.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육성 연설을 따라 중얼거렸다. 1949년 10월 1일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올라 신중국 건립을 알리는 장면이다. 엄마 손에 이끌려 줄곧 두리번대며 딴짓하던 조금 전까지와는 딴판이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어르신들도 흡족한 표정으로 함께 읊조렸다.
12일 중국 베이징 북서쪽 외곽 샹산(香山) 중턱에 있는 ‘쐉칭(雙淸) 별장’을 찾았다. 마오가 49년 9월 베이징에 입성하기 전 6개월간 머물며 새로운 국가의 초석을 닦은 곳이다. 파란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주말을 맞아 단체 방문한 중국항천과공집단(CASIC) 직원 20여 명이 공산당기를 든 채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핵심 국영기업인 CASIC는 중국 로켓과 극초음속 무기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지도부는 허베이성 시바이포(西柏坡)에서 국공 내전을 지휘하다가 49년 3월 280㎞가량 떨어진 샹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CASIC 직원들은 지도에 그려진 시바이포와 샹산을 번갈아 짚어가며 “역시 대단해”라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 옆에는 ‘난징(南京) 해방’이라는 기사 제목이 선명한 49년 4월 25일자 신문을 읽고 있는 마오의 사진과 당시 승전보를 전한 마오의 친필 원고가 걸려 있었다. 한참을 응시하던 백발의 노인은 잠시 안경을 벗고 눈가를 닦더니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듯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中 인구 맞먹는 14억 명 ‘홍색 관광’ 동참
중국인들은 그렇게 ‘국부(國父)’ 마오쩌둥의 발자취를 되짚고 있었다. 가족이 미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할머니, 서툰 붓놀림으로 기념관을 그리는 어린아이, 깃발을 들고 줄지어 옮겨 다니는 동네 주민 등 저마다의 방식은 달랐다. 이들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7월 1일)을 앞두고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를 둘러보며 앞다퉈 ‘홍색(紅色)’ 관광 대열에 합류했다.
홍색 관광은 중국의 애국 열풍에 불을 지필 호재다. 미국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상황이라 더 절실하다. 정부는 일찌감치 전국 300곳을 선정해 강렬한 혁명의 정신이 깃든 중점 홍보 관광지로 띄웠다. 이후 지방마다 경쟁이 붙어 산시성의 경우 445곳을 따로 선정했다. 국민당에 패한 홍군의 대장정 종착지 옌안(延安)이 속한 곳이다. 베이징에도 40여 곳이 있다. 하루 100~200위안(약 1만7,500~3만5,000원)만 내면 도시락을 포함해 관광지 서너 곳을 단체 관람하는 상품이 즐비하다.
2019년 홍색 관광지를 찾은 중국인은 연인원 14억 명, 관련 수입은 4,000억 위안(약 69조7,480억 원)을 넘어섰다. 그렇다고 향수에 젖은 노년층의 전유물은 아니다. 지난달 1~5일 노동절 연휴 관람객의 89%는 40대 이하, 40%는 20~30대로 집계됐다.
애국주의 열풍, 이방인에게는 경계 눈초리
산을 내려와 근처 혁명기념관에 들렀다. 입구에서부터 마오의 대형 동상이 시선을 끌었다. 신중국 70주년을 앞둔 2019년 9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방문해 “명성을 좇았던 항우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혁명정신과 투쟁을 강조한 곳이다. 인민해방군이 베이징에 입성할 당시 환영인파를 담은 사진을 바라보던 남성은 “우리도 아마 저렇게 거리로 뛰어나갔을걸”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베이징시는 이달부터 내부를 혁명의 역사로 가득 채운 빨간색 전용버스를 운영하며 시민들을 기념관으로 태워 나르고 있다.
기념관에서 3㎞ 남짓 떨어진 ‘완안(萬安)’ 공동묘지로 향했다. 중국 최초로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여 공산당 창당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한 베이징대 교수 출신 리다자오(李大釗)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중국 정부는 리다자오 묘지와 도심 생가를 복원해 ‘애국주의 혁명교육의 기지’로 선전하고 있다.
정문에서 신분증으로 여권을 내밀자 보안요원들은 경계의 눈초리로 이것저것 물어봤다. 외국인의 방문이 꺼림칙한지 무전기를 타고 쉴 새 없이 누군가의 지시가 쏟아졌다. 그렇게 10여 분간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혁명열사의 위대한 정신을 계승해 위대한 중국 건설에 앞장서겠습니다.” 묘지 옆 게시판에 방문객들이 붙여 놓은 메모지의 문구가 좀처럼 와 닿지 않았다.
‘천지개벽’ 그날의 영광, 톈안먼 상공서 공중 열병식
묘지에서 24㎞ 거리에 있는 베이징 도심 ‘서우두(首都)’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지난 3월부터 ‘위대한 장정’이라는 주제로 공산당 성립 100주년 특별전을 열면서 홍색관광의 새로운 성지이자 교육의 장소로 집중 선전하는 곳이다.
‘천지개벽, 1921년 7월 23일.’ 꼭 100년 전 상하이에서 제1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열린 날이다. 그 위로는 마오를 비롯한 창당 멤버 13명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훗날 공산당 창건일을 두고 논란이 일었는데 38년 마오의 말에 따라 7월 1일로 굳어졌다). 눈망울을 깜박이며 기록영화를 지켜보던 소녀는 손가락으로 마오를 가리키며 “카이궈(開國ㆍ개국)”라고 옹알댔다. 유치원에서 배운 말이라고 했다. 마오와 공산당이 쌓아 올린 신중국의 성과는 그렇게 아이들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서부터 유독 줄이 길었다. 하지만 3층 특별전시관 안에는 기념사진을 찍는 가족 단위 방문객을 제외하면 생각보다 한적했다. 박물관을 나서는데 지하 1층이 북적댔다. 내려가보니 종이 접기 수업이 한창이었다. 부모들은 아들 딸을 안에 들여놓고는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지켜보려 다닥다닥 붙어 서 있었다. 자녀교육에 쏟는 정성이 공산당 100주년의 열기 못지않은 셈이다.
중국은 내달 1일 톈안먼 상공에서 공중 열병식을 펼친다. 전투기와 헬기가 공산당 100주년을 상징하는 숫자 ‘100’과 ‘7ㆍ1’을 수놓을 예정이다. 중국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젠(J)-20과 15톤급 최신 수송헬기 Z-8L도 선보인다. 톈안먼 광장에서는 문화공연으로 흥을 돋운다. 다만 2년 전 신중국 70주년 때와 달리 미사일 등 전략무기를 공개하는 지상 열병식은 없다. 중앙선전부는 “시 주석이 기념식에서 중요 연설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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