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 단위로 토요일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21> 급증하는 신인구현상, ‘생애미혼의 위기와 기회’
확실했던 기존 상식은 파괴되고, 공고했던 고정관념은 파기되는 시대다. 생애주기별 연령행사가 대표적이다. 생로병사야 자연법칙이니 당연하나 관혼상제는 벌써부터 흔들렸다. ‘교육→취업→결혼→출산’의 재검토가 그렇다. 원인은 급격한 인구변화와 맞물린다.
평생 혼자 사는 생애싱글 현상도 강화되고 있다. 이른바 '솔로시대·비혼사회'의 개막이다.
새로운 인생모델로 부각된 ‘생애미혼’
인구는 출산에서 나온다. 출산은 또 가족결성·소득기반이 전제된다. 결혼해야 출산해서다. 사실혼의 배척과 법적혼의 장벽이 만든 한국의 출산환경이 열악한 이유다.
그 대응기제가 트렌드화된 게 홀로 살기다. 자발이든 외압이든 생애미혼(평생 비혼)은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 20대 절반 이상은 비혼독신(53%)과 무자녀(52.5%)에 동의한다. 결혼도 아이도 "No"를 외치는 후속세대의 등장이다. 그 결과 2020년 1인 가구는 30.4%로 2015년(21.3%)보다 8.7%포인트 늘었다(2020년 가족실태조사).
문제는 확산세다. 결혼의지는 나이와 함께 ‘만혼(晩婚)→비혼(非婚)’으로 변한다. 만혼허들을 뚫어도 자녀출산은 첫째아이로 끝나고, 아니면 생애미혼의 삶을 택한다. 결혼 안 한 아저씨·아줌마의 등장이다. 거부감은 낮다.
사례가 늘자 생애미혼은 또 하나의 라이프모델로 떴다. 생애미혼은 확실히 증가세다. 최근 통계로는 2015년 남성 10.9%, 여성 5%다. 적다면 적지만, 증가세는 놀랍다. 각각 5.8%·2.8%였던 2010년보다 2배나 뛰었다. 이를 반영해 현재치로 추정하면 대략 15%·10%대로 예상된다. 앞으로는 더 거세질 전망인데, 2025년 20.7%·12.3%, 2035년 29.3%·19.5%로 예측한 자료도 있다(통계청).
생애미혼은 일본에서 건너온 통계다. 그만큼 열도의 싱글화는 심각하다. 50세까지 결혼 안 한 사람을 뜻하나, 통계는 45~54세 평균미혼율로 뽑는다. 나이 쉰까지 혼자면 평생 홀로 일 걸로 치환된다.
일본의 생애미혼은 남녀 각각 23.4%·14.1%다(2015년). 남성 4명 중 1명이라 상당한 비율이다. 역시 매년 늘어난다. 2025년(남 27.4%·여 18.9%), 2035년(남 29%·여 19.2%) 등으로 추정된다(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이런 일본을 한국이 곧 추월한다. 원조국보다 더 과격한 증가세다. 얘기인즉슨 15년 후면 한국이 일본을 넘어선 초싱글사회가 된다. 남성 3명 중 1명, 여성 4명 중 1명이 생애미혼의 삶에 들어선다.
특정연령은 역전사례도 있다. 25~29세 미혼은 한국이 90%인 반면 일본은 73%다. 결혼적령기인 30~34세도 한일 각각 56%, 47%로 역전됐다. 1995년 30~34세 미혼이 19%였으니 큰폭의 증가세다. 35~39세(7%→33%)와 40~44세(3%→23%)도 모두 늘었다(보건사회연구원).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의 공고했던 상식이 허물어진다는 의미다.
고학력·저성장·가치관이 빚어낸 인구현상
홀로 살기의 원인은 복잡하다. 저성장·고학력·가치관이 뒤섞여 신풍경을 낳았다. 결혼본능과 생활압박의 격차가 빚어낸 미스매칭이다. 이로써 생애미혼은 일종의 타협카드로 채택된다.
미혼과 비혼은 다르다. 2030세대의 미혼은 자연스럽다. 반면 4050세대는 ‘미혼→비혼’으로 이해된다. 해서 50세를 생애미혼 판단 나이로 본다. 6080세대 독신가구도 구분된다. 사별·이혼 등 생애후반의 특수성 탓이다. 즉 결과적 혼자와 자의적 싱글은 다르다.
포인트는 자발적 비혼 증가다. 1인 가구 혼인상태는 미혼(40.2%)이 사별(30.1%)과 이혼·별거(22.3%)보다 높다(가족실태조사). 애초부터 미혼이 많다는 뜻이다. 단 나이를 먹을수록 결혼희망·성혼확률은 낮아져 비혼화로 연결된다. 주류관념·기성가치에 맞서 거부·저항의 아이콘이 된 X세대(1975~85년생)가 선두주자다.
