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자유 모두에게' 소송 대리인 가토 다케하루
최종 변론서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의견 진술"
국내서도 차별금지법 10만 넘겨… "연대하길"
편집자주
갈수록 다양하고 치열해지는 젠더 이슈, 누구도 더 이상 외면할 순 없습니다. 세상의 뉴스를 젠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젠, 젠더다' 코너를 비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홋카이도(北海道) 소송의 변론을 끝내면서 원고들의 대리인을 대표하고 또 한 사람의 성적 소수자 당사자로서 의견을 진술하겠습니다.
지난해 10월 법정에 선 원고 측 변호사 가토 다케하루(加藤丈晴·47)는 담담하게 '커밍아웃'을 했다.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민법·호적법이 "결혼의 자유와 법 앞의 평등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며 정부를 상대로 1인당 100만엔의 손해배상을 요구한 홋카이도 동성 커플 3쌍의 소송 대리인으로 나선 최종 변론 자리였다.
그로부터 반년이 흐른 2021년 3월, 일본 삿포로지방법원은 동성 간 결혼 금지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주요 7개국(G7) 가운데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인 일본에서 나온 판결은 이웃인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오고 있다. 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위한네트워크(가구넷)는 11일 가토 변호사에게 직접 동성혼 관련 삿포로 판결의 과정과 의의 등을 들었다. 그는 "삿포로 법원의 판결은 역사적인 사건"이라면서 "(일본에서) 동성혼 인정으로 가는 중요한 관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성소수자, 특별한 사람 아냐"
"판사들에게 동성애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사회 어느 곳에나 있다, 원고뿐 아니라 당신의 가족, 친구, 가족, 동료 중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가토 변호사는 변론에서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밝힌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변론 당시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며 고등학생 시절 성소수자임을 자각,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존재라는 사실에 괴로워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 재판은 성적 소수자의 존엄을 되찾는 싸움이다. 법원에선 헌법의 이념을 근거로 성적 소수자의, 그리고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위해 꺾이지 말고 당당하게 위헌 판결을 내려줄 것을 바란다"라고 변론을 마쳤다.
그의 요청대로 삿포로지방법원은 동성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14조 내용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성적 지향은 개인의 선호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며 "동성 커플이 이성 커플이 받는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삿포로(홋카이도)뿐 아니라 도쿄, 나고야, 오사카, 후쿠오카에서도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라는 이름의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가토 변호사는 "당시 전국적으로 28명이 소송에 참여해 전국 5개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사법판단이 나온 것은 삿포로지방법원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커밍아웃이 "(법원의)결정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라고도 덧붙였다.
"동성혼 법제화, 순탄치 않겠지만…"
삿포로지방법원은 이번 판결문에서 동성혼에 긍정적인 국민이 과거보다 많이 늘었고, 앞으로 이런 의견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 예측된다는 점을 동성혼에 법적 보호가 필요한 논거로 삼았다.
가토 변호사에 따르면 재판부의 관련 판결 직후 일본 현지언론인 아사히 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65%가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대하는 의견은 22%였다. 2015년 같은 조사에서 찬성과 반대가 각각 41%와 37%였다는 점에 비춰보면 동성혼을 인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훌쩍 뛴 셈이다.
일본은 G7 중 유일하게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라지만 국내에 비해서는 관련 논의가 앞서나간다. 올해 4월 1일 기준 일본의 지방자치단체 중 103곳에서 '동성 간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 총 1,742 커플이 등록했다.
동성 간의 혼인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는 아니나 공공기관이 배우자 증명에 준하는 서류를 공식 발행하는 만큼 사회적인 변화도 뒤따랐다. 가토 변호사는 "(조례 이후) 일부 보험회사가 동성 파트너를 수익자로 인정하거나, 은행에서 주택 대출을 함께 받도록 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계는 명확하다. 그는 "기존의 (법적 부부가 갖는) 법적 이익이나 권리 차원에서는 동성 파트너십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상속이나 배우자 비자 발급, 세금신고 등에서는 여전히 적용이 제외된다. 홋카이도 소송에 나선 원고들 역시 법적인 부부와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 그는 "소송에 참여한 커플 중 한 사람이 공무원인데, 파트너가 정부에서 주는 주택에서는 함께 살 수 없다"라면서 "코로나19 상황에서 각자의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하지 않아 밀접 접촉자라고 신고할 수 없는 등의 일도 있었다"라고 전했다.
정부 역시 요지부동이다. 가토 변호사는 "안타깝게도 (판결 이후)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은 결혼 관한 민법 조항이 헌법을 위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일본의 거대 정당 중 하나인 공명당에서 동성혼 관련 연구팀을 만들어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소속 회원들을 초청했다는 것. 가토 변호사는 "이번 삿포로 판결이 어떤 의미인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자리였다”라고 전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는 "동성혼을 법제화하는 것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겠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삿포로 고등법원에 항소, 좀 더 명확하게 동성혼을 인정하고 법제화를 해야 한다는 판결을 이끌어내려고 한다"라고 했다.
차별금지법 10만 넘긴 한국, 日에도 영향
한국에서도 올해 2월 동성 부부가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인정해달라는 소송에 나섰다. 법적 혼인은 아니지만 '사실혼'으로 이를 인정해달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정부는 4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정책방향을 담은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도 동성부부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성립요건인 10만명을 넘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인종·출신국가·종교·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한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관련 법은 본회의에 부의할지 여부를 심사받게 된다.
가토 변호사는 “한국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면서 "일본에서는 (보수 성향의)자민당이 계속 집권하면서 오히려 차별금지법 도입이 굉장히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한국의 움직임이 일본에서의 차별금지 운동을 다시 끌어내는 데 영감을 주고 있다"라면서 "아시아의 모든 국가에서 동성 혼인이 법제화가 되기까지 한국뿐 아니라 모두 연대, 결과적으로 같은 목표를 함께 이루기를 바라고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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