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팝으로 채운 11집 'City Breeze & Love Song' 발표
“음악이 재미없었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 다시 재밌어졌어요. 왜 재밌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새 앨범이 듣기 좋다면 그런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싱어송라이터 김현철이 시티팝(일본에서 시작한 용어로 1970, 80년대 서구의 소프트 록과 퓨전 재즈, R&B, 라틴 재즈 등의 영향을 받은 도시적 느낌의 대중음악)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제목도 ‘시티 브리즈 앤드 러브 송(City Breeze & Love Song)’. 여름 밤 도심의 강변을 산책하며 듣기 좋은 도회적 감성의 곡들로 채웠다. 주현미 최백호 정미조를 객원 가수로 초대해 만든 미니앨범(EP) ‘브러시(Brush)’ 이후 딱 반 년 만이다. ‘브러시’가 겨울 앨범이라면 이번은 여름 앨범이다. 앨범이 공개된 지난달 14일은 김현철의 생일이기도 하다.
정규 11집인 이번 앨범은 2년 전 무려 13년의 공백을 깨고 내놨던 10집 ‘돛’에 실린 ‘드라이브(Drive)’의 확장판이자 명반으로 꼽히는 데뷔앨범에 담긴 첫 번째 곡 ‘오랜만에’의 확장판이다. ‘일생을’ 같은 발라드 곡은 없다. 스무 살 청년 김현철이 하고자 했던 음악의 원형 중 ‘오랜만에’로 대표되는 DNA를 되살려 앨범 전체로 넓혔다. 지루하고 뻔한 재탕은 아니다. 경력이 오래되면 음악적 감각이 무뎌지고 창작력도 녹슬 법한데 김현철의 음악은 여전히 예리하고 반짝거린다.
시티팝 앨범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시티팝의 유행에 편승하려 만든 앨범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일본을 중심으로 시티팝이 다시 인기를 얻으면서 김현철의 초기 음악이 뒤늦게 ‘한국식 시티팝’으로 재조명됐듯 우연이 겹쳤을 뿐이다. “처음 음악을 할 땐 시티팝이란 말 자체가 없었어요. 시티팝은 남들이 규정해서 부르는 이름인데 뭐라 부르든 상관 없어요. 전 그저 제 음악을 한 것뿐이니까요.”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카페에서 만난 김현철은 “데뷔 이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했지만 이번 앨범 같은 음악이 제일 잘 맞는 듯하다”고 했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템포에 너무 진하지도 너무 옅지도 않은 감정, 탄산음료처럼 청량하게 터지는 브라스 연주와 펑키한 리듬 사이로 양념처럼 곁들여진 록 기타와 건반 소리, 별똥별처럼 곡 중간에 나타나 시원하게 뻗은 뒤 사라지는 색소폰 연주… 2021년의 김현철이 이질감 없이 1989년의 김현철과 겹쳐진다. 새 앨범에 담긴 곡이 32년 전 데뷔앨범에 들어 있어도, 그 반대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김현철은 앨범에 여름날 산들바람처럼 산뜻한 사랑에 빠진 20대 도시 남자의 감성을 담았다.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City Breeze & Love Song), ‘누군가가 좋으면 / 흑백은 컬러가 되고’(So Nice), ‘입꼬리 말야 그게 자꾸 올라가’(Take Off), ‘네가 너무 좋아 눈물이 왈칵 날 것만 같아’(눈물이 왈칵), ‘잠시 너를 안고 있으면 말야 /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따스해’(어김없는, 이 아침처럼)
중년의 해탈을 담은 ‘평범함의 위대함’과 오래 전 동창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동창’처럼 50대에 이른 김현철의 현재를 노래하는 곡들도 있다. “연예인이고 가수니까 특별하고 다를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과 먹고 사는 건 같아요. 제 아이에게도 평범하게 사는 게 젤 행복하고 위대한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시티팝이 인기를 끌면서 젊은 팬들이 크게 늘어난 건 그에게 적잖은 자극이 됐다. 대중적 인기를 고려해 음악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음악을 처음 했던 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1, 2집 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었는데 ‘달의 몰락’이 있는 3집이 뜨면서 대중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만들었죠. 그러다 보니 잘 된 것도 있고 안 된 것도 있었고요. 결국엔 내가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면 그게 실패하더라도 나한텐 성공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앨범을 만들자 생각하고 작업했죠.”
음원으로 먼저 공개된 앨범은 CD로는 내지 않고 바이닐 레코드(LP)로만 발매할 예정이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콘서트도 재개할 계획이다. 1, 2집 전곡을 부르는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이미 밴드와 연습을 시작했다.
그는 매년 생일에 맞춰 앨범을 하나씩 내보겠다는 욕심도 내비쳤다. “70세까지 음악을 한다고 해도 남은 시간이 20년도 채 안 돼요. 눈 깜짝할 새 지나겠죠. 그래서 생각나는 걸 싱글이든 앨범이든 빨리빨리 남겨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 알려지지 않았던 30년 전 노래가 다시 사랑받은 것처럼 지금 만드는 음악이 언제 또 들려질지 모르니 팔리든 안 팔리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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