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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방울이 모여 큰 바다가 됐죠" 김민기에 진 빚 갚겠다 나선 후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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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방울이 모여 큰 바다가 됐죠" 김민기에 진 빚 갚겠다 나선 후배들

입력
2021.06.22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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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50주년 헌정 앨범 만든 한영애·박학기

김민기 '아침이슬' 50주년 헌정앨범을 처음 제안한 한영애(왼쪽)와 총감독을 맡은 박학기는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 인근 카페에서 만나 "김민기 선배에게 진 빚을 갚고 싶어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빚이 더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진탁 인턴기자

김민기 '아침이슬' 50주년 헌정앨범을 처음 제안한 한영애(왼쪽)와 총감독을 맡은 박학기는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 인근 카페에서 만나 "김민기 선배에게 진 빚을 갚고 싶어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빚이 더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진탁 인턴기자

“미국의 케네디센터 아너스(미국 예술·문화에 크게 공헌한 인물에 시상하는 시상식) 영상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그런 상이 있다면 수상자로 누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우리에게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이름이 많지만 김민기 선배가 먼저 떠올랐죠. 그래서 박학기씨에게 우리 모두 김민기 선배에 진 빚이 있으니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가수 한영애는 2019년 4월 어느 날 가수 박학기에게 전화를 걸어 막중한 임무를 안겼다. 박학기는 김민기가 1991년 문을 연 소극장 학전에서 공연하며 그와 인연을 맺었다. 생전의 김광석이 학전에서 열었던 소극장 콘서트도 박학기가 기획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누나(한영애)가 던지니 ‘이건 꼭 해야 돼’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너무나도 무게감이 크게 느껴져서 전화받고 나서 걱정도 했어요. 자신이 없었죠.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도 누나가 있으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로젝트의 씨앗을 발아시킨 한영애도, 총감독이 돼 중책을 떠맡은 박학기도 알고 있었다. 나서는 걸 유독 싫어하는 김민기가 이를 절대 반기지 않을 것을. 예상대로였다. “쓸데없는 일 하지 마”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그러나 후배들을 말릴 순 없었다. 결국 그는 “그 노래들은 이제 내 노래가 아니라 대중의 것이니 어떻게 할 순 없고 좌우간 날 끌어들이진 말라”면서 곡 사용을 허락했다. 농담으로 ‘김민기 빚 갚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은 ‘아침이슬’ 50주년 기념사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한국 민주주의 운동사를 상징하는 ‘아침이슬’은 김민기가 만 20세가 되기도 전인 1970년 서울대 회화과 재학 시절 작곡한 곡이다. 이듬해 그의 공식 1집에 수록돼 처음 음반에 실렸고 이후 김민기의 초등학교 후배이자 포크 음악 동아리 동료였던 양희은이 불러 유명해졌다. 그해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한 이 곡은 4년 뒤 유신정부에 의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금지곡이 됐다. 이번 헌정 앨범은 ‘아침이슬’을 시작으로 김민기가 남긴 귀중한 유산에 대한 존경의 뜻을 담았다.

김민기 학전 대표. 학전 제공

김민기 학전 대표. 학전 제공

박학기는 김민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 대중음악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상이 진흙탕 같았을 때 엎드려 그 등이 돼준 선배가 있었어요. 그 등을 밟고 우리는 진흙탕을 걸을 수 있었죠. 그 등에는 아직도 우리 발자국이 남아 있어요. 이제 그 발자국을 털고 싶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박학기와 한영애,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가 TF가 돼 앨범에 참여할 가수와 배우를 선정하고 어울릴 만한 곡을 골랐다. 학전 출신인 가수 권진원, 윤도현, 유리상자, 배우 황정민을 비롯해 정태춘, 장필순, 윤종신, 메이트리, 이날치, 알리, 나윤선, 크라잉넛 등이 참여했다. 박학기는 ‘친구’를, 한영애는 ‘봉우리’를 불렀다.

‘봉우리’는 1984년 미국 LA올림픽 당시 초반 메달권에서 탈락해 조기 귀국한 대표팀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제목은 봉우리지만 산중턱에 올라가서 잠깐 섰다가 바다를 만나 포용의 한 호흡을 얻는 내용이에요.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임하되 결과가 어떻든 지금 여기서 행복을 느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예전에도 좋아했지만 부르면서 더욱 좋아지더군요.”

김민기 '아침이슬' 50주년 헌정 앨범에 '봉우리'로 참여한 가수 한영애. 경기문화재단 제공

김민기 '아침이슬' 50주년 헌정 앨범에 '봉우리'로 참여한 가수 한영애. 경기문화재단 제공

아이돌 그룹 NCT 멤버 태일과 레드벨벳의 웬디도 한 곡씩 참여했다. 박학기와 한영애는 “요즘 젊은 세대는 김민기를 잘 모른다"면서 "우리가 감동받은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여러 후배들이 참여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박학기는 "태일과 웬디는 그 누구보다 더 진지하고 성실하게 녹음에 임하면서 선배 음악가 김민기에 대한 존경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헌정 앨범을 준비하며 지난해 말 열려 했던 아침이슬 50주년 기념공연은 코로나19로 올가을로 연기됐다. CD와 LP로도 제작되는 18곡의 음원은 21일 ‘Vol. 3’까지 13곡이 공개됐다. 이 밖에 시각예술 분야 작가들이 김민기에 헌정하는 작품을 모은 전시회가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김민기가 썼던 동요 곡과 어린이 뮤지컬 음악을 다시 부른 동요 음반 제작도 추진된다.

박학기는 김민기를 가리켜 “큰 바위 같은 분”이라고 했다. 주변이 어떻게 변해가든 늘 변함없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김민기가 남긴) 이슬 방울이 모여 큰 바다가 됐다“면서 "김민기의 음악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다"고 치켜세웠다. "시대를 초월해서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고 불리는 노래가 있어요. 김민기 선배의 노래가 그래요. 그분의 노래에는 삶에 대한 열정이 있고 사람에 대한 애정, 예술을 향한 올곧은 삶의 태도가 있어요. 어떤 세대에도, 어느 시대에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이죠.”(한영애)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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