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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14일부터 사흘간 공단 1층 로비에서 단식농성을 했다. 비정규직인 공단 콜센터 노조원 1,000명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에 들어갔고 공단 정규직 노조가 반발하자 양측 대화를 촉구하기 위해 비상 수단을 택했다는 게 김 이사장의 설명이다. 사정이 그렇다 해도 갈등 해결 최종 책임자의 단식농성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 건보공단 이사장의 역할은 단지 직원 1만6,000명의 관리자에 그치지 않는다. 안으로는 건보통합(2000년)의 후유증이 잠재해 있는 조직 갈등을 잠재우고, 밖으로는 틈만 나면 건강보험제도의 공공성을 흔들려는 의료계와 경제부처의 외풍을 막아줘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임무는 중추적 사회보험제도 운영자로서 국민들에게 건보제도의 정합성을 보여주고,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다.
□ 낙하산 인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역대 건보공단 이사장 중에는 건강보험의 공적 역할에 소신을 보여준 이들이 많았다. 복지부 관료 시절 건보 통합을 강력하게 반대해 취임 초 강한 반발을 샀던 김종대 이사장(2011~2014)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간 보험료 부과 형평성 문제에 관심을 갖고 ‘부과체계 일원화’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려, 정책 추진 여론 형성에 큰 역할을 했기에 박수를 받으며 공단을 떠났다. 담배회사를 대상으로 한 소송은 공단의 사회적 역할을 증명해준 모델이기도 하다. 심지어 공안검사 출신의 정형근(2008~2011) 이사장조차 영리병원 추진ㆍ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 의료민영화 드라이브를 걸던 이명박 정부에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는 등 버팀목 역할을 제대로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의료공공성을 강조하고 보편적 의료보장 체계로서의 건강보험 위상 강화에 평생을 바쳐온 김용익 이사장은 고령화에 따른 건보재정 안정과 보장성 강화라는 난제에 해법을 내고 공단의 공공적 역할에 대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적임자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공단 내 정규직·비정규직 갈등 문제 대처를 소홀히 하면서 퇴진 압박까지 받고 있다. 건보통합, 의약분업 등 훨씬 복잡한 이해관계가 걸린 갈등을 막후에서 조정했던 정치력을 이번에도 발휘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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