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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심 "30살 차이 나는 사랑 못 할 것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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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심 "30살 차이 나는 사랑 못 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입력
2021.06.21 16:29
수정
2021.06.21 17:5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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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빛나는 순간'에서 해녀로 열연

고두심은 "자맥질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으나 '감독님 한 번만 더 해보죠'라고 말할 정도로 강한 의욕을갖고 쵤영에 임했다"고 말했다. 명필름 제공

고두심은 "자맥질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으나 '감독님 한 번만 더 해보죠'라고 말할 정도로 강한 의욕을갖고 쵤영에 임했다"고 말했다. 명필름 제공

“엄마 역할 39년 동안 했던 한을 풀었지요. 어떤 (젊은)친구가 (로맨스 연기 상대로)그물망에 걸릴까 그런 기대도 했고요(웃음).”

거침없었다. “보도자료에 있는 대로 (기자들이)쓰시면 되지, 왜 인터뷰를 하라는지 모르겠다”며 말하고, 인터뷰가 “떨린다”면서도 정작 질문마다 매번 긴 답변으로 속내를 털어놓았다. 농담 속에 뼈를 담았고, 웃음 속에 비애를 섞었다. 영화 ‘빛나는 순간’ 개봉(30일)을 앞두고 21일 오전 서울 평창동 한 카페에서 만난 고두심(70)은 연기만큼이나 입담에서도 연륜이 묻어났다.

‘빛나는 순간’은 훗날 한국 영화계가 2021년을 추억할 때면 소환될 만한 영화다. 소재부터 파격이다. “세계 최고 해녀”로 꼽히는 70대 여인 고진옥(고두심)과, 그의 사연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30대 방송다큐멘터리 PD 경훈(지현우)의 사랑을 그린다. 소재만으로도 조심스러울 영화인데 애정 표현을 에두르지 않는다. 10년 전쯤이면 만들 엄두도 내보지 못했을 영화. 신인 소준문 감독은 섬세한 화술로 “특이한 게 아니라 특별한” 사랑을 묘사한다.

고두심은 “삼십 살 나이 차이를 넘는 사랑은 물론 흔치 않은 일”이라며 “무리긴 무리라 해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망설임이 없었을 리 없다. 고두심은 출연 결심을 할 때 “제주도를 먼저 생각했다”고 한다. 고두심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소준문 감독의 절실함이 마음을 붙들기도 했다. “‘고두심 하면 제주도, 제주도 하면 고두심’이라는 소 감독님의 말이 예쁘기도” 했다. 무엇보다 해녀 이야기의 무게를 감당하고 싶었다. “해녀는 제주도의 상징이고 힘이거든요. 그분들이 있어 지금 제주도가 있습니다. 저만큼 그들에 가까운 배우가 있을까요. 그분들 정신이 제주도의 혼이기에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제가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해녀 고진옥과 다큐멘터리 PD 경훈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조금씩 사랑에 빠져든다. 명필름 제공

해녀 고진옥과 다큐멘터리 PD 경훈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조금씩 사랑에 빠져든다. 명필름 제공


영화 '빛나는 순간'. 명필름 제공

영화 '빛나는 순간'. 명필름 제공

제주도가 고향이지만 물질을 해본 적이 없다. 수영조차 잘하질 못한다. 그래도 “평온하게 연기”했다. “든든한 해녀 삼춘(남녀 구분 없이 어른을 지칭하는 제주도 방언)이 많아서 (위험하면) 건져주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빛나는 장면이 여럿이다. “살암시믄 살아지매(살다 보면 살아진다)”라며 억척스레 생활하던 고진옥이 “이녁 소랑 햄수다(당신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여인으로 변하는 과정은 슬프도록 아름답다. 고두심은 고진옥이 제주의 아픈 역사에 얽힌 가족사를 고백하는 모습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그는 “원래 대사와 달리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길게 말하며 연기해 스태프가 다 놀랐다”며 “제주 4·3사건을 들으며 자란 세대라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고두심은 “제주도를 생각하면 여기(가슴을 오른손으로 툭툭 치며)가 먹먹해진다”며 “놓으려고 해도 놓을 수 없고, 항상 손에 잡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영화 '빛나는 순간'은 고된 일상과 마음의 상처 속에서도 삶의 빛나는 순간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정교한 눈으로 포착한다. 명필름 제공

영화 '빛나는 순간'은 고된 일상과 마음의 상처 속에서도 삶의 빛나는 순간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정교한 눈으로 포착한다. 명필름 제공

고두심은 영화를 알리기 위해 예능프로그램 출연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26일 방영될 JTBC ‘아는 형님’에 지현우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아는 형님’에서)보여줄 게 더 없다 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며 “(진행자) 강호동과의 루머까지도 언급했다”고 말했다. 고두심은 “실수로라도 있었던 일이면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있지도 않은 일로 수십 년 꼬리표가 붙어 다녀 정말 억울하다”고도 했다. “기자분들이 (억울함) 지워주세요. 얼마 전 아는 분이 ‘빛나는 순간’ 관련 댓글을 전해줬는데 ‘강호동하고는 끝내고 (연애)하는 거냐’는 거였어요. 정말 상식조차 없는 글이잖아요.”

고두심은 ‘빛나는 순간’으로 멜로에 대한 갈증이 해소됐냐고 묻자 “그걸로 풀렸겠냐”고 반문하며 웃었다. “2탄, 3탄 나와야지요”라고 장난스레 말한 후 “더 갔다가는 맞아 죽을까 겁나요”라고도 했다. “일단 (지)현우 팬들이 쫓아올 듯해요. 그런데, 우리 팬도 만만치 않다, 현우야(웃음).”

드라마 ‘전원일기’(1980~2002)에서 맏며느리 역할로만 20여 년. 이후에는 주로 엄마 역할을 했다. “고두심 하면 제주도라는 인식이 있으니 ‘제주도 사람은 저렇구나’라고 생각할까 봐 뭘 하든 조심스러웠던” 고두심에게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역할들은 굴레와도 같았다. “사회가 만든 이미지에 어긋나지 않으려 스스로를 다듬으며 살다 보니 오늘날의 고두심이 된 듯해요. ‘그것도 괜찮다, 아름답다’고 저를 다독여요. 하지만 ‘국민엄마’로 불리는 건 부담스러워요. 조용필, 이미자, 조수미 정도는 돼야 국민 수식이 어울린다고 봅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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