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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의 더위는 하지가 지나야 시작된다

입력
2021.06.22 19:00
수정
2021.06.23 10:15
25면
0 0
이정모
이정모국립과천과학관장
절기상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인 21일 경남 남해군 이동면 원천마을 바닷가에서 바라본 석양. 뉴시스

절기상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인 21일 경남 남해군 이동면 원천마을 바닷가에서 바라본 석양. 뉴시스


최근 하지(6월 21일)마다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을 돌고 있습니다. 뭐, 일산에 살면서 호수공원을 하지에만 돌겠습니까. 거의 매일 걷지요. 차이가 있다면 서울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산책했다는 겁니다. 작년에는 과천과학관 동료들과 올해는 서울시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함께했습니다. 타지 사람이 자기 동네에 와서 감탄하고 칭찬하는 모습을 보면 기쁘지요. 호수공원도 아름답지만 공원에 이르기까지 아파트 단지 사이의 가로수 길을 걸을 때마다 "아, 내가 이곳에 살기를 정말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친구들은 호수공원을 돌면서 내내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고양시민으로서 뿌듯했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작년 친구들은 호수공원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떠올려봤습니다. "덥다" "뜨겁다"라는 말만 기억나더군요. 갑자기 섭섭한 생각이 들었지만 저도 무지 더웠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숫자죠. 통계를 찾아봤습니다. 작년에는 하지에만 뜨거운 게 아니라 6월 전체가 뜨거웠더군요.

"무슨 소리야! 작년에 얼마나 시원했는데..."라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작년 7월은 역사상 44위로 더운 7월이었거든요. 실제로 비교적(!) 시원한 편이었던 거죠. 하지만 8월은 여섯 번째로 더운 해였고, 작년 6월은 역사상 가장 뜨거운 6월이었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그렇지 아름다운 호수공원이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단 말이야!"라며 제 친구들에게 노여워하지는 마십시오. 그들에게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작년 하지에는 부분일식이 있었거든요. 2030년 6월 1일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일식이라서 호수공원에 왔지만 눈은 하늘을 향했던 것이죠. 일식이라는 신비한 경험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겁니다. 게다가 눈에는 일식관찰용 시커먼 안경을 썼거든요.


지난해 6월 21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면에서 바라본 일식의 모습. 연평도=이한호 기자

지난해 6월 21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면에서 바라본 일식의 모습. 연평도=이한호 기자


일식현상 관찰 때마다 태양의 위대함을 경험합니다. 부분일식이지만 절정에 달하면 사위가 갑자기 서늘해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과학적 원리를 모르던 시절 해가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일식을 경험한 사람들의 공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두워지는 것도 그렇지만 싸늘해지는 섬뜩한 경험을 몇 차례 하고 나면 저라도 태양숭배사상에 빠지게 될 것 같습니다.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작년의 일식은 오후 3시 53분부터 시작돼서 오후 5시 2분에 절정에 달했던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태양의 고도가 가장 높은 시간, 즉 태양이 내 머리 꼭대기에 올라와서 햇볕을 가장 강하게 쪼이는 시간은 정오입니다. 그런데 가장 더운 시간은 오후 두세 시경이죠. 왜 그럴까요? 단순히 태양의 복사열로만 세상이 더워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햇볕을 받은 땅이 데워지고 그 열기가 우리 주위의 공기를 데우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거든요.

하루의 기온만 그런 게 아닙니다. 해가 가장 높이서 길게 쬐이는 날은 6월 21일이지만 7~8월이 훨씬 덥잖아요. 해가 아무리 강해도 멉니다. 약해 보여도 우리를 둘러싼 땅과 바다 그리고 공기의 영향도 만만치 않은 것이지요.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압니다. 그래서 하지가 지났다고 해서 선풍기를 치우지는 않지요. 오히려 지금 꺼내는 분들이 더 많을 겁니다.

같은 이치로 우리가 오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인다고 해서 당장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모두 백신을 맞는다고 해서 당장 경제위기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죠. 절정이 지난 뒤가 더 어렵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소상공인을 위한 재난지원금이 절실한 때입니다.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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