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직사각형 모양의 가축 그림들
그림 속 양은 진짜 괴물이다. 평범한 양보다 훨씬 더 크고 몸통은 거의 직사각형이며 다리는 기형적으로 가늘다. 농부는 양에게 먹일 무를 들고 자신의 가축과 함께 화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음 그림의 황소는 어떤가? 역시 비정상적으로 몸집이 비대하고 형태도 기하학적이라 정말 이상해 보인다. 이 그림을 본 한 초등학생이 ‘냉장고를 삼킨 소!’라고 외쳤다고 한다. 실제로 냉장고를 집어삼킨 듯 네모반듯한 형상이다. 도대체 그림의 가축들은 왜 이렇게 거대하고 기이한 모습일까?
이런 의문의 단서는 그림을 그린 날짜에 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 영국 북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가축을 개량하여 종전의 것보다 고기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기술, 즉 육종이 인기 있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는 부유한 농장주들은 기존 가축들의 품종을 개발하여 더 크고 무거운 황소, 양과 돼지를 만들어내는 데 노력을 집중했다. 그림의 별난 생김새의 양과 소는 이 과정에서 등장했다.
이들은 일반 농부가 아니었다. 큰 농장을 소유한 부유한 귀족이나 부농, 젠트리 계급의 아마추어 육종가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 공도 소와 돼지를 개량하는 가축 개량가였다. 품종 개량과 우량가축 대회 우승은 이들에게 일종의 고급 오락 같은 것이었다. 질 좋은 고기를 많이 얻기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살이 찌도록 기른 가축들은 크고 뚱뚱할수록 성공한 개량종이라고 평가되었다.
당시, 소를 비롯한 가축은 중요한 재산이었고 사회적 지위와 부유함의 표상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최신 육종 연구서를 읽고 연구하며 선택적 육종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는 비만 가축을 경쟁적으로 만들어냈다. 18세기부터는 가축 사육 및 농작물 생산의 모범 사례를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 농업을 장려하기 위한 농업박람회와 농업 쇼도 등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개량한 커다란 동물들을 너무도 자랑스러워했고, 각종 경연대회에 내보내 누가 더 좋은 품종을 개량했는지 겨뤘다.
'더럼 황소(Durham Ox)'라고 불리는 황소는 당대의 육종법에 의해 탄생했는데, 무려 1,700㎏이 넘는 거대한 동물이었다. 더럼 황소는 특별하게 제작된 수레에 실려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순회하며 농업박람회와 각종 쇼에 등장했고, 놀랍도록 살이 찐 괴물 소를 보려고 몰려드는 군중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이 소는 5년간 사람들의 눈요깃거리가 되다가 수레에서 떨어져 엉덩이를 다친 후 치료에 실패하자 도살되었다.
이 기묘한 그림들은 가축의 크기가 경쟁력이었던 시대의 유물이다. 크기도 크기이려니와, 이 시기에 그려진 소들은 특이하게도 대부분 직사각형이다. 왜일까? 과장된 직사각형의 모양은 품종 개량된 동물들을 더 크고 인상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법이었다. 농장주들은 화가에게 자신들이 길러낸 가축과 함께 있는 그림을 주문했고, 가축들이 가능한 한 크고 독특하게 보이기를 원했다. 화가들은 덩치를 부각하기 위해 몸통은 과장된 크기로 그렸고 다리는 작고 가늘게 표현했는데, 결과적으로 약하고 왜소한 다리가 어마어마한 몸집을 지탱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농부 자신들도 멋진 코트와 모자로 차려입고 가축 옆에서 포즈를 잡았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정말 희한한 가축 초상화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가축 초상화는 단순히 미술 작품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농업사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당시 많은 농업 잡지 및 정기 간행물이 발간되었고, 동물 화가들에게 대회에서 우승한 가축들을 그리도록 의뢰해 잡지에 싣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런 부자연스러운 가축의 모습은 소뿐만 아니라 돼지의 묘사에서도 나타난다. 품종 개량된 동물 그림에서 돼지는 축구공 형태, 소와 양은 직사각형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이 유행했다.
21세기 인류는 1800년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발전한 육종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획기적인 유전형질 조작 테크놀러지가 개발되면서, 가축, 곡류, 채소, 꽃 등 모든 생물종에 걸친 최첨단 품종 개량 기술이 나날이 업그레이드 중이다. 이러한 인위적인 동식물의 변형은 어느 지점까지 계속될까? 그리고 그것이 인류의 미래에 축복이 될까, 저주가 될까? 그림 속의 괴물 같은 양과 소를 보면 그다지 장밋빛 미래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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