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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들이 백신을 망설이는 사정

입력
2021.06.21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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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경희의료원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모더나 백신접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동대문구 경희의료원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모더나 백신접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카톡으로 잔여백신 알림이 오도록 설정했다. 덕분에 하루에도 몇 번씩 알림 음이 뜨는데 보통은 당일 오후 5시까지 병원을 방문해 백신주사를 맞아야 한다. 맞을까 말까 망설이다 휴대폰 화면을 뒤늦게 터치하면 ‘마감’ 글자가 뜨고 접종 기회가 날아간다. 마치 전투콜을 하는 느낌이다. 동네배달대행 라이더들은 휴대폰 앱에 뜬 주문을 다른 라이더보다 먼저 터치해야 배달 일을 할 수 있는데 이를 전투콜이라 부른다. 갈까 말까 고민하는 찰나의 순간 다른 라이더가 일감을 채간다. 가게 이름이나 손님이 사는 동만 보고 본능적으로 눌러야 한다.

백신접종은 병원 주소만 보고 선택하기 힘들다. 당장은 시간을 뺀다 해도 다음 날 출근을 하거나 업무상 일정이 있다면 선뜻 맞을 수가 없다. 고열과 몸살 등의 부작용이 생기면 낭패다. 고령의 노동자들은 백신을 맞기 전 몸상태도 신경 쓰인다. 올해 60세가 된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은 백신을 맞느라 3일 동안 일손을 놓았다. 밤늦게까지 고된 배달노동을 하고 다음 날 접종을 할 자신이 없었다. 접종 당일과 다음날은 부작용 우려 때문에 일을 못 했다. 운전을 하다가 고열이 나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40대의 조합원도 고열과 몸살로 3일 동안 일을 못했고, 예약에 성공한 30대 건강한 라이더도 며칠 안 보였다가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라이더들은 유상운송보험이라 불리는 영업용오토바이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이 금액이 1년에 400만~500만 원 정도다. 오토바이 값이 보통 400만 원 정도니, 전업으로 일하는 라이더들은 연간 1,000만 원 정도를 투자한다. 하루라도 오토바이를 놀리면 마이너스다. 이 돈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하루 2만 원 정도의 리스비를 내고 오토바이를 빌리는데, 2, 3일 쉬어버리면 앱 화면에 빨간색으로 마이너스 표시가 뜬다. 라이더들이 자주 만나는 자영업자도 사정은 비슷하다. 임대료를 내야 하는 자영업자들은 몸 아프다고 가게 문을 닫을 수 없다. 중소기업과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노동자에게 휴식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일당은 포기하면 그만이지만, 아프다고 쉬었다가는 직장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코로나19의 발생과 지구적 대유행은 모두의 책임이지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특정국가나 인류의 일부만 백신을 맞는다고 집단면역이 형성되지도 않는다. 국제적 차원에서 코로나19 대책을 마련하고 가난한 나라에 백신을 공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이유다. 정부는 구체적인 방역지침을 새우고, 영업시간을 제한하며 코로나검사와 백신 공급을 책임진다. 전 국민이 백신을 맞으면 우리 모두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코로나19의 발생과 극복은 개인의 책임을 넘어선 사회 전체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직업과 계층에 따라 백신의 부작용을 다르게 부담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백신휴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애초에 유급병가나 상병휴가제도가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보장돼 있었다면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이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백신은 AZ와 얀센만 있는 건 아니다.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백신은 없었는지 함께 살펴봐야 할 것이다. 아프면 마음 편히 쉬자.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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