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더불어민주당 내 계파 갈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압도적 힘의 우위를 가진 친문재인계에 필적할만한 세력이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달 송영길 대표 체제 출범 이후 친문계와 비문계 간 갈등이 부상하고 있다. 4·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선출된 비주류 지도부가 '쇄신'을 앞세워 당 운영에 변화를 시도하자, 친문계가 이에 반발하면서 전선이 형성되는 모습이다.
가장 첨예한 이슈는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개편 문제다. 송 대표가 성난 부동산 민심 수습을 위해 부동산 세제 개편에 나서자, 친문계와 민평련 등 개혁 성향 의원들이 '부자 감세'라며 반대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지도부 측에선 "특정 계파의 지도부 흔들기"라며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김종민·신동근·진성준 등 친문계 의원들은 18일 정책 의원총회에서 종부세 개편안에 반대 입장을 펼 예정이다.
당내 대선 경선 연기론도 후보 캠프는 물론 계파 간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고 있다. 당내 대선주자 중 지지율 1위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경선 연기론에 대해 "약 장수가 가짜 약을 파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지만, 친문계와 다수의 대선주자들은 연일 경선 연기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경선 연기론자들은 국민의힘보다 두 달 앞서 후보를 선출할 경우 검증무대에 오래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주당에 불리하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반면 이 지사 측은 자신에 대한 비토 정서가 강한 강성 친문계의 의도적인 흔들기로 보고 있다. 키를 쥔 지도부는 사실상 '대선 180일 전 선출' 규정이 있는 당헌·당규를 바꿀 명분이 없다는 입장이다. 송 대표는 이날 SBS에 출연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보여줬듯 원칙상 당헌·당규를 바꾸는 것은 국민과 당원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선 연기를 요구하는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 측 의원들이 주축이 돼 "경선 연기를 의논하는 의원총회를 열자"는 내용의 의총 소집 요구서에 60여명이 서명하면서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만약 지도부가 당헌 개정의 뜻을 굽히지 않을 경우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 캠프 측은 물론 경선 연기론을 주장해 온 친문계 의원들의 지도부에 대한 불만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송 대표의 '조국 사태' 사과를 두고도 친문계와 지도부는 서로 각을 세우고 있다. 송 대표가 취임 1개월 기자회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제에 대해 사과하자, 친문계 최고위원들 사이에서는 사과 수위가 필요 이상으로 높았다는 불만이 새어 나왔다. 공교롭게 강성 친문계로 분류되는 김용민 최고위원은 당 대표 등 지도부를 선출하는 경선에서 권리당원 투표 반영비율을 현행 40%에서 60%로 상향하는 내용의 당헌 개정에 착수했다. 개정이 이뤄진다면 권리당원 다수를 차지하는 강성 친문계 당원들의 입김이 보다 강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친문계는 이런 갈등이 '친문 패권주의'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수위를 조절하고 있지만 지도부의 쇄신 드라이브 강도에 따라 갈등이 격해질 수도 있다. 한 친문계 의원은 "최고위원들 사이에서 송 대표가 독단적인 당 운영을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이를 계속 인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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