홀로 살기의 나이먹기다. 출생부터 개인화에 익숙한 별종그룹인 MZ세대도 X세대처럼 ‘미혼→비혼’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이들의 비혼확률은 선배세대보다 높다. 연령불문 생애미혼이 가시권에 들어선다. 4050세대 중년싱글의 삶을 다루는 관찰예능이 늘어난 것과 일맥상통한다. 결은 다르나, 결혼해도 무자녀가 많은데다 옅어진 이혼 낙인도 홀로 살기를 거든다. 이대로면 사별까지 더해져 인생 후반을 지배할 기세다.
결혼 안 한 아저씨·아줌마는 아직은 소수나, 상당한 덩치로 커질 전망이다. 비중이 커지면 영향·파급력은 또 다른 사회변화를 낳는다. 관심·분석이 필요한 이유다. 당장 생애미혼은 차별적이다. 같은 비혼이라도 경제·구매력 격차는 넓고 크다. 상당수는 빈곤함정에 있지만, 고소득 생애미혼자의 가세로 점차 개선된다. 골드싱글의 존재감이다. 그럼에도 부유한 생애미혼은 제한된다. 현재·미래의 경제력을 최초로 실험하는 결혼루트에서 비켜섰다는 건 경제적 취약성과 직결된다.
‘소득불안→결혼포기’가 생애미혼의 출발일 수 있다. 결국 빈곤·고립·좌절의 다수파와 부유·외향·희망의 극소수로 엇갈린다. 비슷한 이유로 성별 온도는 구분된다. ‘남성 흐림 vs. 여성 맑음’에 가깝다. ‘남자는 돈이 없어, 여자는 돈이 있어 결혼 안 한다’는 항담과 같다. 여성의 고학력화·사회진출과 맞닿는다. 근로환경·산업구조는 제조·근육화에서 서비스·대면화로 변하는 와중인데 이때 여성파워가 잘 먹힌다. 실제 일본에선 불황기(2010년)에 20대 성별임금이 역전되기도 했다. 이로써 남성초식화와 여성육식화로 정리되는 중성화는 심화된다. 근육을 자랑한들 먹혀들기 어려운 한편 남성사회에서 유리천장을 뚫으려는 여성전투력은 세질 수밖에 없다.
생애미혼이 펼쳐낼 신미래트렌드
생애미혼화는 일본 현재·한국 미래를 보건대 새로운 사회트렌드일 확률이 높다. 시대가 변하듯 사람도 가족도 변하는 건 당연하다. 생애미혼은 새롭지만 급속도로 확산된다. 시선은 부정일변도에서 가치중립적으로 향한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한 자유롭고 속편한 라이프스타일이 나이를 먹은 것뿐이다. 특정모델이 늘면 더는 주변·예외상황일 수 없다. ‘4인 가구→1인 가구’로 표준모델이 바뀐 걸 받아들이고, 그속에서 생애미혼을 품어안을 정책대응이 시급하다.
노총각·노처녀를 가족영역이 아닌 정책대상으로 적극 포섭해야 갈등은 줄고 효용은 커진다. 15년 후면 남녀 각각 ±30%·20%대에 달할 생애미혼을 골칫거리가 아닌 사회동력으로 활용하는 게 좋다. 출산정책은 수정대상이다. 생애미혼이 늘면 저출산세는 쉽게 반등하지 않는다. 현행처럼 가성비 낮은 직접투하형의 재정방식에서 출산의지를 갖춘 핀셋지원형 혹은 출산환경을 위한 제도개선형의 실효적인 맞춤정책이 요구된다. 어쩌면 출산정책 자체의 대폭 수정·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출산정책→가족정책→인구정책’으로의 큰그림이 힌트일 수 있다.
새로운 현상은 새로운 기회다. ±50세의 10년을 뜻하는 생애미혼은 잠재후보인 미혼청춘과 달리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혼자 사는 노총각·노처녀가 만들어낼 신시장은 좋아진 경제력과 달라진 가치관을 자양분으로 커나간다. 한국 특유의 연공제·생활급을 볼 때 이 연령대면 소득수준은 정점을 찍는다.
반면 자녀·가족문제에서 자유로워 가처분소득은 상당하다. 소득향상·소비제한처럼 훌륭한 시장은 없다. 거액의 피규어나 생활취미 등 본인다움을 실현해주는 삶에 아낌없이 소비하는 중년고객은 생애미혼이 만들어낸 신트렌드다. 또 선배세대보다 후배세대의 사고체계와 더 닮아 ‘가족→개인’으로의 가치전환에 익숙하다.
시장이 중년싱글의 개인소비에 제대로 주목·제안하면 얻어질 대가는 꽤 많다. 취약지점도 고려 대상이다. 중년발 생애미혼이 빚어낼 불편·불안·불만을 예방·해소해주는 차원이다. 커리어를 둘러싼 중년 특유의 위기와 임박한 싱글노후의 미래불안이 그렇다. 고독사도 실체적이다. 역으로 생애미혼이 만들어낼 새로운 관계욕구는 커져간다. 생애미혼은 급속한 인구변화가 만들어낸 주목함직한 신현상이다. 동시에 미래사회를 읽는 소중한 힌트다. 위기·기회가 여반장이면 상황대응별 결과도 천지차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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