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삼척의 무건리 이끼폭포는 암벽을 뒤덮은 초록색 이끼 사이로 비단처럼 흘러내리는 폭포수가 조화를 이루는 명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촬영지로도 잘 알려진 이곳은 신선이 사는 듯한 '선경(仙境)'을 담으려는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남들보다 더 특별한 '한 컷'을 건지기 위해 출입이 금지된 이끼폭포 내부까지 들어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보니, 폭포 주변 이끼의 훼손이 심각하다. 지난 2일 현장에서 만난 관리인 서상현씨는 “사진작가나 동호인들이 관리인이 없는 시간을 틈타 관람대를 벗어나 출입이 금지된 곳까지 들어가 이끼들을 마구 훼손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낙하하는 폭포수 바로 앞에선 이끼가 여러 군데 벗겨지면서 바위가 훤하게 드러나 있었다. 엄연한 출입금지 지역인데도, 딱딱한 등산화 밑창에 의해 무수히 짓밟혔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특별한 한 컷을 얻으려는 욕망이 발을 디딜 수 없는 폭포 상부까지 상처를 내기도 했다. 서씨에 따르면, 지난해 5월 한 유명 사진작가가 몰래 밧줄을 타고 사진을 찍다가 등산화로 이끼를 짓이기면서 바위에 붙은 이끼 상당 부분이 떨어져 나나고 말았다.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상처가 워낙 깊고 넓어 자연의 복원력으로는 아직 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
이끼는 자연 현상에 의한 손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치유되지만 인위적인 힘에 의한 깊은 상처는 회복하는 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곳은 지난해 9월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잇따라 지나면서 폭우가 쏟아져 바위에 붙은 이끼 대부분이 쓸려가고 말았다. 당시 낙석으로 인한 훼손도 상당했다. 피해가 커서 복구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자연의 자생력은 놀라웠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손상된 이끼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상처가 난 부분에 이끼 포자가 생겨났고 적당한 햇볕과 풍부한 강수량에 힘입어 빠르게 회복 중이다. 자연의 힘겨운 재생 과정에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더 큰 상처를 남기고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삼척시는 이끼폭포의 보호를 위해 관리인을 상주시키고 있지만 혼자서 모든 사고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 관리인 서씨는 “이끼폭포의 원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지난 2009년 여행객과 사진작가들이 로프를 타고 폭포 줄기를 타고 오르다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삼척시는 입산 자체를 통제하기도 했다.
강원도 내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이 많아 곳곳에서 대규모로 이끼들이 자생한다. 이끼 군락과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이끼계곡이나 이끼폭포가 신비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무건리 이끼폭포를 비롯해 평창군의 장전 이끼계곡, 영월군의 상동 이끼계곡 등이 대표적이다.
시원한 계곡이 그리워지는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이곳 무건리 이끼폭포에도 자연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아름다운 비경이라도 인간의 욕심이 닿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버린다는 사실,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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