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이하에 성소수자 묘사?금지' 법안 통과
'보수 결집' 오르반 총리, 이번엔 反동성애로
헝가리에서 미성년자에겐 동성애를 묘사하는 콘텐츠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대표적 포퓰리즘 지도자로 꼽히는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보수 세력 결집을 위해 다시 꺼내 든 '반(反)동성애' 카드가 실제로 입법화한 것이다. 헝가리 내에선 격렬한 반대 시위가 열렸고,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도 비판을 쏟아냈다.
헝가리 의회는 15일(현지시간) 18세 이하에게 성소수자를 묘사하거나 성전환 수술을 조장하는 내용 등이 담긴 콘텐츠를 금지하는 법안을 찬성 157표, 반대 1표로 가결했다. 전날 의사당 앞에서 약 1만 명이 시위를 열어 반발했고, 10만 명 이상이 반대 서명에도 참여했으나 입법을 막진 못했다. 의회 3분의 2를 장악한 우파 성향 집권당 피데스가 법안 투표를 밀어붙였고 극우 보수당 요비크까지 찬성에 손을 든 결과다. 헝가리 정부 대변인은 "미성년자들이 해로운 영향을 받거나 도덕적 가치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입법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당초 이번 법안은 소아성애 관련 처벌 강화 목적으로 발의됐다. 하지만 여당이 미성년자 보호를 명분으로 성소수자를 소아성애와 한데 묶으면서 쟁점이 확 바뀌었다. '성소수자 관련 콘텐츠는 유해하다'는 대전제가 깔린 법이 탄생하면서 이제 성소수자는 미성년자를 위한 학교 교육자료나 방송 콘텐츠에 출연할 수 없게 됐다. 공식 명부에 등재된 일부 개인과 단체만 성교육 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제한한 탓이다. 현지 매체들은 "공공장소에서 성소수자 권리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사용하는 것조차 처벌받고, 동성혼 가정이 나오는 드라마·영화의 TV 방송도 금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르반 총리는 이번 입법으로 극우 세력을 끌어들이면서 야권은 분열시키고 보수 세력을 결집하는 성과를 거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 표를 흡수하는 의제인 난민 문제가 잦아들자, 성소수자로 눈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지난해에도 동성애 커플의 입양을 막고 트랜스젠더나 간성(間性)인 사람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게 법적 성별을 바꾸지 못하도록 법을 개정한 바 있다. 중앙유럽대학(CEU)의 헝가리 정치학자 안드라스 보조키는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양극화를 부르는 의제로 급진적 동성애 혐오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라며 "덕분에 감염병 부실 대응 등 최근 이슈로부터 (국민들의) 주의를 분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진단했다.
물론 오르반의 거침없는 행보에 EU가 제동을 걸 순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헝가리 야권 소속이자 유럽의회 의원인 안나 도나스가 EU 당국에 즉각 조치를 촉구했고, 유럽 법원도 향후 해당 법에 대해 위법 판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다만 실질적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지난해에도 국가 비상사태 시한 폐지 등 오르반의 반(反)민주적 행보를 EU가 규탄하며 압박했으나 탁상공론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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