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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이 엄마가 병원을 계속 찾은 이유는... '슬의생'이 부순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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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이 엄마가 병원을 계속 찾은 이유는... '슬의생'이 부순 편견

입력
2021.06.24 17:30
수정
2021.06.24 18: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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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슬의생' 시즌2 에피소드
일상성 회복하며 공감 불러 일으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서 병원에서 아들과 작별한 연우 엄마를 연기하는 차청화. "연우 생각나면 언제든 오세요"란 주치의 말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tvN 방송 캡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서 병원에서 아들과 작별한 연우 엄마를 연기하는 차청화. "연우 생각나면 언제든 오세요"란 주치의 말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tvN 방송 캡처

연우는 병원에서 컸다. 백일도 돌잔치도 병실에서 했다. 미숙아로 태어난 연우는 여러 번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다 3년 만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 연우 엄마는 몇 달째 아이가 지낸 병원을 들락거린다. 죽은 연우의 생일엔 케이크를 들고 병원에 가 의료진을 찾았다. 일부 간호사와 의사들은 연우 엄마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눈을 감은 게 병원 실수라고 생각해 그 증거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서 죽은 아들이 입원했던 병원에 생일 케이크를 들고 온 연우 엄마. tvN 방송 캡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서 죽은 아들이 입원했던 병원에 생일 케이크를 들고 온 연우 엄마. tvN 방송 캡처

의료진의 불안한 눈빛을 눈치챈 연우 엄마는 어렵게 입을 뗐다. "선생님 여기 오면요, 사람들이 절 연우 엄마라고 불러요. 전 그 말이 너무 좋아요." 병원에서만 잠깐 살다간 아이, 엄마는 아이를 오래 기억하고 싶어 연우의 흔적이 남은 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지난 17일 첫 방송된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 시즌2 속 풍경이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 출연하는 99학번 다섯 동기들. 지난해 시즌1에 이어 모두 함께 호흡을 이어가는 배우들은 캠핑을 가고 화상으로 만나면서 카메라 밖에서 우정을 다졌다. tvN 제공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 출연하는 99학번 다섯 동기들. 지난해 시즌1에 이어 모두 함께 호흡을 이어가는 배우들은 캠핑을 가고 화상으로 만나면서 카메라 밖에서 우정을 다졌다. tvN 제공


'미스터 션샤인'보다 '높은 첫 도약'

현실 속 '제 2~3의 연우 엄마'들이 하나둘씩 아물지 않은 상처를 꺼내 공감을 표했다. 온라인엔 '동생 죽고 나서 1년 동안 동생 입원했던 병원에 몇 번 갔다. 내 동생 이름 불러주는 의료진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발길이 닿았다'(leek****), '아들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몇 번을 병원 가서 보고 왔던 기억이 있다. 14년 전 일인데도 아직도 가슴이 미어진다'(진**) 등의 글이 올라왔다. 이렇게 공감을 산 드라마는 시청률 10%를 기록했다. 24일 tvN에 따르면 개국 15년 만에 첫 방송에서 시청률 두 자릿수로 출발한 드라마는 '슬의생' 시즌2가 유일하다. '드라마 왕국'으로 통하는 이 방송사에서 기존 1회 최고 시청률은 9.4%를 기록한 송혜교·박보검 주연의 '남자친구'(2018)였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 출연하는 99학번 동기 의사들. 왼쪽부터 안정원(유연석), 김준완(정경호), 이익준(조정석), 채송화(전미도), 양석형(김대명).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 출연하는 99학번 동기 의사들. 왼쪽부터 안정원(유연석), 김준완(정경호), 이익준(조정석), 채송화(전미도), 양석형(김대명).


'전원일기'와 '슬의생' 시리즈의 평행이론

송혜교나 이병헌('미스터 션샤인') 같은 한류스타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톱스타 없는 '슬의생' 시즌2의 인기 비결은 뭘까.

실제 있음직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그려 잃어버린 일상성을 회복하는 게 '슬의생' 시리즈의 장점이다. 뻔한 얘기 같지만, 드라마 제작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요즘 TV와 OTT에선 사실극 즉 일상을 소재로 한 트렌디 드라마를 찾기 어렵다. 청년들은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다. 신('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이나 600년 산 구미호('간 떨어지는 동거)와 사랑한다. 그 많던 '실장님'은 사라졌고, 초현실적 존재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초현실적 사랑을 포기한 대가는 더욱 처절하다. 돈을 위해 아내를 죽이고 자식까지 버리는 막장극('펜트하우스')이 요즘 인기 드라마가 보여주는 세상이다. "너무 자극적이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작품이 많아 되레 '슬의생'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드라마를 찾게 되고, 이런 일상성에 대한 갈증이 인기의 비결"(공희정 드라마평론가)로 꼽힌다. 옛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를 20~40대가 온라인에서 다시 되돌려 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에서 장겨울 역을 연기하는 신현빈. tvN 제공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에서 장겨울 역을 연기하는 신현빈. tvN 제공


'꼰대 없는' 의드

'슬의생' 시리즈의 탈위계성도 중요한 인기 요인이다. "기존 의학 드라마와 달리 '슬의생' 시리즈는 99학번 남녀 동기 의사 다섯 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수평적 관계를 비중 있게 다루고, 그 시선이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와 눈높이를 맞추며 공감대를 형성"(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한다. '슬의생' 시리즈가 의학 드라마지만, 병원 내 자리싸움('하얀거탑')과 수술 실력('낭만닥터 김사부')을 전시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신 의사들의 평범한 삶과 고민에 포커스를 맞춘 결과다.

'슬의생' 시리즈의 수평적 시선에 대한 호응은 더욱 탄탄해진 MZ세대 시청층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시청률 조사회사 TNMS에 의뢰해 시즌1과 시즌2 첫 회 방송 성연령별 시청률을 비교해 본 결과, 여성 30대 시청률이 4.1%에서 11.2%로 약 3배 뛰어 가장 많이 올랐다. "일상을 줄기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웃음을 꾸준히 녹여내는 시트콤적 구성을 택한 것도 의학드라마 '슬의생' 시리즈가 장르적 독창성을 갖게 된 밑거름"(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비롯해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를 연출한 신원호 PD. tvN 제공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비롯해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를 연출한 신원호 PD. tvN 제공


"특별 출연 미팅만 두 번" 리얼리티 몸부림

'슬의생' 시리즈의 일상성은 어떻게 쌓아질까.

전화로 만난 신원호 PD는 "모든 에피소드는 이우정 등 작가들의 병원 취재를 바탕으로 상상력이 합쳐진 결과물"이라고 했다. '슬의생' 시즌2 첫 회 연우 엄마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연우 엄마는 시즌2 고정 캐릭터가 아닌데도 제작진은 촬영에 유독 공을 들였다. 신 PD 등 제작진과 연우 엄마를 연기한 차청화는 이 에피소드를 위해 미팅만 두 번 했다. 드라마 특별 출연은 사전 미팅 없이 바로 촬영이 이뤄지는 게 일반적. 촬영은 지난 3월 일찌감치 진행됐다. 차청화는 본보에 "촬영하는 데 눈물 참느라 혼났다"며 "병원 밖에선 연우란 이름이 금기처럼 여겨지지만, 연우 엄마가 연우를 보러가는 마음을 상상하며 씩씩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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