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9개월, 젠더·계층을 본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계층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새롭게 등장한 동인(動因)이 ‘소수자’다. “계층사다리가 무너졌다”는 젊은 세대의 자조와 한탄은 조선족, 난민 등 ‘외부 소수자’를 적대하는 배타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장년층이 성(性)소수자 등에 좀 더 거리를 두는 것과 대별되는 지점이다. 미래를 비관하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생존 싸움에 내몰린 이들인 만큼, 외부집단을 자신의 기회를 갉아먹는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이다.
젊을수록 '국경 밖 소수자' 더 멀게 느껴
한국일보ㆍ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지난달 25~27일 실시)에서 여러 소수자 집단을 놓고 ‘거리감’ 정도를 물은 결과, 20대는 조선족(60.5%) 난민(44.5%) 트랜스젠더(43.2%) 동성애자(32.2%) 순으로 ‘거리감이 크다’고 답했다. 30대의 응답도 비슷했다. 반면 40대 이상은 동성애자·트랜스젠더에 가장 배타적이었다. 50대는 동성애자(60.6%) 트랜스젠더(57%) 난민(36.7%) 조선족(36.3%) 순서로 답해 20대와 정반대 인식을 보였다.
특정 집단을 꺼리는 감정은 이들이 ‘불공정한 경쟁을 한다’는 시선으로 이어졌다. 20대가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여기는 소수자 집단 비중은 조선족(58.8%) 페미니스트(53.9%) 예멘 난민(44.9%) 북한이탈주민(36.4%) 외국인노동자(32.7%) 비정규직 노동자(29.4%) 성소수자(26.5%) 등 순으로 조사됐다. 페미니스트가 앞에 자리한 건 20대 남성의 높은 응답률(80%)에 기인했다.
'계층 상승' 좌절감이 배타성 초래
계층 이동 가능성에 대한 주관적 인식이 소수자를 향한 태도를 결정하는 중요 변수라는 점도 이번 조사에서 새롭게 드러났다. 우선 연령대가 내려갈수록 ‘내 삶이 부모보다 윤택하지 않다’는 생각에 동의했고, 다른 사람도 믿지 못했다. 20대는 57.5%가 부모보다 윤택하지 않다고 답했지만, 60대에서 그 비중은 39.4%로 줄었다. 또 ‘부모보다 전혀 윤택하지 않다’는 이들의 20.2%가 ‘대부분의 타인을 신뢰할 수 없다’고 답한 반면, ‘부모보다 윤택하다'는 응답자 중 같은 답변은 8.9%에 불과했다.
계층 상승이 좌절됐다는 무력감은 ‘국경 밖’ 소수자 집단에 대한 거리감과도 상관 관계를 보였다. 난민 북한이탈주민 외국인노동자 조선족 등에 ‘거리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부모보다 윤택하지 못하다’는 집단이 반대 집단보다 훨씬 높았다. 조선족을 대하는 양 집단의 응답 격차는 14.7%포인트에 달했다. 이에 반해 부모보다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집단은 부모 세대처럼 동성애자·트랜스젠더에 더 거리감을 느꼈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연구위원은 “난민, 조선족 등 외부자를 배타적으로 여기는 인식은 경제적 기회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며 “계층 상승 기회의 문이 좁아지면서 외부집단을 멀리하는 현상이 먼저 나타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사 방법
이번 조사는 한국일보 의뢰로 한국리서치가 웹조사(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 등을 통한 URL 발송) 방식으로 실시했다.
총 256개 문항을 설계해 △국정 인식 △공정 △안보 △젠더 등 폭넓은 주제들을 다양한 가설을 통해 검증했다. 세대론이 글로벌 이슈로 부상한 만큼, 세대 간 차이 및 세대 내 이질성을 집중 분석했다. 이번 조사처럼 방대한 문항을 묻는 데는 전화조사나 면접 조사에 한계가 있어 웹조사 방식을 활용했다.
①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이메일·문자·카카오톡·자체 개발 앱으로 설문을 발송했고 ②중복 응답을 막기 위해 1인당 조사 참여 횟수를 제한했으며 ③불성실한 응답을 차단하기 위한 모니터링 등을 실시했다.
한국리서치 웹조사 담당 연구진이 조사 전반을 관리해 품질을 높였다. 국승민 미국 오클라호마대 교수와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이 조사 설계와 분석에 참여했다.
조사 기간은 5월 25~27일, 대상은 전국 만 18세 성인 남녀 3,000명이고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1.8%포인트다. 2021년 4월 정부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지역·성·연령별 가중치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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